- 한인 예배 (2002년 02월 24일)
- 엡 5:1-8
- 설교자: 이종실
02년 02월 24(사순절 두번째 주일)
본문: 에베소서 5:1-8절
제목: 자신을 버리사
<공동기도>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부활절을 준비하는 사순절 기간에
대속의 사랑을 새롭게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그
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설교>
사
순절 기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을 새롭게 묵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렸다” 고 초대 교회가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특별히 우리의 죄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예배에 참석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저주의 십자가 처형을 받아야 했는지,
그리스도의 희생과 하나님의 용서의 관계를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세상의 노예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그
주님의 구원은 공짜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는 그 구원을 은이나 금으로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입은 자녀” 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가치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의 희생 제물을 받아주셨습니다.
그의 희생은 하나님에게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습니다.
우
리들은 인생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얻을 수 없음을 알고있습니다. 이 조그마한 공동체를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원합니다만 혼자 힘으로 그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얼만큼 자발적으로 희생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교회의 건설이 결정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은 실천과 자기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은 이 교훈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이 사랑이 그래서 우리들이 범사에 감사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오늘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들의 삶에 늘 감사함이 떠나지 않는
다면 여러분들은 그리고 우리 교회는 지금 예수님의 희생과 은총 가운데 살고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대로 감사가 없고 불평과 불만과
시기와 질투가 가득 차 있다면 지금 우리들은 우리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신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과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배은망덕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잊는 자녀는 이미 자녀가 아니듯이 그리고 아내의 사랑을 잊는
남편 – 남편의 사랑을 잊는 아내는 이미 부부가 아니듯이 우리들이 그리고 교회가 우리를 구원 하시고자 하는 그 주님의 뜻과 그의
고난과 희생과 사랑을 잊는다면 우리는, 우리 교회는 이미 교회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사순절에
주의 은총의 기쁨을 감사함으로 표현해야 될 것 입니다.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 것인가? 바로 전도입니다. 믿지 않는
분들에게 우리 주님이 얼마나 자비로우시고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그리고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분이신지 고백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될 것 입니다. 전도는 우리들의 신앙고백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속담에 자식자랑이나
남편과 아내자랑 하는 사람은 반쪽인간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들 정서에 내놓고 자식자랑 남편 또는 아내자랑 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정말 좋으면 “나는 팔푼이라도 좋다.” 상관하지 않고 자랑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 수연이가 현대체조에서 2등을 해서 은메달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체코 한인역사에 이렇게 체코전국대회에서 한국인이 입상한 것은 처음 있는 경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들은 얼마나 좋으셨겠어요?
상을 받은 그 사실 보다 말 다르고 낯선 곳에서 꿋꿋이 살아가 주는 딸 자식이 그냥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수연이 어머님은 딸 자식을 자랑하고 싶어 어쩔 줄 을 모르는 것이 얼굴에 씌여있었어요.
우
리가 예수님의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간다면 이렇게 예수님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 프라하에 사시면서 교회 다니지
않는 많은 체코의 한국 교민들에게 그 동안 몇 번이나 예수님 자랑을 해보셨습니까? 솔직히 예수님 자랑하기가 조금 민망스럽게 느낀
적은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예수님 사랑 안에서 살지 못하니 예수님 자랑할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까?
해외생활이 만들어내는 우리들의 삶의 양태가 있는 데 그 중에 하나가 자기 과시하는 것입니다.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자기 자랑 아니면 남 흉보는 것입니다.
남
흉보는 것은 결국 자기 자랑입니다. 제가 제 자신을 가만히 보면, 사람들에게 은근히 이곳에 오래 살았다는 과시를 저도 모르게
합니다. 이제 갖 온 분이 체코에 대해 혼자 모든 것을 아는 척 하는 것을 보면 “너는 그 동안 뭐했냐?” 하는 소리로 들려 괜히
무시당하는 것 같아 은근히 부아가 납니다. 그래서 물어보지도 않는 이야기 까지 죽 자랑 삼아 늘어놓습니다. 나를 인정해달라는
뜻입니다.
고린도교회에 고린도로 이주해서 오래 살던 유대인들이 외부에서 선교한다고 갖 온 사도 바울이 설쳐대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면서 사도 바울을 평가절하 합니다. “바울의 편지는 무게도 있고 단호하기도
하지만 막상 대해 보면 그는 약하기 짝이 없고 말하는 것도 별 것 아니다.”(고후 10:10)라고 했습니다. 바울을 비판하는
의도는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 참으로 인정
받을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 주시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고후 10:17-18) “내가
여러분들 처럼 구태여 자랑하라고 한다면 내 약점을 자랑하겠습니다.”(고후 11:30)
우리가 주님을 자랑한다는 것은
나의 약점 나의 부족한 점 나의 죄가 주님의 고난과 희생으로 우리들이 거룩하게 된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어두움이지만 이제 주 안에서 우리의 존재는 빛입니다.” (엡 5:8) 주님을 자랑한다는 것은 그리고 주 안에서 내 약점을
자랑한다는 것은 어두움의 자녀의 삶의 모습에서 빛의 자녀의 삶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변화는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이 신비하게 변화했던 것 처럼 종교적인 신비한 능력이 임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변화가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가 되고 불행한 자가 행복한 자로 그리고 불치의 병자가 고침을 받은 기적이 일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변화는 우상숭배자의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으로의 변화입니다. 그 변화가 외향적으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 입니다. 즉 음행하던 자, 온갖 부정직한 자 그리고 탐욕스러운 자 이 죄인의 모습이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우리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교양과 예의가 있는 삶의 차원을 포함할 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복음을 자랑하지 못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아직도 결별하지
못한 음행과 부정직과 탐욕의 우상숭배자의 삶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엡5:6) 권면 합니다. 불행하게도 이론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우상숭배자의 삶을 살도록 하는 사탄의 유혹을 이길 사람은
우리 가운데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의 존재들이 된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빛 된 존재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행과 온갖 거짓과 탐욕의
우상숭배자의 삶을 극복하는 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도 사랑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버리는 사랑의 실천만이 우리를 복음을 자랑하고 그 복음을 전하는 빛의 자녀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에라스무스는 그의 동시대인에게 당시의 더욱 타락한 세대에 대해 이렇게 상기시켰습니다. “터키인을 기독교로 개종 시키려 한다면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여러분,
“우
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 라는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을 이 사순절에 우리들의 신앙고백으로 삼읍시다. 자신을 버림으로 우리를
구원해준 그 사랑 안에서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된 것을 기억하십시다. 값없이 얻은 구원의 그 사랑을 감사하고 감격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음행과 온갖 거짓과 탐욕의 우상숭배자의 삶에서 빛의 자녀의 삶으로 나를 변화시켜주신 것이 놀라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사랑을 모르는 이들을 나는 결단코 단념할 수 없다는 감격이 넘치는 사순절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그 예수님의 뒤를 따르며 그 예수님을 똑같이 흉내내는 것입니다. 자신을 버려 이웃을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우리 성도들이 평생토록 걸어가 볼만한 길입니다.
<설교 후 기도>
자
기를 버려 음행과 거짓과 욕망으로 가득차고 넘쳐 나는 나 같은 죄인을 빛의 자녀로 삼아주신 주님, 그 구원의 감격으로 늘 주님을
자랑하는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죄인이지만 주님 안에서 주의 사랑을 흠모하고 실천하는 삶으로 주님의 뒤를 따르는
감격과 감사가 날마다 새롭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