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계절

  • 연합 예배 (2006년 12월 03일)
  • 슥 9장 9~10절
  • 설교자: 레이흐뜨르

Text: 스가랴 9, 9-10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가장 즐거운 교회절기인 성탄절기가 바로 오늘 시작됩니다. 금년에 저는 60번째 맞이하는 성탄절입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언제나 우리들에게 성탄을 기다리는 시간은 특별한 느낌과 경험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성탄절기를 교회달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강림절이라고 부릅니다.) 강림절 동안에 각종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아니더라도 성탄 찬송의 메시지는 우리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성탄장식 전등은 그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시간 우리들이 강림절의 특징을 숙고하고, 그 메시지를 한번
들어보십시다. 강림절 그 자체가 우리들에게 주는 어떤 이미지는 어두운 밤이 빨리오고 시들어 낙엽 지는 이 계절에서 오는 것 과는
다른 어떤 느낌입니다. 이 계절은 하나님 나라의 때이며, 그 나라의 소망이 사라져 없어지지 않고 점점 성장하며 무르익어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시오시는 그 날을 성경은 어린양이 이리와 함께 풀을 뜯고, 진리와 평화가 입을 맞추고, 슬픔과 고통이
사라지며, 죽음이 없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때가 이미 문을 두드리며 우리들의 수첩과 달력에 그리고 매일 성경 읽기 하는 그
순서에 그 날을 기록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이 늦가을 시간과 함께 우리들의 시간에 슬그머니 스며들어 우리들의 시간의
한 부분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강림절은 우리들에게 단지 일어나고 있는 것들과, 경험하는 것과, 우리들이 억눌려있는 것과
또는 우리를 좌절시키는 것들 외에도 다른 것들이 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 세상에는 짧은 인생의 인간들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반듯이 오며, 우리를 찾아오며, 우리들이 가질 수 없고 어디에서도 구입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옵니다. 바싹
메마른 사람에게 원기를 불러일으키고, 지쳐 기진맥진하는 이에게 쉼을 주고, 낙심한 이에게 살맛을 나게합니다. 빛이 점점
희미해지고 열정이 점점 식어갈 때, 이젠 건강하지도 않고 숨쉬는 것도 점점 힘이 드는 것을 어느 날 느꼈을 때 바로 그 순간
하나님 나라는 즐거움과 함께 옵니다. 그래서 강림절은 다른 어떤 교회절기보다 우리로 하여금 진실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명을 깨닫고 실천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없이 날이 점점 짧아지고 빛은 점점 꺼져가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겸손히 깨닫게 하는 것은 이 대강절 절기만한 다른 교회 절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을 찾아오소서 그리스도여> 진정 우리는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우리 힘으론 모든 것을 감당하기 힘듭니다.

우리들 마음에 깨달음을 주시지 않으면 떨어지는 마지막잎새처럼 우리들은 처절함을 맛보게 될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오십니다.
어둠이 더 깊이 깔리기 전에 오십니다. 저희들이 어렸을 때 주일학교에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 들었고 지금도 수
없이 우리들은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교회 공동체에서 대강절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어린 나귀를 타신 주님의
오심은 성경에 기초를 둔 옛날 교회달력에 따라 면 일년에 오직 두 번 낭독됩니다. 하나가 강림절 첫번째 주일이고 다른 하나는
종려주일입니다. 아주 옛날에 일어났던 일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 사건을 기억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순간적이고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센세이션으로 즐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문의 일면을 도배질한 긴급한 사건들과
그 순간들이 한 두 주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벌써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잊어버립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성급하게 순간적으로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누구이며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들이
어디에 희망을 둘 수 있는지 이러한 질문에 시간이 없습니다. 현재 이러한 우리의 모습이 싫증이 난다면, 강림절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고 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사람들은 그를 환영하였습니다. 그 환영은 마치 대관식을 연상시킬 정도였습니다. 이미
구약의 예언자가, 누군가 에게는 유용하겠지만 전쟁이나 싸움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짐승, 농사일이나 짐을 옮기는 일에 사용되는
짐승을 타고 환영하는 강림절이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오랫동안 바라던 왕은 의로운 분으로 묘사됩니다: 왕들과 주인들로부터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의로운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나귀새끼를 탄 왕은 체코 공동번역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있습니다. 구원을 베푸는 왕, 겸손한 왕입니다. 그는 특별한 왕입니다. 10절 말씀에 나온 대로 병거를 씻고 전투
말들의 힘을 빼는 왕이십니다. 평화의 왕은 겸손하고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누구도 위협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 고통을 당하는 사람,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 버림을 받은 사람, 지독한 질병에 걸린 사람, 미움과 질투를
받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겸손하고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십니다. 그 왕이 모든 이들에게 오십니다. 겸손하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십니다.

오시는 주님은 환영을 받으실 만한 분이십니다. 그 분은 높은 성이나, 특별한 귀족들에 둘러싸여 도도하게 생활하지 않습니다.
그 분은 우리들 가운데 오십니다. 아니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모든 가난하고 고통받는 형제들과 함께 계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모든 것에 대해 화가 나고 스트레스 받고 고통스러워 주님께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기도하고 주님께 질문하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여러분은 우리 인생의 통치자이신 우리 주님과 제일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가까이 가는 길은 우리들의 성공과 명예와 부요함이 아니라 우리들의 겸손함과 우리들이 겪는 고통입니다. 여러분의
고통, 여러분의 무기력함, 여러분의 죽음에 이를만한 낙심이 여러분을 그 분에게 가까이가게하며 그의 보좌에 참예하게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겸손하고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당할 때, 여러분의 영혼은 평화의 왕께 아주 가까워지고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첫번째 성탄절 촛불을 밝혔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조용히 가까이
다가오고 세상의 빛은 비추고있습니다. 강림절, 그 은혜로운 시간이 왔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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