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마음과 교회 봉사

  • 한인 예배 (2001년 11월 18일)
  • 빌 2:5-11
  • 설교자: 이종실

01/11/18 (삼위일체 후 스물 세번째 주일)

설교본문: 빌립보서 2장 5-11절
설교제목: 봉사와 그리스도의 마음

<공동기도>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사람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봉사 가운데 그리스도의 겸손을 간직하여
세상 속에서 주의 영광을 들어내는 교회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너
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헤 뛰어난 이름으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설교>
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우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지금 그의 두 손에 빌립보 교우들이 보내온 헌금이 들려있습니다. 빌립보 교우들이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도 바울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자 헌금을 해서 에바브로디도 인편에 보냈습니다. 편지 속에는 빌립보 교우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감사와
사랑이 곳곳에 묻어있습니다. 더구나 헌금을 보내온 그들의 처지가 편안하고 모든 일들이 잘 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기에 바울은
그들의 사랑이 더욱 눈물겨웠습니다. 1장 28절과 29절은 빌립보 교우들의 상황을 가늠케 하고 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이 두절의 말씀 속에서 빌립보 교회는 대적자들의 박해에 직면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 갓 태어난 어린 교회가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드러나는 그 모습이 사도 바울을 감동시켰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라” (2장 17절) 이 말씀을 공동번역은 좀
더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바치는 믿음의 제사와 제물을 위해서 라면 나는 그 위에 내 피라도 쏟아 부을
것이며 그것을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과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눈물없이 읽을 수 없는 감동이 진하게 묻어나는
편지입니다.

얼마 전에 비디오로 “친구”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조직 폭력배들 사이에 일어나는 가슴 찡한 의리를 그린
영화였습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몰려다니며 술과 담배를 하는 일탈행위가 그들을 더욱 끈끈한 친구 관계로 형성시켜갑니다.
그들은 학교라는 집단에서 소외되면 될수록 친구들 사이의 관계는 더욱 깊어집니다.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결국 폭력조직이라는 어두운 세계였습니다. 감옥을 드나들다가 결국 무서운 살인까지도 서슴없이 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회에서 소외된 집단은 자신들만의 결속력이 있습니다. 마치 자폐증 환자들처럼 외부와 단절하고 자기집단의 만남과 즐거움만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 집단이라면 우리들은 이들을 이단종파라고 합니다.


립보 교회와 사도 바울이 서로 나누는 심금을 울리는 오늘의 이야기는 그들의 대적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마치 이단 사이비 종파
아니면 사회의 암적 존재인 마피아 같은 조직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치 조직폭력배의 의리를 다룬 “친구” 영화장면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은 정통 유대주의 종교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세상 권력이 세례요한과 예수를 처형함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이미 불법단체 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들의 정당성과 지금 복음이 전파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확신의 근거를  우리들은 오늘 본문 5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분명 세상과 다릅니다. 세상의 단체와 세상의 모임과 다릅니다.

심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구성원들이 다릅니다. 그리고 정말 다른 것은 세상의 단체와 모임이 알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의
활동이 교회에 있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교회를 세웠기에 그는 고난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의 터를 상실할 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교회는 세상을 부패 시키는 존재로 변해버립니다. 그런데 사탄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막기위해 교회를 인간들의 마음의 터 위로 옮겨 놓으려고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의견과 생각 위에
교회를 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분쟁과 논쟁이 끊임없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이 교회가 다름 아닌 바울의
고난에 동참하던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옥에 갇히자 빌립보 교회가 겁 없이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일부가  “바울, 당신이 없어도 우리는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다.” 이렇게 과시하기 위해서 열심을 냈습니다. 그들
생각에 자신들이 일을 잘하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대한 기득권 상실을 염려해서 옥중에서 고통스러워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빌립보서 1장 15-17절의 말씀입니다.       

주를 위해 열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남을 말씀으로 친절하게 권면하고, 위로하고, 사랑하고 돕는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기 위하는 마음, 자기가
남보다 낫다는 마음, 결국 자기 실속을 차리기 위한 마음이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 이러한 이기적이고 인간된 마음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권면을 한 것
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교회가 무엇인지, 지역사회 속에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더 효과적인 교회 성장을
위한 방법, 복음전도의 방법과 같은 설명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10월 마지막 주 루터의 종교개혁일을 기념하는 개혁주일 예배 같은
프로그램을 제시한것도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거창한 구호도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들의 관심을 우리들 중심에서
우리들이 원하는 것과 현재의 모습으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우리들에 대해서 그리고 교회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엇을 하셨는지 말합니다. 

“너
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이 사도 바울의 권면을 예수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 “예수의 마음처럼
그렇게 하라”고 이해를 한다면 우리는 이 말씀의 뜻을 온전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발견하고 깨달은 생각을 그대로 우리들의 마음으로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6절
이하 11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더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것은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겸손입니다. 원래는 하나님이셨지만 스스로 비천한 사람이 되셔서 우리 위해 대신 고생하시고 죽으신 분입니다. 그 분의 은혜를 그분의
사랑 그분의 낮아짐 그분의 겸손을 제대로 우리들이 안다면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 사람 앞에서도 거만과 교만을 떨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은 요즈음 제가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가운데 교회를 섬기는 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다시 붙잡은 말씀입니다.


코 교회들을 분주히 방문하여 한국교회의 경험을 소개하고 체코교회가 새로운 활력을 얻어 선교하는 교회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직접
간접적으로 돕는 일과  한인교우 여러분들을 목양하는 일과 체코교회를 연구하는 일 세가지를 모두 함께 감당하기 어려워 금년 4월에
연구하는 일을 잠시 중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방으로 교회를 방문하고 목회자를 만나며 협의하던 일들을 가급적 자제하고 대신 총회의
전도부 교육부 선교부(이곳에서는 해외교회협력부) 세 부서의 회의에 참석을 하며 전국 교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년한해 한인교우 여러분들을 목양하는 일들과 저의 체코교회 프로그램을 가급적 일치 시켜 볼 수 있을 지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수년동안 정성을 드리며 조금씩 조금씩 교회를 바꾸어가던 쁠젠 오픈 하우스 선교 프로그램을 한인 공동체와 접목시켜
보려던 시도가 급격한 변화를 두려워하는 체코교회에 의해 좌절되는 경험도 하였습니다. 꼬빌리시 교회에서의 목회도 단지 여러분들을
목양하는 일 뿐 아니라 우리들의 기독교인의 삶을 체코교회를 위한 선교자원화 시키는 일입니다. 이 일을 통해 언제나 체코교회와
한국교회의 큰 차이를 늘 실감하며 그 간격을 메꾸고 접촉 점을 찾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어야 했습니다.


편 선교하는 일로 목회가 태만해서 안 된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은 심방을 하거나 교회
프로그램을 만들어 눈에 보이는 일들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앞에서 더 겸손하고, 여러분들을 더 섬기고 더 사랑하려는 제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목회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맡겨주신 양들을 사랑하는 진실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증인이되신다.” 는 사도 바울의 고백에 다다르기 까지 저는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완성되고 완전한
저의 모습 보다도 성실하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늘 노력하는 저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한해동안 제게 허물과 잘못과 부족한
점이 드러난 것이 있다면 주님의 사랑으로 관용을 베풀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 교우들도 서로가 서로에게 부족한 점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점을 생각하지 말고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그 모습들을 감사히 생각하며 격려와 사랑을 나눕시다.
 


별히 오늘은 두 해 동안 우리 공동체를 위해 궂은 일들을 기꺼이 맡아 수고하신 총무님과 서기님이 임기를 마치고 새로운 분들이
선출되는 날입니다. 비단 두 분만이 아니라 한해동안 수고한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반주로, 성경교사로, 회계 보는 일로, 주보
만드는 일, 매주일 교회당 청소와 설거지 그리고 게으름이 피워지는 주말 – 토요일 아니면 주일날 새벽같이 장을 보거나 손수 장만을
하는 한 달에 한번 돌아오는 간식 준비하는 일, 교회관리와 예배 안내를 맡아 수고하는 집사님들의 봉사로 모든 교우들이 금년한해
수고를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수고를 우리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여러분들을 위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는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 단지 필요한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겸손의 마음이 우리 가운데 드러나는 것임을 저와 여러분이 잊지
맙시다. 금년과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기도와 말씀공부와 봉사 이 세가지가 우리 교우들의 습관으로 정착 되었으면 하는 목회자의 바람이
있습니다. 특히 봉사는 몸으로 드리는 기도이며 몸으로 읽는 성경입니다. 봉사는 기도와 성경 읽는 것을 더 깊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봉사를 하면서 우리는 말씀과 자신을 대면 시키지 않을 수 없고 그리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년에도 조그마한
봉사라도 맡아 주실 것을 당부 드리며 아울러 여러분들의 봉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겸손이 우리 공동체뿐 아니라 세상에 드러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여러분,
 “그의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라는 오늘 본문의 6절 말씀을 1400년대 체코
종교 개혁파들이 어떻게 이해 하였는지 소개를 하고 오늘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씀을 당시 체코 종교 개혁교도들은 “그리스도가 자신을 부패한 자리에 두지 않았다.”고 주석을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는 봉사와 섬김은 우리 자신을 부패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봉사는 낮아지는 것입니다. 봉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짐을
체험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누구를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다면 그리스도의 겸손의 마음 위에 우리 교회는 든든히 서갈 줄 믿습니다.

<설교 후 기도>

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위에 교회의 터를 세우지 않으면 교회는 맛을 잃어버린 소금 처럼 되어 버림을 받게될 것을
압니다. 교회를 교회되게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은 곧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인간이 되신 우리
주님의 겸손임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겸손이 우리들 가운데 우리들의 마음으로 간직되길 원합니다. 그 주님의 겸손으로 교회를
섬기고 세상을 섬겨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의 겸손으로 부패한 교인과 부패한 교회가 되지않도록 저희들을
인도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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