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3.09)

2013년 3월 9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편 11편 7절)

(여호와는)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는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3장 26절)
묵상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이 승승장구하는 세상은
정의가 없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불평등의 사회는 인간의 역사이래로 지속되어왔습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사회”를 보며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존재가 의심되고 믿음이 흔들리는 신앙인들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아들이 받은 환대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며 순종하며 살아온 아들에게는 “정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분노하였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의 눈에
인생을 방탕하게 살아가는 죄인과 세리와 친구하고 먹고 마시며
당시 죄의 형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불치의 질병을 앓고 있는 죄인인 병자들을
환영하고 그 질병들을 고쳐주는 예수는 “정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죽였습니다.
요나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에 열번을 참고 한 번 매를 듭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매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외모가 아닌 마음을 보시고 인생을 꿰뚫어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을 해도
그 마음의 동기를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의 동기를 따라 판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에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의 잣대로 마지막 심판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는 다른 말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의 죄성에서 오는 모든 한계와 허물의 장벽을 
사랑으로 넘어갈 수 있음을 친히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고 모든 악에서 이기게 합니다.
그 예수를 믿는 자를 하나님은 의롭게 여기십니다.
이것을 성경 민수기는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한다”고 
(민 6:25) 설명하였고
이사야 선지자는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한다”고 
(사 53:11) 설명하였습니다.
우리가 의롭게되는 길은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내용의 발전이 없는 형식적인 크리스천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여 잘못을 고치기 위해 몸부림치며
오직 예수의 사랑의 삶을 내 존재의 DNA로 만드는 씨름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
주님,
악인들의 승승장구를 보면서
불의의 뻔뻔스러움을 보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당신을 생각합니다.
억울함
분노
끓어오르는 복수심
에 내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세상을 구원하시고 은혜베푸시길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에 순종하여
사랑으로 죄악을 이기신
당신의 십자가의 길을
내 마음이 
붙잡을 수 있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거룩한 주의 날을 주셔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시니 감사
하나님의 전을 사모할 성도들을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
마음의 소원을 두고 일하시는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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