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의 기도

  • 연합 예배 (2003년 12월 07일)
  • 살전 3:9-13
  • 설교자: 이종실

031207EK
데살로니가전서 3:9-13
대강절의 기도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Advent는 라틴어 Adventus 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뜻은 “도착, 도래, 강림”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강림입니다.
그의 강림은 첫번째 오심과 두 번째 오심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의 첫번째 오심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실 그 때를 기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교회가 고백하는 신앙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도 이 신앙을 설교 후에 있을 사도신경을 따라 하는 고백을 할것입니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대강절 계절은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신다는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은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분명한 진리를 외면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인간은 우리들의 인생의 마지막이 희망 없는 죽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질서와 희망을 향해 가기 보다 무질서와 혼돈을 향하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이 세상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희망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는 믿음은 우리들에게 더 희망을 주고 삶의 용기를 줍니다.
오직 한 분에게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희망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것은 그들의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이 희망에 대한 믿음의 역사입니다.
우리들, 체코인들과 한국인들이 이 꼬빌리시에서 역시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고있습니다..
이 희망의 역사를 재확인 하는 때가 바로 대강절 절기입니다.

오늘 저희들이 들은 말씀은 데살로니카 교회에 보낸 사도의 편지입니다.
오늘 12절 13절 말씀을 요절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 전서 3:12-13)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를 생각하며 그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주님의 다시오심을 생각하며 무엇을 간구하고 있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슷한 기도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사도의 편지가운데도 나타납니다.
 “가
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여러분이 분별할 줄 알게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기에 순결하고 흠이 없이
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여러분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표준새번역 빌
1:10-11)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날을 준비하는 것은 언제나 그의 안에 있게 해달라는 기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이 바울의 기도를 들을 때 그들은 순결하고 흠이 없는 사람에 대한 말씀 때문에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순결하고 흠이 없는 사람들인지 아닌지 스스로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복음서의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바울과 초대교회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날을 준비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5-51절의 말씀입니다.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 비유에서 중요한 점은 종이 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예상하지 못하는 시간에 돌아옵니다.
성경말씀은 이것을 매우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마 24:36)
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을 알지 못하기에 주인을 기다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종들의 태도는 결정됩니다.

이 비유에서 나쁜 종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그가 자기 동료를 때리고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고 놀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이전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음 속으로, 주인이 늦게 온다고 하여”
그가 주인은 틀림없이 늦게 올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는 주인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의 동료를 때리고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길 때 그의 마음에 있는 생각은 “나는 그가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입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을 사랑하지도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나쁜 종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처음에 바울이 주의 날을 기다리는 매일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였습니다.

“하
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성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음행을 멀리 해야 합니다. 각 사람은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과 같이, 색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또 이런 일에 탈선을 하거나, 자기
형제자매를 해하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에도 말하고 경고한 대로, 주님께서는 이런 모든 일을 징벌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더러움에 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4:3-7)
이 말씀은 예수님의 나쁜 종 비유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색욕에 빠지거나
다른 형제들을 해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자신의 주인이 늦게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중심에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을 주신 그 분을 만날 시간을 준비하지 않는 것이 놓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돌아오는 것을 염려합니다.

바울의 기도는 우리들이 완전하고 흠 없는 사람들이 되는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주인을 기다리는 종과 같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 우리가 나쁜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착한 종이 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기도가 갖고 있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되는 한가지는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는 교회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웃과 갖는 특별한 관계 안에서 그 날을 기다리는 것입나다.
그러므로 12절에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종으로서 중요한 것은 단지 흠이 없는 개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실제로 데살로니가 교인들 사이에 광신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종말을 생각했을 때 그들은 눈에 보이는 매일의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종은 자기에게 주어진 자신의 장소를 소중하게 여김으로서 그리고 신실한 섬김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루며 자신의 주인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립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교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세상의 우리의 이웃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는 매우 다양한 장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는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드려야할 올바른 기도입니다.

우리는 오늘 바울의 기도를 읽었습니다.
이 기도로 우리는 대강절을 맞이합니다.
이바울의 기도를 우리의 기도로 만들고 우리는 매일 매일 이 기도를 드림으로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억하는 대강절을 보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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