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예수안에 있는 은혜

  • 연합 예배 (2002년 05월 05일)
  • 요 21:1-18
  • 설교자: 이종실

02-05-05
설교본문 요한복음 21장 1-18절

<본문>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줄 아는 고로 당신이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설교>
최근에 바베트의 만찬
영화에 대해 쓴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바베트의 만찬은 덴마크 태생 카렌 블릭센(Karen Blixen)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것입니다. 원작의 무대는 노르웨이지만 덴마크의 영화 제작진은 덴마크의 가난한 어촌으로 장소를 바꾸었습니다. 그곳에 자기 자신을
부인함으로 구원이 온다고 믿는 고립된 경건주의 공동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경건과 금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사려고
했습니다. 바베트 만찬은 바로 그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망명가 바베트는 그 공동체에서 두
자매와 생활을 하게 되고 그것이 그 공동체의 변화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장 분명한 변화는 그 공동체의 12회원이 바베트가
자신들이 베풀어준 친절에 대한 그녀의 감사의 표시로 맛있는 프랑스음식을 자신들에게 요리하도록 허락할 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12명 공동체 회원들은 그녀가 이 음식의 준비를 위해 그녀가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투자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화스러운 음식들이 줄줄이 12명앞에 놓였을 때 경건과 금욕생활을 하던 열두명은 음식의 부유함과 풍성함에 분개를 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자 카렌 블릭센은 바베트의 만찬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는 베푸는 자의 부담으로 값없고 조건 없이 거저 오는
것이지 경건과 금욕의 인간의 노력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주고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당신의
부담으로 조건 없이 값없이 바베트의 만찬을 베풀어주시는 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전체를 통하여 우리는 부족함의
중심에 풍성하게 베풀어주시는 예수에 관해서 읽습니다.  2장에서 우리는 가나의 혼인잔치에 떨어진 포도주를 준비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읽습니다. 예수님은 부족한 포도주를 채워 주셨을 뿐 아니라 더 질 좋은 포도주를 제공하였습니다.

4장에서 우리는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그녀에게 물을 제공하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 물은 보통 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이 솟아나는 물을 제공하였습니다. 6장에서 예수님께서 먹을 것이 없을 때 오천명을 먹이셨을 뿐 아니라 남은 것이
12광주리를 채우셨습니다.  여러 차례 우리는 예수님이 그의 사역을 통해 가져오는 풍성한 삶에 대해 알고있습니다. 요한복음은
1장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선물의 목적은 “그의 풍성으로부터 우리에게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개역한글판 요 1장))

요한복음의 마지막장의 오늘 본문은 마치
인간이 되신 예수님 안에 가장 소중한 것이 있듯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선물이 있음을 우리들에게
깨우쳐 주고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6절과 7절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바로 다음절 에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부활 후에 부족함의 한가운데 예수님의 현존은 풍성함이었습니다. 이 요한복음서에 언급된 이러한 지속적인 넘치는 은혜를
통하여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하나님의 선물을 자신들의 직업의 성공과 관련을 지어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자리가
다른 곳에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사역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사역을 통해 믿을 수
없는 풍성함을 선물을 주었듯이 그들의 사역과 교회의 사역은 세상에 하나님의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씩 베드로에게 질문 한 이유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은 예수의 양들을 먹이고
돌보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돌보는 것은 상호 연결 되어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이러한
새로운 제자 삼는 소명은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지도력을 갖는 것을 의미하였으며 유대 권력자 앞에서 설교가와 대변인이되며 결국
순교를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제자들의 이러한 새로운 또는 새롭게된 소명은 각기 달랐습니다.

요한복음을 통해
우리는 같은 테마 – 부족함 한가운데 예수께서 풍성하게 준비하심을 반복해서 듣게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풍성하게 주신 그
한가운데 우리는 새로운 소명을 받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부활 이후 요한복음 21장의 제자들에게 명백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부활 후 제자들이 되는 것을 요청받습니다. 우리들은 언제 어떻게 부족함의 한가운데서 풍성함을 준비하는 예수님을
발견했습니까?  우리들은 언제 어떻게 그리스도의 풍성하게 주심 한가운데서 우리의 새로운 소명을 발견했습니까? 자신의 집과 친척과
나라를 떠난 체코의 우리 한국인들은 처음에 이 체코는 자신들에게 광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체코 형제 자매들과 하나의 교회
하나의 예배 하나의 성만찬 하나의 신앙고백을 하면서 우리 가운데 베풀어주신 주님의 풍성함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 형제
자매들은 이 체코에서 그리고 이 꼬빌리시 교회안에서 우리들의 선교적인 사명을 새롭게 발견하고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 부족함의 한가운데 있는지 아니면 우리가 풍성함을 경험했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부족함,
공허함, 슬퍼함, 혼란, 고독함을 경험한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선물의 약속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선물이나 우리가 원했던 때가 언제나 아니었음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은 우리들의 삶으로 터져나옵니다.
때론 극적인 방법으로 회개한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들을 위해 준비된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 처럼 일상의 한가운데서 더 자주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이 나타납니다. 부족함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언제나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이 기도는 두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우리들의 부족함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눈을 열어 이미 우리 주위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선물을 보게 하여 감사함으로 그것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회개한
바울처럼 기도합니다.  우리는 우리 눈으로부터 비늘을 벗겨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시간, 우리의 소유 – 하나님의
기대하지않았던 선물들 모든 것을 발견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넘치는 풍성함을 경험하였습니다. 우리는 부유한 음식을 맛보았고
우리의 목마름은 생명수로 갈증이 풀렸습니다. 풍성함 안에 있는 우리 모두는 베드로처럼 예수에 의해 도전과 부름을 받고있습니다:
예수 사랑은 여러분들이 세상속에서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 양을 치는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족함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는 사람들에 대한 도전은 다른 사람들과 이들 선물을 나누는 것이며 1세기의 제자들 처럼 풍성함에 대한
증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어진 생의 풍성하고 특별한 선물에 대해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Subscribe
Notify of
guest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