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망년

  • 한인 예배 (2001년 12월 30일)
  • 고후 7:10
  • 설교자: 이종실

01/12/30 (성탄 후 첫번째 주일)
제목: 신앙인의 망년
본문: 고린도후서 7장10절

<공동기도>
우리를 복 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난 한해동안 교회를 통해 말씀과 은혜로
인도하시고 지켜주셨습니다.
부족한 것과 넘치는 것 모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설교>

난 28일 금요일은 한인회가 송년의 밤 행사를 가졌습니다. 미국 대륙과 서유럽 아니면 광활한 땅 호주와 뉴질랜드 남미대륙으로
희망과 미래를 찾아 이주한 한인들의 삶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작고 외국인에 대해 폐쇄적인 체코의 한인들의 삶의 양태와 아직
세분화되지 않은 한인사회가 한인회를 구성하고 이렇게 송년의 밤을 갖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가능성이 많고 넓은 공간에서 부딪치는 인간관계에 비해 비좁디 비좁은 공간에서 부딪치는 인간관계는 마치 감옥 밖의 삶과 감옥 안의
삶으로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좁은 공간에서 나는 온갖 인간의 냄새는 절로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우리들은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00여명이 넘는 교민들이 함께 어울려 음식을 나누고 춤과 노래를 하며 한해의 마지막을 그렇게
어울린다는 것은 새로운 한해를 희망 안에서 받아들이려는 몸짓이라고 믿습니다.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친구들과
아는 이들과 어울려 한끼 식사 한잔 술을 나누는 것을 이맘때 되면 망년회라 하여 한차례 예식처럼 치르는 것도 한해의 좋고 나쁜
기억들을 과거로 하고 새로운 해에 새로운 관계를 다짐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허물과 실수로
점철된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어두운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방식은
이말 저말 하지 않고 술잔을 부딪치고 취해 서로의 섭섭한 마음을 풀고 어깨동무하며 헤어집니다.

맺혔던 인간관계를 풀고 새롭게 하는 이러한 망년회가 우리 성도들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들 사이에 마음에 쌓인 담을 헐지않으면 더 깊고 맑은 신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들에게 망년은 더욱 필요합니다.


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 일원들 사이에서 일어난 불편스러운 인간관계는 우리들의 삶을 매우 힘들게 합니다. 아이들의 학교에서
사업관계로 각종 모임에서 괴롭지만 생활을 위해 피할 수 없이 만나야 되는데 안식을 누리고 싶은 주일날 교회에서 까지 그 관계가
연장이 될 때 그 고통은 더욱 큽니다. 최소한 주일만큼은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얻어야 할 그날이 불편한 인간관계가 오히려 더
악화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츰 후회와 원망을 하게 됩니다. “내가 왜 교회를 나왔던가?” “이렇게 덕이 안
되는  신앙생활을 계속해야 되나?” “그냥 마음에 맞는 한 두 사람이 모여 테이프로 설교 듣고 헌금해서 좋은 일에 쓰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섬기던 교회에 나가면 되는 것 아닌가?” “얼마 있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갈 내가 왜 한국 사람들과 이
교회에서까지 이렇게 어울리며 살아야 되는가?”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권면한 오늘 성경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 고후 7장 10절

원망과 후회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근심이 아닙니다. 원망과 후회는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원망과 후회는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파괴시키고 쇠약하게 하는 사탄의 달콤한 계략입니다. 원망과 후회는
세상 근심으로 사망을 이룹니다.

원망과 후회는 하나님의 축복을 발견하는 영적인 눈을 상실하게 합니다. 교회를 통해
우리들의 가정과 나의 사업과 자신의 신앙생활에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없습니다. 원망과 후회는 나의 결혼을 통해
나의 가족을 통해 나의 직업을 통해 나의 교회를 통해 나의 모든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공경하고 섬기는 이유를 잊어버린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원망과 후회는 자신의 삶의 방식과 뜻으로 우리를 복주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꺽으려는 시도인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들의 원망과 후회를 적극적으로 거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는 것이라.”(요 10:10).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 15:11)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의 특권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희망과 기쁨을 원망과 후회가 우리에게서 결단코 빼앗아갈 수 없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지만 원망과 후회하는 것들을 종지부 찍지 않는다면 묵은 해동안 우리들이 원치 않던 모든 인간관계를 고스란히
새해에도 이어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신앙인들은 과거를 과거로 만드는 망년을 할 수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들은 한해동안 원치
않았던 불편한 인간관계의 사슬을 끊고 새롭게 희망가운데서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바로 그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먼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복주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최선의 것을 예비하셨다는 믿음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려고
노력합니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찾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찾지않고 언제나 불평과 후회로 혼란스러하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한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축복을
결코 즐길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은 후회하고 불평하는 당신의 자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방해받거나 포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한 제 2, 제 3의 계획을 계속 준비하십니다. 심지어 후회하는 자들의 어리석음과 실수를 통해
그들에게도 복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십니다. 우리를 구원하고 복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뜻을 우리들은 파괴할 수도 꺽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세상안에서 우리들의 생애 한 가운데서 그 뜻을 이루어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단 4:35)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 46:9-10)

무슨뜻입니까? 우리들의 한해의 삶이 설령 모두 엉망이된 쓰레기장 처럼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쓰레기장 같은 삶의 한복판에 하나님이 우리들 세워두셨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원망과 후회의 배경에는 우리들의 허물과 실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해 동안 우선 목사인 제 자신부터 허물과 실수가 많았습니다.

에 허물과 실수가 있었습니다. 감정에 허물과 실수가 있었습니다.  생각으로 오해로 마음으로 하나님앞에 말할 수 없는 허물과 실수를
저질르면서 살아온 한해였습니다. 저의 이러한 허물과 실수로 인해 원망과 후회를 하는 분들이 계셨을 줄압니다. 더구나 제 자신을
들여다 보면 목회를 위해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 주일이 다가오면 “이러한 허물과 실수가
내게 있는데도 교회 공동체가 유지될까? 주일날 교우들이 교회에 나오실까?” 불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주일예배를 마치면
다가오는 느낌은 오늘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 하셔서 무사히 마쳤구나 하는 안도감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려운 일을 겪으실 때 마다 부족한 저로 인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지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었습니다.


러나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복주시기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그 뜻을 그 누구도 목사의 부족함과 허물과 실수도 방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목사 한사람의 능력과 완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께서 직접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원망하게 하고
후회하게 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의 허물과 실수 때문에 나를 위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없는 그런 약하고 무기력한 분이
아니시라는 뜻입니다.

인간 역사상 가장 큰 죄라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의롭고
거룩한 분을 죽인 죄입니다. 이보다 더 큰 허물과 실수는 없을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러한 인간의 허물과 실수를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사 53:10)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행 2:23)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행 4장 27-28)

이것 모두가 무슨뜻입니까? 성경은 오히려 그 인간의 허물과
실수가 하나님의 통치계획아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을 실망시키고 후회하게하고 원망하게 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의 허물과 실수를 하나님의 통치계획안에 있다는 믿음을 가져보신적이 있으십니까? 마찬가지로 나 자신을 후회하고 원망스럽게 하고
좌절시키는 나 자신의 허물과 실수역시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다고 생각해 보신적은 있으십니까?

나의 우리들의 형제
자매들의 허물과 실수에 대해 달리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우리는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오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에 대해 이웃에 대해 원망과 후회를 일으킬 허물과 실수를 범하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을
간구하며 살아갈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을 간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허물과 실수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합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0-12)

무슨 뜻입니까? 원망과
후회대신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을 간구하는 기도 소리가 있는 교회를 통하여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도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십자가위에서 죄 용서의 본을 보여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복주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의 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분의 삶을 따르게 되어 허물과 실수를 지속적으로
반복할지라도 확신을 가지고 서슴지않고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가게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뜻인 원망과 후회는 조급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시간으로부터 영원합니다. 세상을 위한 그의 목적은 영원하며 여러분과 저를 위한 그분의 목적은
영원합니다. 우리를 복주시려는 하나님의 그 목적은 바뀌지않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들의 허물과 실수와 그리고 우리의 나쁜 선택
때문에 변경되거나 좌절되지않습니다.

열두제자 중에 하나인 사도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이 체포되던 어느날 베드로는 그의
친구 그의 주님으로 부터 도망하고 포기할 뿐아니라 그가 주님을 알고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였습니다. (마 26:69-75)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배반 – 그의 허물과 실수는 그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변경시키지않았습니다.
죽음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후 베드로를 용서해주실 뿐아니라 사도로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요 21:17)


드로는 초대교회 설립자이며 지도자가운데 한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약성경 두권을 저술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지도자로 부르신
모세는 사람을 죽이고 고향을 도망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위대한 왕 다윗은 자신의 부하의 부인을 취하기 위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왕위에 보존시켰습니다. 후에 사도 바울로 불리워진 사울은 기독교인을 감옥에 가두고 추방하는 박해를 하였던
사람입니다.

성경의 중요한 인물가운데 허물과 실수가 없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그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무슨뜻입니까? 죄가 나쁘지않다는것이 아닙니다. 이들 사람들 모두는 죄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악한 죄일지라도 그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변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허물과 실수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가십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성도여러분,
오늘은 성탄 후 첫째주일이자 2001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허물많고 죄많은 인간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이 교회절기의
시작이고 교회절기가 시작되는 대강절이 원망과 후회 그리고 허물과 실수로 점철된 한해의 마지막달 12월은 세상생활의 끝입니다.
이 절묘한 교회절기와 세상달력의 조화는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지나간 한해를 과거로 종지부를 찍을 것인지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망과 후회를 있게한 우리들의 허물과 실수 조차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심을 믿으십시다. 우리의 나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시고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의지하면서 새해에는 하얀백지위에 우리들의 사랑과 이해와 관용을 그림그립시다.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을
간구하는 기도 소리로 우리의 교회를 가득채웁시다. 그래서 우리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를 통하여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체코교회의
숨통을 누르고 있는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이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알게 합시다.

<설교 후 기도>

사다난 했던 한해동안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묻혀살다가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고 회개하며 다시
하나님의 은총의 빛 아래로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허락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 교회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대과
없이 이끌어주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러나 저희들의 허물과 실수로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불러주신 형제 자매들에게 원치 않게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실망시킨 일들이 있었음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그 일로 인하여 우리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원망과 후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모든 것 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임을 믿고 주님의 선한 인도함을 받는 저희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한해동안의 원망스럽고 후회스러웠던 모든 것은 과거로 종지부찍고 새해를 맞이하는 저희들 되게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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