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신자들의 삶의 스타일(2)

  • 한인 예배 (2003년 07월 06일)
  • 출 20:12-17
  • 설교자: 이종실

030706 (삼위일체 셋째주일)
본문: 출애굽기 20:12-17
제목: 십계명, 신자들의 삶의 스타일(2)

<본문>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찌니라
14 간음하지 말찌니라
15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설교>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십계명 후반부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난 주에 거듭 강조를 하였던 것은 십계명은 맹목적으로 지키고 따라야 하는 율법으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응답하는 방법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마가복음 12장 29-31절에 나오는 서기관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서기관이 질문하였습니다.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십계명의 첫번째부터 네 번째 계명입니다.
이 부분을 지난 주에 저희들이 함께 생각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웃사랑의 방법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웃사랑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지 십계명의 다섯번째 계명부터 마지막 열번째 계명이 이에 대해 언급하고있습니다.

오늘 언급할 여섯개의 계명은 그 하나 하나가 별도의 설교의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웃사랑의 방법으로서 전체를 하나로 뭉뚱그려 그 중심되는 흐름과 원리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에 다섯번째 계명이 나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12절)

이 계명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십계명의 전반부에 포함시키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의 관계성의 특별한 의미 때문입니다.
부모는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실 때 언제나 그 비유로 부모를 비유하였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기억하실 줄 압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더 좋은 것으로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설명할 때에도 부모의 모습을 통해서 설명하셨습니다.
이처럼 부모는 이세상에서 하나님을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번째 계명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앞의 네 계명과는 구별이 되고 오히려 뒤따라 나오는 계명으로 부모라는 인간관계가 다른 인간사이의 관계로 그 범위가 넓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맺는 첫번째 인간관계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시고 그 가정을 통해서 결정해주신 관계입니다.
이것을 교회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의 관계는 마치 부모와 자녀의 관계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이미 회피할 수 없는 결정적인 관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과 우리들의 관계역시 무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말씀드려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인간관계를 자기 의지로 선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결정된 관계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본문의 계명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에서 공경이란 단어는 “무겁다”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누구를 무겁게 여기는 것, 중요하게 대하는 것이 공경한다는 히브리 낱말의 본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공경한다는 말은 누구를 가볍게 보거나 아무렇게나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것입니다.
여기서 부모를 공경하라 할 때 나이 많아 힘이 없어 누군가가 돌보아 주어야 하는 부모를 말합니다.
부모가 아직 젊고 힘이 있고 능력이 있으면 자녀들이 부모를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부모의 재물 때문입니다.
부모가 재물이 있으면 자녀들이 서로 모시고 살려고 합니다.
부모님들의 고민은 늙어서 어떻게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않게 살면서 자녀들로부터 못 볼꼴 보지않고 살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 입니다만, 이번 IOC 총회 때문에 많은 행사들이 있어 체코의 젊은 한국 청년들이 봉사를 하였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신문 방송 기자들의 태도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교양도 없고 시간도 안지키는 사람들이 국장 직위를 가진 분 앞에서 시간도 칼같이 지키고 태도도 보통 때와 다른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재물이든 권력이든 힘이 있는 사람을 누구나 무겁게 생각할 줄 압니다.

그러나 오늘 다섯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나이 들고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어버이를 잘 모셔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족 이기주의에서 부모를 이해는 것도 오늘의 계명을 제한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자기 가족을 위해서는 염치도 없고 수치심도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 자신의 가문의 확장과 영광이 이어지게 하는 것을 임무로 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는 사회를 이어가는 뿌리입니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생의 과정에서 바뀌면서 사회는 이어져 갑니다.
우리 인간은 부모 없이 인간 사회를 이어갈 수 없습니다.
대대로 부모를 통해 전해지는 인간사회의 가르침과 본보기를 영향으로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나 홀로 우리 가정 홀로 제 힘만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유심히 보시면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를 본문은 특별히 밝히고 있지않습니다.
예를들어 부모가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 때문에 자녀들은 자신의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하지않았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번째 계명은 우리가 부모라 부르는 나이 들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계명에 뒤를 이어 간단한 말로 표현된 네개의 계명이 따라 나옵니다.

살인하지 말찌니라 간음하지 말찌니라 도적질 하지 말찌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찌니라 (13-16절)

이것은 우리의 이웃의 생명과 가정과 소유를 가볍게 보거나 아무렇게나 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의 이웃에게 준 것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13절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이웃의 생명을 존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들을 때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형제도를 명령하신것과 전쟁을 명령하신 것을 함께 어떻게 이해해야될지 우리들은 당혹스러울때가 있습니다.
오늘날 율법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틴과 보복에 보복을 이으며 끝나지 않는 전쟁을 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많은 의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전쟁과 사형제도는 이 계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구약학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의문들을 뒤로 하고 13절의 살인금지 계명의 그 근본정신을 저와 여러분들은 기억해야 할 것 입니다.

다시말씀드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한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웃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생명을 살리는데 까지 나아갑니다.
자연환경파괴와 인권침해와 전쟁과 굶주림의 사회문제를 우리 신자들은 그래서 회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14절에 간음에 대한 계명입니다.
앞에나오는 살인하지말라는 계명과 관련해서 이 계명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웃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웃이 맺고있는 혼인관계를 침해할 수 없습니다.

결혼은 인간의 성적욕구를 충족하는 사회 시스템이 아닙니다.
한 가정은 사회의 출발입니다.
그러므로 간음은 결혼과 한 가정을 파괴하는 것뿐 아니라 전체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스팸 메일의 대부분이 포르노 사이트 광고물입니다.
날이 갈수록 대범하고 자극적입니다.
열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신념으로 끈질기게 보냅니다.
성도덕의 문란의 위험이 바로 우리들 곁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한 나라의 패망의 요인으로 꼭 들어가는 것이 성도덕의 문란입니다.
하나님은 결혼과 성 관계가 분리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결혼과 성 관계는 하나님의 축복이며 하나님 안에 있는 신비입니다.
이 축복과 신비를 존중하고 지켜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14절에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이 나옵니다.
구약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계명은 사람을 종으로 부리든지 팔아먹던 일을 금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말씀드려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은 인신매매와 유괴를 금하는 계명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단지 노동력을 목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고 사람을 물건처럼 소유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을 사고파는 인신매매는 하지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들의 인간관계가 사람보다 돈을 더 중요시여길 때 우리는 이 계명을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체코의 한인사회를 보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체코에 체류하는 목적이 인간관계보다 더 우선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지나치게 목적지향적으로 살고있습니다.
설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만 우리의 이웃을 수단으로 삼는 위험도 함께 도사리고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는 계명에 이어지는 것은 이웃에 대해 거짓증거하지 말라는(16절) 계명입니다.
이것은 법정에서의 증언과 관련되어있는 내용입니다.
법정의 증언은 때때로 이웃의 삶과 죽음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증언은 진실해야합니다.
거짓증언의 결과는 잘못한 일이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죄인이되어 평생 머리를 들지못하고 살게됩니다.
이 계명이 의미하는 것은 단지 법정에서의 다툼에만 제한된 것이 아닙니다.

지혜롭지 못하고 바르지 못한 말 한마디, 무책임하게 던진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영원히 교회를 떠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체코에서 우리 한국인들의 만남은 피할 수 없습니다.
교인이 말 한마디로 타인에 가슴에 못을 박고 그 명예와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그 사람은 절대로 교회로 올 수 없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여러분,
교회는 누구나 올 수 있어야 합니다.
실수와 잘못을 한 사람일수록 그들에게 더욱 교회의 문은 더 넓게 열려있어야 합니다.
지혜롭지 못한 저와 여러분의 말 한마디가 교회 문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최소한 우리 꼬빌리시 한인교우 여러분들은 절대로 남의 실수와 잘못을 비판하지 마십시다.
절대로 남의 실수와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지 마십시다.
더구나 거짓말을 하거나 이웃을 모함하는 말은 절대로 절대로 입밖에 꺼내는 것은 물론 행여 마음에도 품지 마십시다.

나의 말 한마디가 본의 아니게 마음의 상처를 입혔으면 지체 없이 용서를 구하면서 반성을 하며 정직하고 부드러운 언어생활을 끊임없이 노력해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실수와 잘못으로 비난 받는 이웃과 한인사회를 위해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가르쳐 주신기도로 기도를 드려야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것이 나 같은 못난 죄인도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신자의 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17절)

열번째 계명이 다른 계명들과 구별되는 것은 다른 것은 행위를 금한 것이라면 이 계명은 마음과 생각을 금하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탐내는 마음은 무엇이든지 좋은 것을 차지하려는 삐뚤어진 마음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원래는 하나님의 것으로 잠시 맡겨둔 것임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 잘못된 마음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의 위대함을 이해하지도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무엇인지 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잘못된 마음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여러분.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남의 것을 부러워하고 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과 은혜를 발견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탐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심령 깊은 곳을 지배하게 하는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새롭게 깨달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이 우리들의 삶 속에서 많이 나타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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