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와 야곱

  • 연합 예배 (2002년 12월 25일)
  • 창 25:19-27 눅 2:1-14
  • 설교자: 이지 슈토렉

021225
에서와 야곱                 

창세기 25, 19-27
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 이삭은 사십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22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동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1)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세이었더라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
(개역한글판 창 25장)

눅 2,1-14
1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개역한글판 눅 2장)

<설교>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복음의 소식은 누가복음서의 마리아의 아들의 탄생입니다.
언제든지 교회가 이 복음서를 읽으면 구약의 예언들이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그 후, 이스라엘 민족이 몇 세대에 걸쳐 기다려온 예수의 탄생을 알게 됩니다.
오늘 창세기의 말씀은 몇 세대의 희망을 상기시킴으로써 시작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이다.”
구약이 없이는 교회는 길을 잃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교회개혁과 반나치즘 운동에서 다시 한 번 배웠습니다.
아브라함의 약속에 대한 깊은 관심 없었다면 어두운 대량학살의 시대와 상업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시대에 복음은 상실되었을 것입니다.
리브가에게서 태어난 후손들은 부분적으로 아람 사람과 혼혈이기에 자신의 가문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탄은 한 가문만의 일이 아닙니다.
성탄은 모두의 일이고, 처음부터 민족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치적이면서 세계적인 뉴스입니다.

다시 한 번 잠시 구약성경을 읽읍시다.
40년 이스라엘 민족은 사막과 노예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노예 비천함 기다림의 시간이 끝남의 암시입니다.
즐겁지 않은 대강절입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기뻐하라 민족이여.

하지만 아직 걸림돌이 남아있습니다. 리브가는 잉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욱 즐거운 성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간구를 들으시고 리브가의 몸에 쌍둥이가 생겼났습니다.
두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의 테마입니다.
왜, 선택된 하나님의 장남 이스라엘이 꼭 두번째가 되어야 합니까.
가인가 아벨, 에서와 야곱, 민족과 이스라엘, 신약에서는 방탕한 아들 – 둘째아들, 그는 모든 것을 두배로 받았고 그리고 첫째 아들은 질투합니다.
여호와의 계획안에 있는 장자권의 테마는 현재에도 교회안에서 존재합니다.
왜 우리는 꼭 두번째이며, 흩어진 자들이며, 왜 세상 사람들은 성공합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성탄이 그것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구약성경의 관점으로 신약성경의 이야기를 해석하면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성경의 증인들의 해석에 의하면 결국 장남들과, 숫자가 많고, 힘센 민족들은 실패합니다.
야곱은 형의 발목을 잡습니다.
방탕한 아들은 성대하게 받아들여졌고 가장 좋은 옷을 입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도 다를바 없습니다.
결국 둘째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하던 그 날밤에 축복의 야곱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에서는 그렇지않습니다.
야곱의 모든 구약성경의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도 첫째로 태어나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어야 했습니다.
아닙니다. 기회가 많은 첫째아들들은 마지막에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마리아가 첫아이를 낳아 그를 구유에 눕힌 내용을 읽을 때 우리는 그녀의 가슴에 못이 박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 처럼 힘없고 권력없는 사람에 속하지만 높은 자리에 오르며 많은 강한 민족들이 그를 섬길것입니다.
야곱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 이렇게 성취될것입니다.
이와 같은 첫째아들 또는 독생자가 하나님의 놀라우신 지혜와 민족의 역사와 우리들의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하나님의 능력의 의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우리들은 놀랍니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교회가 자신에 대해 놀랍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얼리스트 이 외의 사람들을 경시해서는 안됩니다.
선택이 자만심의 이유가 되지않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민족들과 사람들과 땅을 차지하기위해 다툽니까?
교회의 비밀은 다른 관점을 열어주고있습니다.
이 교회당에서 성탄은 차별당한 사람들, 억눌리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권리의 침해를 받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거룩한 날입니다. 동시에 도전을 주는 날입니다.
야곱은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았습니다.
장자권과 축복은 가치가 있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모든 노력에 기여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지기 전에, 여호와가 준비한 것이 우리들에게 성취되기 전에 우리들은 많은 변화를 분명하게 체험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과 죽음으로 장자권을 거부한 그 분이 우리를 이미 구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를 위하여 구주가 탄생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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