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선교의 과제

  • 연합 예배 (2003년 03월 02일)
  • 행 11:;12:
  • 설교자: 이지 슈토렉

030302
사도행전 11장 12장
<본문>
제 11 장
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3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제 12 장
1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쌔 때는 무교절일이라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설교>

이방인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그들과 먹고 마시는 것은 당시 교회에 대해 대단히 도전적인 일입니다.
다르게 해석하자면 이것은 바로 교회이고 이방인이 유대인들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 법과 제도를 거스리는 것이며 전통과 그들의 종교의 순수성을 지키지 않은 것이며, 심지어 베드로는 성령의 명령을 받을 때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그리고 그의 사도들은 어떠한 하늘의 뜻에도 복종하였고 그리고 아브라함의 제단의 음식들을 이방인들이 먹게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세리 사개오 이야기를 압니다.
그 같은 죄인이 얼마나 남몰래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까!
예수님은 그를 발견하고 그와 함께 먹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인의 예도 있습니다: 그녀는 얼마나 큰 믿음을 가졌습니까!
그녀는 주의 식탁에 모든이들이 참석할 수 있고 그것을 감히 요구할 수 있다는 대담한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을 개에 비유를 하며 개들도 주인의 상 아래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우리들이 먹을 때 – 주의 성만찬을 함께할 때, 진실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무엇이 성만찬이며 무엇이 그리스도의 몸입니까?
그것은 경계선을 전례없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은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입니다. 큰 변화입니다.
그것은 쓸모없는 이들, 하나님을 알지못하는 이들
주의 만찬에 참여한 이들도 누가복음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선택된 손님들의 모임의 반대입니다.
멸망하는 것을 찾아 구원하기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의로운 자들이 아니라 죄인들을 찾으시고 부르시고 환영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초청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며 우리들의 사람들이 아니며 우리의 수준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전체 교회에 퍼지자 예루살렘 교회에서 비판이 터져나왔습니다. 거룩하지 못한이들과
함께한 베드로의 식탁은 제사를 드리기에 불결하게 되었기에 유대 기독교인들의 눈으로 볼 때 복음의 섬김을 위해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비판이었습니다.

베드로는 4가지 관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령강림 시대에 성령의 은사가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아임을 깨달은 모든 유대 디아스포라들에게 임하였을 때, 2. 믿음의 모든 공동체는 세례를 받았고 아무조건없이 이방인들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였습니다.
3. 성만찬을 행함으로 베드로는 그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4. 완성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루살렘 기독교인들은 놀라와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도 구원을 얻게하시고 교회로 인도하셨다. 하며 놀라와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감옥으로부터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교회가 환란과 박해를 경험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죽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의 이전 동업자 어부였습니다.
헤롯은 군중심리를 이용해 기독교를 유대사회에서 내쫓으려하고 베드로를 잡아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금세 표적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회의 문을 이방인들에게 여는데 찬성했던 자이었기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에 적격이었을 것입니다.
기적으로 감옥을 나온 후 베드로는 박해로 열정이 크게 사라진 예루살렘 교회로 가서 야고보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두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오랫동안 베드로에 대해 사람들이 알지못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이전에 그리스도와 함께 했던 사람들 가운데 단지 일부만이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상황들로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몰락의 조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인 바나바와 사울에게 다시 주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예루살렘의 교회는 자신의 문제에 빠져있었고 기적을 기다렸습니다.
나중에도 볼 수 있겠지만 부활절이 가까워질수록 박해뿐아니라 권력의 구성이 이루어집니다. 그 권력의 구성은 이방인들의 선교의 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이방인 사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안디옥은 50만명의 인구로 로마제국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로 그의 찬란함으로 헬라문화적 전통과 동방의 신화와 신비의 중심도시였습니다.

회 공동체의 성장과 유대의 종교의식으로부터 점차적인 일탈과 그리고 점증하는 이방인의 경향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일찍 독자적인
집단을 생각하게 하였고 그래서 자신의 스타일대로 안디옥에서 그들을 기독교인 즉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고 불려졌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이론 없이 선교의 비전을 지닌 바나바는 중요한 사명을 받았고 바울은 그의 눈에 아주 특별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그것은 매우 매력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아주 의미있는 공동체가 되게 한 교회의 스타일인 선교의 기회를 발견하였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바나바와 바울의 동역을 주선하여 자신의 교회 공동체의 미래의 여정을 분명히 설정 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회당과 관련없이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동시에 그들은 로마제국에서 유대인들이 누렸던 특권을 상실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뿌리는 같지만 천년의 원수가 된 시작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로마제국에 무너집니다.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사명을 갖게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완전히 시작입니다.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유럽의 기독교의 몰락 아니면 그리스도의 식탁에서 새로운 세상의 건설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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