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까 라디오 1 – 라디오저널 초청손님과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마르띤 펜드리흐와 이종실과의 대화 (2003년 10월 19일 저녁9시)
들어가는 말(펜드리흐)
라디오저널 청취자 여러분께 마르띤 프렌드리흐 인사드립니다. 프라하 야곱의 사다리교회 (얼마전 까지 카리스마가 있는 이지
슈토렉 목사님께서 활동한 교회입니다.)에서 프라하 개혁교인들뿐 아니라 남한의 대한민국 공화국의 기독교인들이 모입니다. 스튜디오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이종실 목사님을 초청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목사님.
– 제가 이목사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했나요?
예 정확합니다.
-한국 어떤 도시에서 오셨나요?
수도 서울에서 왔습니다. 저는 광산촌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체코에 어떻게 오셨나요?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교인들이 무역관계로 먼저 이곳에 오셔서 그래서 그분들을 위해서 오셨나요?
대한예수교 장로교회는 외국에서 일하는 자신의 교인들을 위해 목회자를 파송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이
모이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회자를 찾은 뒤 독립교회가 됩니다. 저는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다른 민족들의 교회들의 경험을
교류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프라하에 왔습니다.
– 체코의 한국인들이 모국어 예배를 원합니까?
한국인들은 모국어로 예배드리기를 원합니다. 가족들이 외국생활에서 많은 스트레스가 있어 교회에서 고향 같은 느낌을 받고싶어 합니다.
– 우리나라에서 한국인들이 대체로 어떤 사업을 하십니까?
다양한 상품의 수입과 수출을 합니다.
– 이목사님께서는 우리나라에서 목사로서 일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직업이 있습니까?
예, 목사로만 일하고 있습니다.
– 남한에 개신교회 교세가 두 번째로 강하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불교가 28%이고 개신교가 18% 카톨릭이 6%
비종교인들이 절반이 조금 못된다(46%)고 하는데 남한에서 개신교회가 그렇게 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선교사들의 활동의
결과입니까?
선교사들의 희생을 언급하지 않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첫번째 순교자가 영국 선교사였고 몇몇 미국 선교사들이
풍토병으로 죽었습니다. 외국 선교사들의 2, 3세대 후손들이 지금도 한국의 생활 습관으로 일하면서 살고있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한국에서 개신교회가 매우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요인은 당시 민족의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오던 18, 19세기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시스템과 사상이 쇠약해져 세계의 변화를 이해할 수도
그리고 그것에 대책을 세울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국가종교였던 유교 역시 이러한 문제들에 응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기독교를 민족의 구원자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원래 한국인들은 불교신자들이 대부분이지 않았습니까? 한국에서 기독교인들이 불교신자들과 어떻게 관계합니까? 유럽 에큐메니칼과 같은 그런 노력이 있습니까? 아니면 두 종교간의 차이로 적대적입니까?
관용이 없는 신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습니다. 체코인들이 공산독재를 겪고 있을 때 남한사람들은 군사독재를 경험하였습니다.
당시 불교신자들과 기독교 신자들이 함께 인권을 위해 독재자와 싸웠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인권을 위한 종교간의 연대와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협력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북한에 기독교 신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에 대한 뉴스가 있습니까? 친척이나 아니면 아는 분이 북한에 계십니까?
죄송한데 정확한 뉴스가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아는 분도 친척도 계시지 않습니다.
– 꼬빌리시의 프라하 한인 공동체 교인 수는 얼마나 됩니까?
50여명 재직 인원에 40여명이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합니다.
– 꼬빌리시 교회에 함께 모이는 것이 얼마나 오래 되었습니까?
저와 가족이 꼬빌리시 교회에 나간 것은 벌써 7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 공동체가 그 교회에 생겨난 것은 2000년도 였습니다.
– 한국 기독교인들이 프라하에서 다른 예배 장소를 찾고 있고 그리고 다른 도시에도 아마 있는 것 같은데, 그 분들 가운데 오순절 교인들도 있다고 알고있는데요. 그들과 만나거나 아니면 관계가 있습니까?
제가 개혁신학부 박사과정 학생으로 공부하기 위해1993년에 프라하에 왔을 때 20여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목회자 없이 매주
모였습니다. 녹음테이프로 설교를 듣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로 회피할 수 없어 목회자를 찾을 때 까지 설교를 하기로
그분들과 의논을 했습니다. 1년 만에 체코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길 원하는 오순절 교회의 목회자를 찾았습니다. 이때 교인들은 우리들의
관계를 끝내지 않고 저를 선교사로 체코 교회에 파송하는 마음으로 보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교회의 거의 모든 교인들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프라하로 왔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들의 관계는 점점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이끄는 말 (펜드리흐)
라디오 저널 청취자 여러분, 초대손님 프로그램 입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교회 이종실 목사님과 체코 꼬빌리시교회의 한국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 얼마전에 꼬빌리시 교회 이지 슈토렉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분은 구약성경의 야곱의 이야기에 매우 영향을 받은 분입니다. 그것이 이 목사님에게 상상력을 줍니까?
이지 슈토렉 목사님은 제게 자주 „꼬빌리시 교회의 한국인들은 우리들의 천사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때
마다 저는 „꼬빌리시 교회의 체코인들은 우리들의 천사들이며 야곱의 돌베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개방적이고
관용적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서로 열린 마음을 볼 때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약속과 소망을
전해주는 천사가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체코 교우들과 한국 교우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꼬빌리시의 한국인들만을 보더라도
그들은 다양한 개신교회, 오순절 교회, 카톨릭의 여러 다른 교회들로부터 모였고 그리고 신학적인 사고도 다양합니다. 일터에서는
그들은 서로 경쟁자로 만나야 하기에 그들 사이에 갈등이 쉽게 일어 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천사를 발견한다면 행복한 삶을 살수 있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 한국인들은 다양한 활동이 있는 교회에 속하여 있습니다. 그 활동들에 참여합니까? 예를 들어 게이와 레스비언 기독교 모임인 로고스에 방문을 하거나 지원을 합니까?
현재 저는 한인 공동체가 잘 뿌리를 내리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고 이 일이 꼬빌리시에서 저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에 교회는 게이와 레스비언들의 삶에 대해 응답을 회피할 수도 그리고 피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남한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한국에서 차별을 받거나 거부를 당합니까? 아니면 받아들입니까?
우리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성을 타부시 합니다. 거리에서 남자와 여자가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키스를 할 수
없습니다. 혼전동거도 할 수 없습니다. 동성애자들을 사회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성에 대한 사고와
태도가 매우 개방적입니다. 한 젊은 한국 배우가 공개적으로 자신이 동성애자입을 밝혔습니다. 그의 발표는 사회에서 토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이 토론이 아직 동성애자들의 파트너 입법에 대한 논의에 이르기 까지는 아직 멀었습니다.
– 꼬빌리시 교회는 지역사회에 대해 의미있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디아스포라 개념입니다. 원래 그 말은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목사님께 이 디아스포라는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저는 디아스포라 개념을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의미로 이해합니다. 우리들에게 디아스포라는 외국에 이주하거나 살고있는 작은 (한인)공동체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 꼬빌리시의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이해합니다. 제가 인용해서 읽어드립니다. „디아스포라 상황은 교회의 토대이며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징표이다“. 이 목사님, 청취자들에게 이것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러한 교회의 입장에 동의 하십니까? 교회가 세상에서
해야 될 역할에 대한 이러한 전망에 동의 하십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그것을(말씀하신 질문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 잃은 양들을 찾으셨고 죄인들을 방문하셨고 그리고 그들과 먹고 마셨고 병든자들과 가난한자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연약한 자
어린이들을 환영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사랑의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 주위에서 꼬빌리시 교회를 인용해서 말씀드리면 „섬김과 증언의 장소“로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꼬빌시 사람들은
다시 인용해서 말씀드리면 „교회에 경계심, 염려, 두려움이 가득하다“고 느낍니다. 이것은 교회를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데 모든
관심을 기울이게 하여 자발적으로 „게토화“(자신을 폐쇄화)하게 하고 그 결과 사회에서 교회의 신뢰를 상실하게 합니다.
동의하십니까?
꼬빌리시 교회에서 그 부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게 체코교회의 폐쇄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 한국에도 기독교인들의 이와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까?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욕망을 잘 억제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교회가 사회와 다른 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 꼬빌리시의 한국인들과 체코인들이 얼마나 깊이 만나고 교제하고 친구가 되고 있습니까?
우리 체코 자매와 형제들이 예배 외에 더 많은 만남을 갖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경공부도 함께 하길 원하고 산보도 같이
가고 맥주 한 잔 하러 가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잘 응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27명의 교인들이
떠나고 21명이 새로 교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년 또는 이년 동안 이곳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배우고 익숙해 지면 벌써
체코를 떠날 시간이 됩니다. 그러나 물론 개인적인 만남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 언어 문제 이 외에 우리 체코인들이 한국인들과 무엇이 가장 다릅니까?
유럽의 개인주의와 아시아의 공동체입니다. 유럽의 개인주의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지만 아시아의 공동체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요구합니다.
– 꼬빌리시 교회 밖에서 본 체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이해할 수 없는 일, 외국인을 싫어하고 인종차별을 하는 것을 겪으신 적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없습니다. 특별한 어려움은 없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 한국인들은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인종차별이 한국에 있습니까?
아직 인종차별이 우리나라에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유럽인들 보다 미국인들을 더 잘 압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유럽보다 미국을 이해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 목사님은 자신을 디아스포라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늘 고향에 가기 전 까지 저는 제 자신을 디아스포라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목사님이 „믿음의 결과는 우리들이 기다리던 만족과 기쁨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에게 불평을 합니다.“라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이 목사님, 목사님이 불평을 하십니까? 아니면 목사님의 한국 형제들이 불평을 하십니까?
제가 불평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다스리고 계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말 한마디 해보겠습니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하나님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입니까?
예, 맞습니다.
대화를 마치며 (프렌드리흐)
라디오 저널 청취자 여러분께 우리들의 대화를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말씀해주신 이종실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마이크로 마르띤 프렌드리흐 작별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