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8월 3일까지 리베레쯔 지역 세바 수련장에서 영어 캠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참석자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
2) 용기, 배려, 협력의 다문화 수용 가치를 배우는 시간이 되도록
3)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영어 캠프가 되도록
성도 여러분들께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어캠프 주제에 대해 류광현 전도사님의 글입니다.
모두 꼭 한번 읽어주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Multi-Culture의 관점에서 바라본 룻기
– Narrative 속에 숨겨진 Courage, Care, Collaboration
옛날 이스라엘 나라에 왕이 없고 사람들이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살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베들레헴이라는 마을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의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 이름은 나오미였고,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그 지방에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은 가족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이주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엘리멜렉은 죽게 되었고,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습니다. 그 두 아들은 모압 여자와 결혼했는데, 말론의 아내 이름은 룻이었고, 기룐의 아내 이름은 오르바였습니다. 하지만 모압에서 산 지 10년쯤 지났을 때, 말론과 기룐도 거기서 다 죽어 버렸고, 이제 그 가정에는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두 아들을 잃은 슬픔에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나오미는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나오미가 길을 떠나자 두 며느리도 함께 가겠다고 울며 매달립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그 두 며느리를 달래 각자의 집으로 돌려 보내려 합니다. 자기를 따라와 봐야 아무 유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맞추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르겠다며 고집을 부립니다. “제발 저에게 돌아가라 말씀하지 마세요. 저는 어머니께서 계시는 곳에 늘 함께 있겠습니다. 저는 이제 이스라엘 민족에 속해 살 것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믿을 것입니다. 이후로 제가 어머니 곁을 떠나면 여호와께서 제게 벌을 내리시기 원합니다” (1:16-17).
부모와 고국을 떠나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낯선 땅에 가서, 아무런 미래도 보장되지 않는 현실 가운데,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기로 결심한다는 것, 거기에는 분명 많은 용기 (courage)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룻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자신의 삶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의탁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의 결심이 확고함을 알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돌아올 때 베들레헴에는 보리 추수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에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척으로 부유한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보아스였습니다. 어느 날 룻은 이삭을 줍기 위해 보리 추수하는 밭으로 나갔습니다. 우연히도 그녀가 가게 된 곳은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자신의 종에게서 룻이 누구인지를 전해 들은 보아스는 룻이 일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세심히 배려 (care)했습니다.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말하고, 다른 남자들이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게 했으며,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실 수 있게 했습니다. 심지어는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일꾼들에게 명하여 일부러 곡식 다발에서 이삭을 조금씩 뽑아 버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보아스는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잘 돌봐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방 여인인데 당신은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십니까?” 보아스가 대답합니다.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일과, 부모와 고국을 떠나 네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나는 잘 알고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 받으러 온 너에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한다” (2:11-12) 이 보아스의 말은 룻에게 큰 위로와 용기가 되었습니다.
보리 추수와 밀 추수가 모두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효성스런 며느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녀가 이제 고생을 그만 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으면 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너그러운 것을 지켜보면서 나오미는 한 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날은 보아스가 자신의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부르는 날이었습니다. 그런 날에는 보통 주인도 일꾼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일하고 먹고 마시다 성 밖 일터에서 잠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나오미가 룻에게 말합니다. “너는 몸을 깨끗이 단장하고 보아스의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가 누워 잠들거든 그의 발치에 가서 누워 있거라. 그 다음 일은 보아스가 알아서 할 것이다.” 이에 룻이 대답합니다. “예, 어머니의 말씀대로 제가 다 행하겠습니다.”
밤중에 자다가 몸을 뒤척이던 보아스는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음을 알게 됩니다. 보아스가 “너는 누구냐?” 하고 묻자, 룻이 대답합니다. “저는 당신의 여종 룻입니다.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당신은 저희 가정의 기업을 무를 자입니다.”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 중 누군가가 가난하여 그의 땅 중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친척이 와서 그 판 것을 다시 사서 그 땅을 처음에 분배 받은 사람의 소유로 되돌리는 일을 말합니다 (레 25:25). 그리고 여자가 남자에게 옷자락을 펴서 나를 덮어 달라고 말하는 것은 나와 결혼하여 내 보호자가 되어 달라는 일종의 프러포즈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룻은 보아스를 향해 소멸해가고 있는 한 가정을 이스라엘의 기업 무르기 전통을 통해 구속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 역시 그 구속되어야 할 재산에 포함되기 원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룻의 행동은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룻이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오히려 그녀를 안심시켜 줍니다. “내 딸아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현숙한 여인이라는 것을 나뿐 아니라 온 동네 사람이 잘 알고 있다. 아직 나이가 젊은 네가 젊은 남자를 따라가지 않고, 이렇게 네 남편의 기업을 생각하고 나를 찾아왔으니, 네 아름다운 마음씨가 처음보다 더하구나.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네 말대로 너에게 다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보아스는 룻에게 몇 가지 절차상의 문제를 설명해 줍니다. 우선 자신이 엘리멜렉 집안의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사람인 것은 확실하나, 자기보다 더 가까운 친척이 있다는 것, 그러므로 먼저 그에게 기업 무르기를 제안해야 하고, 만일 그가 거절하면 그 다음에는 자신이 그 책임을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또한 그날 밤 룻의 행동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새벽까지 거기 머물다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자신의 호의가 전달될 수 있도록, 그리고 보리 추수 이후에도 그 가정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보리를 여섯 되나 퍼 담아서 떠나는 룻의 편에 지워 보내고, 자신은 다시 성읍으로 들어갑니다.
그날 낮에 성문으로 올라간 보아스는 지체하지 않고 일을 진행시킵니다. 성읍 장로들을 증인으로 모아놓고, 그는 그 가장 가까운 기업 무를 자 아무개에게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되살 것인지 묻습니다. 처음에 그 아무개는 그러겠다고 말합니다. 나오미가 죽고 나면, 이제 그 엘리멜렉의 소유지는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에 보아스는 엘리멜렉 집안의 기업을 무른다는 것의 의미를 보다 확실히 설명해 줍니다. 즉, 죽은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이 현재 나오미와 함께 살고 있으므로, 그 집안의 기업을 무르게 될 경우, 그 땅은 죽은 말론의 소유로 회복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엘리멜렉 집안의 기업을 무르는 자가 그 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전혀 없고 오히려 손해만 있을 뿐이며, 따라서 이 일은 오직 형제 사랑의 순수한 동기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시켜 준 것입니다.
보아스의 설명을 듣고 그 아무개는 마음을 바꿉니다. 자기 재산에 손해가 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 아무개가 신을 벗어 자신의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을 때, 비로소 보아스는 엘리멜렉 집안의 기업을 사서 말론의 이름으로 다시 회복시킬 것과, 더불어 그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자기 아내로 맞이할 것을 증인들 앞에서 선언합니다. 이 모든 일들을 바라보면서 마을 사람들은 흐뭇한 마음으로 룻과 보아스를 축복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압 여인 룻과 이스라엘 사람 보아스가 만나 이룬 이 새 가정에 아이를 주십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오벳이며, 그가 바로 후에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는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이 다윗의 혈통을 따라 예수님은 후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며, 룻은 이방 여인이면서도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은총을 입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모두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살던 암울한 시대에, 하나님은 룻과 보아스의 만남과 협력을 통해, 그분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켜 가셨습니다. 룻은 비록 이방 여인이었지만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면서 용기 있게 낯선 이스라엘 땅으로 나아갔으며, 이후 자신을 받아 준 그 새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자존심 강한 이스라엘 사람이었지만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잘 돌봐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신의 공동체에 들어온 그 이방 여인 룻을 자비로운 마음으로 세심히 배려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공동체를 먼저 생각했던 룻과 보아스의 신앙과 삶은, 소멸해가던 엘리멜렉의 집안을 다시 세웠을 뿐 아니라, 그 암울한 시대 속의 베들레헴 공동체를 다시금 하나님의 뜻 안에 바로 세우는 일을 위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다문화 환경 속에서 이주민에게 요구되는 용기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오며, 정착민에게 요구되는 배려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한 인식에서 옵니다. 용기 (Courage)와 배려 (Care)라는 겉으로 나타나는 태도 이면에, 믿음 (faith)과 자비 (mercy)라는 영적인 가치가 빠져 있다면, 그 인간관계는 오래도록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주민이었던 룻과 정착민이었던 보아스가 서로의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언어적, 계층적 장벽을 극복하고 공동체의 구원과 회복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온 우주를 품고 계시는 하나님 안에서 만나고 교제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다문화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분을 의지하고 경외하는 사람들간의 그 아름다운 사랑의 협력을 통해 그분의 구원의 역사를 온전히 성취해 나갈 것입니다. 이번 꼬빌리시 영어캠프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이 다문화 시대의 리더로 아름답게 서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