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 한인 예배 (2004년 06월 13일)
  • 눅13:1-9
  • 설교자: 다빗 유레흐

*다빗 유레흐 전도사님이 6월 6일 첫째주일에 목사안수를 받고 우리 꼬빌리시 한인들을 위한 첫 설교임.

(13. VI. 2004)

본문: 누가복음 13:1-9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8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은 교역자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예배당에 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설교를 통해 오늘 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추상적인 말씀이 아니라 우리들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우리들이 가야할 바를 보여주는 말씀을 하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주의 깊게 읽다 보면 자신들의 삶의 방향이 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모여든 무리들이 눈에 띕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 한 남자가 그 군중들 사이로 뛰어들어와 지금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학살 소식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응시하며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소리 나는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잠시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 뉴스에 어떻게 예수님께서 코멘트를 하실지 궁금해 했을 것이라고 우리들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 말씀이 이 세상의 사건과 사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빌라도, 그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한 사람이며 예루살렘을 통치하는 최고위직 로마 관리였던 그가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로마가 갈릴리 사람들을 의심하였던 것은 로마 제국의 지역통치를 위협하는 정치적 급진파와 극단주의자들이 그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의심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재단에 희생제물을 성전에 가져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던 많은 갈릴리 순레자들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성전에 올 때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가장 값진 자신의 것을  희생재물로 가지고 옵니다.

희생 제사를 지낼 때 죽은 짐승의 피가 흐릅니다.

바로 이 제사의 장소에서 불쌍한 갈릴리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학살당한 이들의 피가 희생제물의 피와 섞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스캔들입니다.

하나님에게 제사 드리는 장소이며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거룩한 곳이 학살의 잔혹한 현장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종교사상은 우연한 사건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잘못에 대한 당연한 댓가로 받아들였습니다.

불쌍한 갈릴리 사람들의 죽음은 그들의 죄에 대해 상응하는 대가였습니다.

예수님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으면 이런 잔인한 죽음을 당하게되었는가? (말들을 합니다.)

전통적인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예수님에게 그들은 도전합니다.

죄와 벌은 어떤 관계입니까?

죽음과 벌은 이전에 지은 죄에 비례합니까?

예수님은 그 논리를 분명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재앙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죄에 대한 형벌로서 갈릴리사람들이 죽었다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죄의 희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죄도 예수를 실제로 죽게한 빌라도의 죄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의 논리를 완전히 거부합니다.

어떤 사람은 암으로,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로, 또 어떤 사람은 암살로 희생되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죽을 죄를 진 하나님의 심판이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실로암에 있는 예루살렘 망을 보는 탑 가운데 하나가 무너져 사람들이 죽은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런 사고방식을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이 사람들의 죽음은 그들의 저지른 잘못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단지“  (우리식으로 표현해서) 재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물론 예수님은 두 재앙으로 죽은 사람들이 허물과 죄가 없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죄에 대해 침묵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지금 자신의 주위에 모여 있는 사람들과 모든 이들의 죄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죄없는 사람이 없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과거의 죽은이들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른 이들의 허물과 죄를 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바라보지 못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합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졌기에? 라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죄의 문제로 방향을 돌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을 자신의 거울 앞에 서게 하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무엇을 해야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우리들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과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불안한 삶을 지속하는 우리들에게 갈 바를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는 길이며 그 깨달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그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회개를 원하시는 뜻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 그리고 우리를 여호와께 이르도록 하게 하는 것 그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신실한 관계는 올바른 길입니다.

여기서 아버지 집을 떠나 자유롭게 살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방탕한 아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잘못과 죄를 깨닫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그리고 그는 바른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 집의 종이 되겠다고 결정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마중나갔으며 사랑으로 그를 맞아들이면서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눅15,24) 하였습니다.

사람은 꼭 죽지않더라도 죽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길을 잃지않더라도 길 잃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게 된다는 예수님의 경고의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 나오는 무화가 나무 비유는 열매를 내지 못한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심겨진 포도원의 주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미 삼년째 열매 맺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필요하게 땅을 소비하지 않고 다른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그 나무를베어버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자 포도원 지기가 자신의 주인에게 뜻밖의 반응을 합니다.

그는 그 나무를 옮겨 심을 때부터 관리했고 지금도 관리하고 있는 포도원 지기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제 그에게 불필요한 일을 없애주려고 했을 수 있습니다.

포도원 지기는 이 나무를 돌보는 것이 더 이상 불필요한 일이라 생각하여 나무를 버려두거나 아니면 베어버리고 싶어도 그것을 자기가 임의대로 결정할 수 없고 단지 자신의 생각을 주인에게 제안만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주인의 생각과는 반대로 이 포도원 지기는 나무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고싶어, 무화가 나무를 베지않도록 주인에게 간청하여  나무가 열매를 내도록 특별히 신경을 써서 노력을 하였습니다.

포도원 지기는 무화과 나무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짐으로써 무화과 나무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나무는 열매를 맺는 책임이 사라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았고 한번 더 기회를 갖게되었습니다.

이 무화과 나무 비유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통해 우리들을 위한 초청과 자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정원 관리자이며, 우리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열매 맺지 못하는 우리를 자신의 책임으로 삼고 주 하나님의 열매를 얻도록 우리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십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무화과 나무의 생명을 연장시킨 포도원 지기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없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은 그의 구속하심으로 믿음과 은혜 안에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셔서 우리들이 열매 맺는 무화과 나무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열매를 맺는데 최적의 햇빛이며 물이며 기름진 옥토인 하나님 말씀으로 달려가십시다. Amen.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시기 전 그당시 사람들은 목자없는 양과 같았습니다.

주님의 현존이 없이는 우리들 역시 목자 없는 양과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주님은 이 세상, 교회와 우리들을 사랑하시사 당신의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세상의 변화의 한 가운데에 주님의 말씀의 확신 안에 거하게 하시사 우리가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 우리를 붙잡아 주셔서 당신의 손에서 누구도 우리를 빼앗아 가지 않도록 하옵소서.

우리를 담대하게 하사 유혹과 악의 세력을 이기게 하옵소서.

환란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를 치유하시사 적은 믿음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웃에 마음의 문을 열게 하옵소서.

주의 성령께서 우리들을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Amen.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이 이전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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