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와 우리들의 길

  • 한인 예배 (2006년 11월 12일)
  • 행 1:1~11
  • 설교자: 이종실

061112

성경: 사도행전 1장 1~11절 / 제목: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와 우리들의 길

<본문>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해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설교>

체코 국가통계청이 체코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것과 가장 신뢰하지 않은 것 각각 두 가지 통계를 낸 것이 몇 주 전에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체코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것은 언론과 군대이며 반대로 가장 신뢰하지 않는 것은 전문가와 교회입니다.

교회에 대한 이러한 통계가 체코 슬로바키아 교회들과 함께 일하는 저에게는 매우 실감이 나고 그 불신의 정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무신론적인 분위기가 일반적인 체코사회에서 사람들은 기독교의 천국과 지옥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서 대단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몇 해 전에 경험하였습니다.

성경을 보급하는 어떤 선교단체가 브르노 대학 기숙사에 성경책을 무료로 보급하였습니다.

성경책을 그냥 배포했으면 문제가 없었을텐데,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요한복음 3장 18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라는 요지의 내용과 이 책을 기증하는 단체에 대한 소개를 스티커로 만들어 성경책 첫
페이지 빈 공간에 붙여놓은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기숙사 학생들은 학교 당국에 <우리는 믿지 않을 권리도 있다. 이것은 인권침해다>라고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여 결국 배포되었던 성경책을 모두 수거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 대부분은 기독교를 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생산하는 종교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기독교 이미지 속에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 생각하는 기독교인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습니다.

그들의 눈에 기독교인들은 입으로는 사랑을 이야기 하면서도 삶은 대단히 이기적인 사람들로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우리들의 이런 자화상에 대해 진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천국은 분명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비록 각각 다른 나라의 여권을 가지고 다른 나라의 법 아래 살고, 우리 모두는 국적과 여권과 피부색깔과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때부터 제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까지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기간이 40일이라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40일 동안 그가 하셨던 일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3절 말씀을 표준 새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를 두고 여러 가지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이별의 순간 40일 동안 나누고 싶었을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신 3년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복음서들은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3년 동안 제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가르쳐주신 많은 가르침 가운데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마지막 40일 동안 다시
반복해서 말씀하실 만큼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생애>와 관련해서 그만큼 밀접하고 중요한 것임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28장 31절을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고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글을 마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그토록 강조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고 강조하셨던 <하나님 나라> 그리고 그러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뜻을 받든
사도들이 목숨도 아끼지 않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이기적인 기독교인들의 자화상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을 지적 받고
있습니다.

그 오해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관심과 신앙고백이 <하나님 나라(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성경은 물론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니>(21절)라고
말씀하셨으며, 마태복음 18장에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3절)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 보낸 편지에서 <천국에 들어가도록 우리를 구원하신다>(딤후 4:18)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 문제는 기독교의 핵심이고 이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와 자동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관심은 곧 구원에 대한 관심이며 동시에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본질적인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천국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만 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에 대해서 더 자주 더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과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그들 곁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오늘 사도행전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처럼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이 말씀의 방점은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마태복음 6장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9절과 10절 두절만 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에 들어가게 하옵시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들어가게 하옵시며>가 아니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 기도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먼 훗날에 다가 올 당신의 왕국을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그 순간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고 그리고 그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병자들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 내신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는 하나님 나라의 표징 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의 복음서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설교하신 직후에 벙어리 귀신을 쫓아 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가 어떻게 귀신을 쫓아 낼 수 있는지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서로 이런 저런 생각들을 앞다투어 말하다가 논쟁이 일어납니다.

귀신을 축출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귀신의 두목 바알새불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쫓은 것이라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또 다시 귀신을 내쫓거나 아니면 다른 기적을 통해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이었음을 증명해보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의중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고, 또 가정도 서로 싸우면 무너진다. /그러니 사탄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가 어떻게 서 있겠느냐? 너희는 내가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내쫓는다고 하는데, /내가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내쫓는다면, 너희 아들들(귀신을 축출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으로 귀신을 내쫓는다는 말이냐?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왔다.> (눅 11:17~20)

예수님은 사람들을 얽매고 있는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을 시킴으로써 하나님의 통치가 도래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천국은 우리가 죽은 이후에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왔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 완성이 될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할 때 <이미 그러나 아직> 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이미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완전한 하나님의통치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왕국과 나라들이 역사 속에서 흥망성쇠를 하고, 때론 분쟁을 하고, 때론 평화를 누리기도 하지만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는 이 세상에 다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희로애락의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통치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의 뜻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지고 역시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땅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성경 말씀의 맨 처음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입니다.

하나님은 하늘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하신 이 세상을 보시며 성경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계속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창조된 이 땅 이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보시기에 너무 좋은 이 세상에 하나님은 하늘의 천사들을 두시고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세상 속에 살 곳을 마련하도록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출애굽기 25장 8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머물 성소를 지으라고 하여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걸으셨고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도록 하기 위해 율법을 만드셨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 나라를 들어가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고 행복하게 사는데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신의 뜻을 신명기 10장 12절-13절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지금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주 너희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모든 길을 따르며,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섬기며, /너희가 행복하게 살도록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일이 아니겠느냐?>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해 결국 율법만으로 해결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은 친히 자신이 육신의 몸을 입고 아들의 모습으로 우리들처럼 이 세상에서 생활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나사렛 예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에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기독교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완성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는 제자들이 길을 걸어가거나 아니면 다시 바다에서 노동을 할 때, 밥을 먹을 때, 서로 삶의 근심 걱정거리를 모여서 이야기 할 때 바로 그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신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관심은 하늘이 아니라 이 세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이 세상이란 의미는 바로 우리 기독교신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갖기보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완성되는 것>에 관심을 더 갖기를 바라신다는 뜻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기다릴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신자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문을 통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어떻게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
오실 것을 어떻게 기다리고 있는지> 그들의 신앙생활 모습을 듣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살전 1:8~10)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이 주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주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어 다른 모든 나라들의 신자들의 모범이 되었던 것>(6, 7절)소식을 사도 바울은
들었습니다.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의 특징은 환난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며 주님을 본받는 신앙의 올바른 자기 길을 걸어 갑니다.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조급합니다.

쉽게 좌절합니다.

자신의 욕망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결국 자기 길을 걸어갑니다.

69년 초에 히트 시켜 오늘날까지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애창되는 팝송 <마이 웨이(My way)>를 아실 줄 압니다.

<마이 웨이> 노래 제목만 들어도 노래를 잘 부를 줄 모르는 저 같은 사람도 <프랭크 시나트라>의 중후한 목소리로 흐르는 멜로디가 저의 가슴을 꽉 채우며 흐르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30년 동안이나 마이 웨이를 열창한 <프랭크 시나트라>는 과연 이상적인 마이 웨이의 주인공이었습니까?

그가 걸었던 길은 세계 최고의 범죄조직인 마피아와 무관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사생활은 문란하였습니다.

그가 숨을 거두기 전 병원에 누워 있을 때부터 그의 재산을 놓고 그의 전처와 현재의 처, 전처가 낳은 자식들과 현재의 처가 낳은 자식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그가 불렀던 노래 <마이 웨이>는 말할 수없이 감동적일 정도로 훌륭했지만, 그러나 그가 걸었던 그의 인생 <마이 웨이>는 이상적이거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림이 없는 삶은 그야말로 <마이 웨이>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따라 다닌 그의 제자 한 명도 자기 길로 갔습니다.

사도행전 1장 25절에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가 갈 곳으로 갔습니다>라고 기록하고 되어 있습니다.

<마이 웨이>를 가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마태복음 27장은 가롯 유다가 목매어 자살했다고 하고 오늘 사도행전 1장 18절은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와 죽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두 이야기를 합치면 목매어 자살한 가롯 유다의 시체를 아무도 거두어주지 않고 방치되다가 마침내 목맨 줄이 끊어져 시체가 땅으로 곤두박질 하면서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마이 웨이>의 종말은 비참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여러분,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삶은 오늘 우리의 일상의 세상의 삶과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이끌어주어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구원을 이루가게 합니다.

프라하 꼬빌리시 교우들이여!

여러분들도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처럼 환난 중에도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말씀을 들으며 주님을
본받는 삶을 노력하는 신실한 신자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복된 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Subscribe
Notify of
guest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