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세드미츠까

2004년 1월 33호

세드미츠까(Sedmicka)


새해들어 물가가 치솟는다. 체코인들이 유럽 연합인이 되는 길목에서 나타나는 현상의 하나이다. 유로를 체코통화로 사용하려면 국가부채가 국내 총생산(GDP)의 3퍼센트 미만이 되어야 하기에 현재 6퍼센트가 넘는 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해 외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하면서 다른 한편 세금을 높이고 최대한 국민의 사회보장을 줄이는 정책을 정부가 펴고 있다. 그야말로 국민 전체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필자는 정치와 경제에 문외한이어서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형편이 아니지만 작금의 체코 사회를 보면, 고등학교 시절에 도시락도 싸가지고 올 형편이 못될 만큼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 담임 선생님이 점심값으로 준 그 돈으로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하고 왔다는 한 연예인의 회고담이 머리에 떠오른다.
“희망을 기대할 만한 고통인가?” 체코 국민들은 당연히 불안해 한다. 노바 텔레비전의 인기 있는 정치 토론 일요일 프로그램 세드미츠까가 새해 첫날에 특별히 편성되었다. 수상 슈삐들라와 야당 시민당 당수 또뽈라넥이 토론자로 나왔다. 세드미츠까는 한 주간의 뉴스의 초점을 주제로 설정하여 매주 일요일 선정된 정책 당사자들인 여야 정치인들의 토론 프로그램이다. 토론과 농담을 좋아하는 체코 국민들은 한가한 일요일 오후 소파에 기대어 맥주를 마시며 짜릿한 토론을 즐긴다. 일요일 정규 프로그램도 아닌 새해 첫날에 그것도 정부와 야당의 대표들이 나와 공방을 벌리니 자연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토론 주제의 하나가 당연히 높은 세금과 물가 상승의 경제문제였다. 토론 중에 사회자가 국민들에게 높은 세금의 짐을 맡기면서 의회 의원들은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정치가들의 윤리의식을 질타하였다. 그 예로 의원 회관에서 부과세 없는 값싼 음식을 먹는 것에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의식을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수상 슈삐들라는 의회 의원에 대한 세금부과를 정부가 법안으로 올렸지만 의회 특히 야당인 시민당이 반대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공박을 받으며 쩔쩔매던 사민당 당수 또뽈라넥은 사회자가 제시한 의원 회관의 메뉴판을 보고서야 의원 회관의 밥값을 아는 눈치였다. “하기야 그렇게 지위가 높은 양반이 자기 돈으로 밥을 사먹어 본적이 있겠는가?” 한국인의 경험으로 대충 때려잡아본 필자의 눈치이다.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이 프로그램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사회적 기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필자인 본인은 체코 사회와 그 인식의 변화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별로 애정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자국민에 대한 정치 지도자들의 인식이 저 정도인데 외국인들에게야 하물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외국인의 소외감과 체코인과 그 사회에 대한 애정이 함께 할 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인생의 황금시절에 외국인으로 살면서, 냉소주의와 개인주의로 도피하여, 자신의 생이 황폐해 지는 것을 더 더욱 바라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물가가 치솟고 자국민의 사회보장 혜택도 줄이는 마당에 외국인들에 대한 배려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이중의 어려움에 시달릴 새해에 체코의 한국인들이 서로를 존중해 주는 마음과 나아가 체코의 다른 외국인들과 뜻 있는 체코인들과 연대를 하며 소외감을 극복하는 것이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며, 동시에 우리들이 살을 맛 대며 살아가는 체코 사회와 그 사람들에 대해 애정을 갖는 길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받으며 인간답게 성장한다.

갑신년 새해 독자들의 가정에 만복을 기원하며, 더 밝고 아름다운 체코의 한인 사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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