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학사 지역 – 밀리츠의 예루살렘
베들레헴 광장에서 남쪽으로 계속 걸어가서 종교개혁 시대 이전의 유적과 관련된 문화재를 만나게된다. 재건축한 학사 일대의 둘러싸인 담 안에 회색 수녀(šedy sester) 수도원인 성 바르토로메 바로크 교회당의 탑이 높이 솟은 곳이 있는 꼰빅스께 울리쩨 (번역하면 학사 거리 – 옮긴이) 까지 걸어간다. (평일에 건물의 일부가 장식무늬의 아치와 연결된 새롭게 수리된 앞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리고 좁은 통로 길을 따라 바르또로미예스까 울리쩨 (바르토로메 거리 – 옮긴이)까지 걸어나오면 교회당 입구가 나온다. 왼쪽(동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학사 지역을 둘러볼 만 하다.)
설교자들을 교육하던 끄로미에지쉬의 밀리츠 (Milič z Kroměříž)가 1472년에 조직한 프라하 매춘녀들을 수용하는 새 예루살렘(Nový Jeruzalém) 이라는 사회복지 시설이 있었던 장소가 바로 이 학사 지역이다. 사회복지 시설은 그러나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다. 일부 건물을 까렐 4세가 대학에 주었고 나머지는 시토 수도회에 넘겼다. 후에 밀리츠 추종자들의 모임이 이 시설을 다시 시작하였고 그리고 베들렘 까펠 운영을 위한 유리한 조건들을 만든 갱신운동을 도왔다.
반 종교개혁 시대에 시토 수도회를 이어 1660년에 독일을 포함하여 귀족집안 출신의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로서 멋진 학사를 이곳에 건축한 예수회가 구 건물들을 차지하였다. 젊은 귀족들이 (개혁파 가문 출신도 포함하여) 로마 카톨릭 종교교육을 이곳에서 받았다. 예수회가 해체된 후(1773년) 인쇄소로 용도변경을 위해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 한때 대규모 식당이었던 곳에서 다양한 문화 활동들, 음악회와 무도회가 열렸다. (1798년 이곳에서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863년에 바그너 Richard Wagner가 연주를 하였다.) 1840년에 이곳에서 첫번째 체코 무도회가 열렸고 나중에 이곳은 영화관이 되었다. 1830년부터 이곳은 안토닌 드보작(Antonín Dvořak)이 공부를 했던 프라하 오르간 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재건축된 학사 지역은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고있다. 바르또로미에이스까 거리 남동쪽의 모퉁이에 이 문화재의 주요 일지를 적은 작은 문화재 설명판이 있다.
바르또로미에이스까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블다바 강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12세기 초의 가장 오래된 로마 로툰 양식의 성 크지슈 채플에 다다른다. 바로 가까운 까롤리나 스비에뜰라 거리 모퉁이에 (316호 건물에) 후스파 시대에 레츠꼬바 (Rečkova)라는 학생 기숙사가 있었다. 이 기숙사는 양종성찬 시대의 체코 교회 학생들을 위해 세워진것이다. 약간 떨어져 블타바 강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고 1519년에 슈마바 지역의 보우비나에서 프라하로 온 뽀우스떼브닉(Poustevník)으로 알려진 설교가 마뗴이 (B. Matěj)가 진흙벽돌로 세웠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1520년에 프라하의 빈민들을 헌신적으로 이곳에서 보살폈다. 대담한 설교로 옥에 갖히고 결국 프라하에서 추방을 당하였다.
우리들의 여행은 이곳 바르또로메이스까 거리에서 오던 길을 되돌아 동쪽방향으로 걸어간다: 나 뻬르슈띠녜 (Na Perštýně) 거리와 만나는 사거리까지 걸어가서 오른쪽으로 돌아 다음 왼쪽편 거리 마르띤스까 (Martinská)까지 걷는다. 여기서 종교개혁 시대의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건물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