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 예배 (2003년 10월 05일)
- 골 1:24-29
- 설교자: 이종실
031005ek
골로새서 1:24-29
그리스도 영광의 소망
<본문>
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로새라는 도시는 오늘날 터어키 나라에 있었습니다.
그 도시에 우리교회 처럼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 읽은 설교 본문입니다.
골로새 1장 1절에 이글을 쓴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 그리스도를 섬겼습니다.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은 고난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고난은 박해와 다양한 교회들 안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문제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난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이 기쁨은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지 그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았다고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다 더 극적인 표현을 씁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24)
이 말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충분하지않았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고난에 나도 동참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죄의 속죄를 위한 고난입니까?
아닙니다. 죄의 속죄를 위한 고난은 완전히 그리스도안에서 완성되었고 바울이 동참해야될 여지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미 이 사실을 이 서신서에서 그와 같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죄를 홀로 담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홀로 아버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홀로 고난을 당하셨고 그리고 홀로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홀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죄를 위한 대속의 사역은 완전히 그리스도의 일이며 인간이 그 사역에 동참할 조그마한 여지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한 대답을 위해 먼저 바울의 고난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바울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사명을 위해 고난을 받았습니다.
25절에 사도 바울의 사명은 “너희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에대해 28, 29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이것은 설교의 사명과 교회를 세우는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은 이 세상에 선포되어야 할 말씀을 위한 그리고 세워져야할 교회를 위한 고난이었다고 우리는 이해합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으로 그 고난에 동참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 줍니다.
첫번째는 이세상에 교회가 세워질 때 고난이 뒤따르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세상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당이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성도의 교제를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 어려움 그리고 고통을 예상해야만 합니다.
만약 교회가 이세상과 다른 것이 없다면, 교회가 세워질 때 고난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말합니다.
두번째로 교회를 세우기위해 고난을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인간의 계획과 노력으로 교회가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시작하셨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일에 우리를 초대하였고 그리고 함께 일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저는 복음의 선포와 교회의 설립과 성장과 완성을 위해 고난을 당한 그리스도의 그의 몸된 교회에 대해 우리,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냉담하지않는가? 라는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교회가 어떤 기쁨을 주는가?
나에게 교회가 유익하고 유익하지 못한 점이 무엇인가?
교회 안에서의 나의 봉사와 섬김이 자신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교회를 위해서인가?
혹시 이것이 교회에 대한 우리 자신들의 질문은 아닙니까?
본문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겪으면서 그토록 수고한 설교와 교회의 설립은 구체적으로 이세상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앞에서 언급한대로 바울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26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비밀>로 표현되어있습니다.
사전에 비밀(祕密) 이란 단어를 ①숨기어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 ②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 ③언어나 문자 따위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전할 수 없는 깊은 뜻 등등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신비를 어떻게 설명해야합니까?
이 질문은 정확하게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신비가 무엇이 아니라 누구라고 규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7절에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는 개인으로 규정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자신의 사명으로서 그가 이루려는 하나님의 말씀은 곧 우리가 전파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전파될 때 그리스도는 더 이상 삶의 과거의 존재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개인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과 만납니다.
성령의 사역을 통해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사람들 사이에 만남이 일어납니다.
그리스도는 믿는 우리들 안에 머물러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여기서 너희들은 누구입니까?
21절에서 그는 말합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원수되어 이 너희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 아래 놓였습니다.
그것은 죄인들 너희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 죄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죄인들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전파된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활동에 의하여 우리들과 만나고 우리들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우리는 구속을 받았고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가 계신곳 어디에나 죄용서가 있기에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계신 사람들과 화해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해는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평을 그리스도가 세울 때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화해가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습니다.
죄 용서 없이 하나님과의 화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가 있는 곳에 참된 희망을 정착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영광의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희망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희망을 가지기 위해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무엇인가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반복을 거듭할수록 사람들은 결코 분명해지지 않는 미래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희망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한편 동시에 우리들은 자신을 기만하는 어떤 것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등을 돌리고 하나님과 화해하지않은 죄의 짐을 짐지면서 우리는 참된 소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참으로 죄용서와 하나님과의 화해를 가져올 소망입니다.
우리들이 그와 함께 있을 때 소망을 얻을 것입니다.
이 소망 때문에 신자는 구원의 완성을 향합니다.
설교와 설교를 통해서 선포되는 그리스도는 단지 하나님과의 화해를 가져오는 메시지로만 남지않고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의 완성을 추구하게합니다.
28절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완전한 자라는 단어는 흠과 결함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만 오히려 이 단어는 성숙한 어른을 의미합니다.
거듭나 크리스쳔이 되는 경우 그것은 우리가 처음 태어날 때 젖먹이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린아이에 머물러있다면 건강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린아이와 같은 내가 아무리 불타는 열심이 있어도 그 열심은 교회 안에서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믿음생활은 완성을 향한 끝없는 행진입니다.
성장은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기대되고 성숙은 신자들이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2장 2절에서 자신의 노력이 신자들의 성숙인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사랑으로 결속되어 마음에 격려를 받음으로써, 풍부하고도 완전한 이해력을 갖게 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골 2장)
설교는 이 한가지 목표를 향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왜 교회당이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매주 만나 무엇을 해야하는지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있습니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가 여기서 이 장소 야곱의 사다리 교회당에서 전파되어야 합니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가 언제나 이곳에서 모든이들에게 들려져야합니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와 세상과의 만남이 여기서 일어나야 합니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와 희망 없이 살아가는 인간이 여기서 연결되어야 합니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깨달은 과정을 통하여 함께 걸어가며 연합하여 완성을 추구하는 신자로서 영광의 소망을 함께 향하여 갑니다.
오늘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권면합니다.
여
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의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은 그의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표준새번역 골 2:6-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