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03년 12월 28일)
- 마 2:13-23
- 설교자: 다빗 유레흐
031228
본문: 마태복음 2:13-23
제목: 성탄소식 이후의 예수님
<본문>
13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설교>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제가 믿는 루터교 전통은 카톨릭 전통과 똑같이 교회력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해의 모든 주일과 기독교 기념일이 구체적인 성경 본문 말씀과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력에 따른 예배와 강단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거나 예배 때에 설교가 되어집니다.
교회력에 따라 예배와 강단을 만든 사람들에게는 2가지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성경 말씀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그 본문 말씀이 전체 교회 연도 안에 조화롭게(균등하게) 할당이 되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두번째는 그러한 모든 성경 본문이 하나님에 관한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예배 참석자들을 복음 전도로 부르기 위함이었습니다.
스웨덴 루터교회의 예배와 강단에 따라 우리가 조금 전에 읽은 성경 본문 안에는 우리를 위한 메시지가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오늘 우리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유대 땅은 헤롯왕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날 거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헤롯은 태어난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유대 땅의 왕이었던 헤롯은 그 누구도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거나, 그의 자리를 요구하지 못하게 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베들레헴에 태어난 두 살 아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행했습니다. 헤롯의 명령에 따라 모든 사내아이들이 죽음을 당했으며, 그 대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아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의 대 학살의 명령이 떨어지기 바로 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였고, 마리아와 아기예수를 데리고 안전한 때가 올 때까지 애굽으로 피신해 있으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주의 사자는 헤롯이 계획했던 위험이 닥치기 전에 요셉에게 미리 경고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때가 밤이었지만 곧바로 일어나서 예수님과 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났습니다.
요셉은 헤롯왕이 죽을 때까지, 주의 사자가 다시 꿈에 나타나 안전한 때가 와서 예수님과 마리아를 데리고 이스라엘로 돌아갈 것을 말해줄 때까지 애굽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다시 주의 사자가 말하는 그대로 행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했으며, 하나님을 믿고 그 분 안에 자신의 인생을 세워 나갔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첫눈에 보기에 그렇게 재미있거나 중요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의 도움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었는지를 묘사한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이야기에는 우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잠시 살펴봐야 하는 몇가지 재미있는 연관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오늘 본문 말씀과 관련되는 이야기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꼬빌리시 교회 이름의 일부이기도 한 야곱의 아들 요셉도 오늘 본문 말씀의 요셉 처럼 애굽으로 가게 되는 우연의 일치를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요셉은 자신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형들은 요셉을 없애버리려고까지 했습니다 .
그러나 요셉을 죽인다는 것은 너무했는지 형들은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신앙심과 올바름으로 애굽 제국에서 파라오 다음으로 높은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의 친척들이 그를 따라 애굽으로 이사해 왔으며, 그렇게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에는 존경 받는 손님이었지만 요셉이 죽은 후에는 애굽 사람들과 동등한 백성이 되었고, 그리고 결국 끝에가서는 애굽 사람들의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파라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을 다스리게 될까봐 겁을 먹었고, 자신의 권력과 자리를 뺏기게 될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파라오의 딸 덕분에 히브리의 한 사내아이가 살아 남게 되었습니다. 파라오의 딸은 강물 속에 떠내려가는 그 사내아이를 불쌍히 여겨 건져주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모세 였고, 그 이름의 뜻은 „건져낸다“ 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자유의 삶으로 „ 건져냈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자 마자 죽어야 할 운명이었던 아이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으로 자신의 민족을 인도해 냄으로 그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생활로부터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자유의 사람들이 되는 이스라엘 전환기 역사 속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이 이야기들의 유사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의 요셉이 본의 아니게 애굽으로 가게 된 것처럼, 신약의 요셉 또한 유대 땅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되어 애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통치자가 예수님과 모세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거라는 생각에 그들을 죽이려 했을 때, 예수님은 물론 모세도 그 죽음의 위협 바로 앞에서 피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냄으로 그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그 죽음을 이겨내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었던 두 아이들은 자신의 백성을 구원해 낸 다음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을 바로 앞에 하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과 모세의 죽음의 때와 장소를 결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지 일개 세상의 통치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모세는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했을 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이 세상의 권력자들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하나님을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둘 다 자신의 이웃을 위해 죽었으며, 그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을 헌신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사랑과 삶과 그리고 바로 자기 자신을 주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승리하며 탈출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애굽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하셨습니다.
이것은 상징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자신의 복음서 첫부분에서 부터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보호아래 애굽으로 피신 할 수 밖에 없었던 연약한 아기 예수님이 결국 모든 인류를 노예생활로부터 자유로 구원해 내시는 예수님이 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예수님의 귀환은 아직 어린 아이였지만 앞으로 행하게 될 위대한 행적(사역)을 미리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
그리고 정말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무엇에 인생의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죽음의 노예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빠지게 되는 여러 우상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그 노예생활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구할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위한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의 진정한 삶을 위해 쓰도록 자신의 길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마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제자들 입니다.
예수님의 선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각자 개인 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 선물이 바로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포장도 풀려 있고, 다만 우리가 받아들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에 성경과 그밖의 기독교 관련 역사를 배우는 그룹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뻤습니다.
어쩌면 어떤 분들에게는 그러한 모임들이 겨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나 초대 교회의 역사 또는 유럽 교회 역사에 대한 부분적인
정보를 얻게되는 시간으로만 여겨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귀한 시간을 내기에 불필요하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도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첫인상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분명하게 보여주듯 전체 66권의 성경말씀은
서로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정보차원이 아닌 우리가 알아야 하는 내용들이 모자이크처럼 연결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잘 아는 지식은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며 우리의 믿음과 인생의 폭을 더욱 깊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치없게 느껴지는 시간도 결국 의미있는 쇼핑이 가져다 주는 이익과 같이 뭔가를 얻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행적도 예수님이 태어나자 마자 행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대중 앞에서 그 사명을 실천하시기 까지 3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아마 자신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다고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획하신 시간은 다가왔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오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설교후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하늘이 열리고 그 하늘로부터 구세주 탄생에 대한 기쁜 소식이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선물에 대해, 죄 사하심과 구원의 사랑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 사랑의 비밀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기 예수님 안에 우리의 구원자시며 모든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도록, 우리의 인생으로 그분을 섬기며 따라갈 수 있도록,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살아있는 믿음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어둠까지 비춰주는 구원의 빛과 새로운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와 화해, 그리고 기쁨을 가져 오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처럼 기뻐할 수 없는 병들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어린이들과 청년들, 노인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세상의 버려지고, 슬프고, 경직되고, 절망적인 곳에 당신의 빛을 비춰주시옵소서. 용기를 잃은 사람들에겐 격려를 주시고,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셔서 새로운 희망으로 채워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진리와 사랑, 은혜의 빛이 이 세상 모든 곳에 비춰지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모두가 진실된 기쁨 속에
„ 주님께는 영광, 땅에는 평화, 사람들에게는 선함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기쁜 날들을 주님께서 친히
축복해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