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04년 07월 04일)
- 행18:1-17
- 설교자: 이종실
040704
본문: 사도행전 18:1-17
제목: 이 도시에 내 백성이 많다
<본문>
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6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고
16 저희를 재판 자리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재판 자리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치 아니하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로 어제와 오늘 1박 2일 동안 어린이 여름성경학교가 열렸습니다.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면 체코 보모와 아니면 유치원에서 말과 습관이 낯 설은 체코 친구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우리 어린 자녀들이 비록 짧은 1박 2일이지만 서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바라보면 마음 같아선 프라하 시에서 유치원 건물을 불하 받아 한나절 반이 되었던, 종일 반이 되었던 저들의
핏속에 흐르는 한국정서가 타 문화와 큰 충돌 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당장이라도 우리교회가 발벗고 나서고 싶지만 마음의
의욕만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체코의 한인사회의 2세들 교육에 대한 우리 교회의 책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시간을 빌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은 것은 어린 자녀들을 위해 바쁜시간을 내고 봉사한 다섯분의 선생님들과 뒤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한 남유정, 장혜원 두 교우님들과 이수정 교우님, 김영만 선교사님, 방인갑 선교사님 그리고 그 외의 여러분들의
수고입니다.
이 시간 모든 분들의 수고를 큰 박수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시다.
이번에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교회활동에 대한 우리 집사님들의 관심과 참여입니다.
교육부장님이 앞장서서 여름성경학교의 원만한 진행과 수고한 선생님들을 격려하기 위해 집사님들께 기도와 도네이션을 요청하였는데 많은 분들이 기쁜 마음으로 참여해주셨습니다.
칭찬과 격려 가운데 자라나는 자녀들이 구김살 없이 성장하듯이 칭찬과 격려가 있는 교회는 밝고 아름답게 성장해갑니다.
이 일에 우리 집사님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대교회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가진 것을 봉헌한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사용하고 예배드리고 그리고 각
가정에서 서로 음식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성도의 교제가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추구하였고 앞으로도 추구해가야 할 우리들의
좌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우리교회 집사님들께서 보여주신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의 모범을 이 설교의 시간을 빌어 여러분들의 목회자로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 집사님들의 그러한 참여가 바로 부족한 사람의 목회를 돕는 일이며 위로와 격려를 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특별히 주님의 이름으로 격려하며 칭찬을 하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박민우 교우입니다.
박민우 교우는 저도 이번에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외국어대학 체코학과를 다니다가 언어연수로 와서 프라하 한인교회를 출석하며 많은 봉사를 하시는 분입니다.
목사들과 어른들이 갈라놓은 프라하의 예배 터가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힘들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고한 것은 그 마음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어린아이들을 사랑하는 진실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박민우 교우는 여름성경학교의 어린이들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봉사의 의미를 저와 여러분들이 잊지 않고 바른 교회, 참 신자가 되는 길을 고민하고 노력하는 일을 더욱더 정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원래 해외로 이주한 유대인들을 뜻하였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또는 새로운 땅을 탐험하고 정복하기위해서 유대인들은 해외로 이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을 찾아 고향을 떠났습니다.
유대민족이 하나님만을 신뢰하지 않고 강대국들의 권력에 의존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다른 강대국에 의해 멸망을 시키고 포로로 또는 유민으로 만들어 유대인들이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해외에 이주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과 이유로 해외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다시 철저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스스로 폐쇄적인 집단이 됩니다.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하자 오늘날 그리스 터키 이태리 북아프리카로 흩어진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저희들이 함께 읽고 있는 사도행전의 배경입니다.
사도 바울의 이차전도여행은 주로 그리스 선교였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서 전도를 할 때 언제나 그의 복음전파의 시작은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모이는 회당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유대인들과 안식일에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처형한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임을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 사이에 많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대인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은 해외에서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진리조차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바울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고 심지어 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동안 전혀 근거없이 범죄자로 몰려 심문을 받아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동안에 그를 죽이려는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밤에 몰래 데살로니가를 도망쳐 베뢰아로 왔는데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끈질기게 거기까지 몰려와 다시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할 수 없어 마지막으로 의지하던 실라와 디모데를 베뢰아에 남겨두고 홀로 아테네로 왔습니다.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들의 비웃음과 경멸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지금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린도에 왔지만 이미 그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있고 의욕을 상실할 만큼 약해져 있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될지 모를 만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일년 육개월 고린도에 머무르는 동안 자신의 심정을 드러낸 말이 고린도전서에 나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두려워 떨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차전도여행 내내 겪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폭행과 박해와 경멸을 고린도에서 또 다시 겪자 사도 바울은 오랜 여행길에 육체적으로 지쳤고 그리고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었으리라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는 작은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현재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는 그 당시 만명이 간신히 되는 작은 도시에 불과하였지만 반면에 고린도는 아가야 주의 수도로 도시 발전이 절정에 달할 무렵에 인구가 75만명에 달했습니다.
지금까지 작은 도시에서 겪었던 고초를 생각만해도 끔찍한데 이제 대도시에서 또 다시 고초를 당하니 덜컥 겁이 나고 그만 사도 바울은 사지에 힘이 빠지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도시의 큰 규모에 위축이된 바울은 도시의 타락상을 보면서 “내가 정말 이 곳에서 전도를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금년 4월 그리스를 갔을때 고린도를 방문하였습니다.
해안항구에서 넓은 평야를 가로질러 시장까지 연결한 도로와 도로 주변의 상점들 신전들 공공건물 목욕탕과 배수로와 삼천명이 들어가는 극장이 지금도 그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어 당시의 고린도의 부귀영화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어떤 성서고고학자는 “로마가 통치하던 주후 50년의 고린도는 로마제국의 허영심의 박람회장”이라고 할 만큼 번성하였습니다.
그 도시의 뒷편에 해발 575미터의 산위에 성벽이 축조되어있고 그 안에 미의 여신 아프로디띠(비너스)의 신전이 있고 그곳에
종사하던 제관 선남 선녀들이 무려 천명이 넘었고 그들은 신을 받든다는 미명아래 음행을 하며 살았고 심지어 그들은 도시아래로
내려와 매춘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데네는 우상의 도시였다면 고린도는 매춘의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도시에 대한 사도 바울의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모습을 로마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어서,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 (고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숭배하고 섬겼습니다. …… 여자들은 남자와의 바른 관계를 바르지 못한 관계로 바꾸고, 또한 남자들도 이와
같이, 여자와의 바른 관계를 버리고 서로 욕정에 불탔으며,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하였습니다. … (고린도) 사람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시기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 차 있으며, 수군거리는 자요,
중상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불손한 자요, 오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꾸미는 모략꾼이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신의가 없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입니다.” (롬 1:22-31)
고린도의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적대감과 그들의 피폐한 인간상을 보면서 사도 바울의 두려움은 더욱 커졌던 것 같습니다.
대도시 고린도에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세력이 이전의 작은도시에서 전도할 때 보다 훨씬 강함을 그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두려움에 쌓여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이 환상가운데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을 터이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서 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9,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이 위로와 격려의 말씀과 더 불어 <이 도시에 나의 백성이 많다>라고 예수님은 바울에게 비전을 부어주십니다.
<이 도시에 나의 백성이 많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환상중에 나타나 바울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타락한 대도시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사람들은 이방종교의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며 미신에 빠진 야만인들이며 성적으로 문란한 자들이며 인간성이 피폐해진 사람들이며 물질의 번영에 허영심이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고린도의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은 시기심에 불타고 분노하여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바울에 대해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도시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는 것입니까?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백성의 숫자가 많기는커녕 소돔과 고모라처럼 곧 심판이 임박한 타락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우리 주님은 죄 아래 놓여있는 도시에서 많은 하나님의 백성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예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두려워 떨고있는 바울에게 우리 주님의 눈으로 자신의 디아스포라와 타락한 도시를 바라보도록 초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고린도와 고린도의 유대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좌절하고 절망하여 비전을 상실한 우리 신자들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오늘날에는 넓은 의미에서 해외에서 이주해서 살아가는 소수민족공동체를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들을 <한인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해외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제 자신을 바라보면 무척 서글퍼질때가 많습니다.
제가 살붙이고 살아가는 체코정부는 자국민이 우선이고 우리와 같은 소수민족공동체를 천덕꾸러기처럼 여깁니다.
그런가 하면 고국 한국 정부로 부터는 소외감을 느낍니다.
투표권도 없고 특별한 보호대책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알아서 해야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해외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가급적이면 해외동포들을 기피하려고 합니다.
해외동포들 사이의 관계도 별로 나을것이 없습니다.
초창기에 와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의 가치관은 언제나 나중에 와서 정착하는 사람들에게 존중 받지 못하고 심지어 무참히 무시를 당합니다.
그런가 하면 먼저와서 정착한 사람들은 나중에 와서 정착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한 공동체로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 내가 피해를 입지는 않을지 경계하고 냉대를 합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 처럼 신앙적인 이유가 아니라 성공과 출세를 위해 대부분 디아스포라로 살아가기에 인간의 공동체가 아니라 이익집단이 되었고 그래서 이해관계에 따라 사분오열 분열과 갈등과 반목이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인사회를 떠나지 못하면서도 한인 사회를 저주하고 비난하고 침밷는 자기모순을 드러냅니다.
프라하는 카지노와 매춘업이 갈수록 번성해지는 관광도시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이제는 매춘업을 공식 업종가운데 하나로 법제화 하였습니다.
한국 관광객들이 카지노와 매춘장소를 자주 찾는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체코의 한인사회는 도덕과 윤리와 체면과 분수가 점점 무너지고 있습니다.
해외에 한인교회들이 있지만 교회가 자신의 한인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한인사회의 모순이 그래도 교회 구조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 안에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조차 사람에 실망하여 도무지 조그마한 희망조차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 내가 교회 공동체에 몸을 함께 담구어야 할지 고민이됩니다.
도덕과 윤리와 체면과 자기 분수를 아랑곳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와 자매를 보면 그냥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실제로 그들 때문에 교회에 오고싶은 사람들도 교회에 등을 돌립니다.
내가 왜 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해야 될지 이유를 모릅니다.
내 마음 속에 그들에 대한 비판은 날마다 더욱 심해집니다.
차라리 만나지 않고 대면하지 않고 혼자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고싶습니다.
해외에서 신앙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좌절과 절망만을 경험하고 교회의 사명과 그 비전은 점점 사라집니다.
바로 이러한 삶을 겪으며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신자들은 언제나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곳에서 태어납니다.
문둥병자, 중풍병자, 눈먼자, 귀먹은자, 벙어리된자, 앉은뱅이, 죽을 질병에 걸린자, 수족을 쓰지 못하는 자, 가난한자,
흉악한 범죄자, 몸을 파는 매춘녀,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세리들 … 도무지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들 그들 가운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주님은 도무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백성을 보고계십니다.
우리 체코의 한인 디아스포라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믿습니다.
복음을 환영하지않는 무신론의 분위기가 팽배한 체코사회에 우리 주님은 콘스탄쯔에서 1415년 7월 6일 화형당한 얀 후스를 복음의 불씨로 일으켜 600년이 넘는 박해에도 그 불씨를 꺼트리지않고 지금까지 지켜오셨습니다.
그래서 체코교회는 7월 첫째주일을 후스를 기념하는 주일로 지킵니다.
그리고 불꽃도 시들어가고 열기도 식어가는 약하디 약한 그 불씨 곁으로 지금 우리 한인 디아스포라를 데려다 놓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예배장소를 세를 주고 세를 받는 서유럽의 큰 교회들의 생각을 뛰어넘어 체코기독교인들과 한국 디아스포라 기독교인들을 지금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교회로 만나게 하셨습니다.
미약한 체코교회를 다시 세우기위해 희망 없어 보이는 하인 디아스포라를 통해 이렇게 그분은 지금 자신의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을 터이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서 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여러분,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다.
연약한 인간의 모습에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다.
그것은 악한 사탄의 계략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이 땅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을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에 지금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말하고 실천하도록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이 도시 안에 많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름 떼 처럼 모여들 것입니다.
우리들은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잠자코 있지말라/ 끊임없이 주의 복음을 전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는 이땅에서 상함이 없으리라/ 이 도시에 나의 백성이 많다/ 이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