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04년 09월 19일)
- 요일 4:7-12
- 설교자: 빠벨 뽀꼬르니
19.9.2004
Text: 1 J 4,7-12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안에 온전히 이루느리라
하나님은 사랑이다 – 성경에 이해하기 쉽지 않는 많은 비유들이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와 비유는 우리들이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인들의 삶의 자리와 경험에 얻은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많은 성경귀절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다 라는 이 말씀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체코에서 (특별히 체코개혁교인들에게) 성경 말씀들을 그림대신 벽에 붙여 놓것이 하나의 습관이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매일같이 눕고 일어나도록 침대 위에 말씀을 붙여놓거나 아니면 들어오고 나가면서 중요한 전달사항을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현관문에 붙여 놓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은 벽에 걸어두거나 붙여두는 성경 귀절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한마디 말씀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바다처럼 명쾌하게 가장 근본적이고 마지막까지 남을 우주의 진리이며, 가장 본질적인 의미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이 필요로 하는 오직 한가지와 그 의미는 사랑하는 것이입니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직장과 일상생활의 새로운 회기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우리들은 학업과 새로운 과제들에 전념할 것이며, 휴가기간이 끝나고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인생에 가장 근본적인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성경의 전통에 따르면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감정이 아니라 특별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작은 일로 매일의 삶의 노력으로 가능하며, 사랑하는 것은 우리들이 하는 모든 일에 의미와 나아갈 길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신학을 공부할 필요도, 대학입시자격시험을 치를 필요도 주일학교를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람들도 이 말씀을 알고 그리고 실천합니다. (어쩌면 실천을 하는데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 보다 더 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 이 말씀으로 모든 종교와 교회들의 경계선에 도달하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요한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 사회적 지위, 출신, 지식, 영적인 능력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사랑을 경험하였습니다.
사랑은 전 세계에 모든 문화와 종교들에 있습니다.
다시말씀드려 하나님은 모든 이들 가까이 계시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은 간략하게 줄인 말입니다.
모든 줄인 말처럼 이 말씀은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시킬 수 있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EU처럼 – 어디서나 누구나 바로 EU가 유럽연합인 줄 압니다. 그러나 일부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들께 그게 무슨뜻이며 EU의 근본정신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말할 것입니다.
줄인 말의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 줄인 말은 마치 암호와 같습니다.
줄인말은 남용될 수도 있고 바르게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독교 역사에서 그것이 몇 번이나 바르게 해석되고 얼마나 남용되었는가 생각을 해봅니다.
몇몇 사람들이 교회가 어떻게 자신을 속이고 있는지 알았을 때, 그래서 그에대해 그들이 말하려고 할 때, „비판하지
마시오, 여러분들의 지도자들을 공격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침묵을 강요당하였습니다.
수없이 이 말씀은 마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교회의 아름다운 외모로서 이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이 뜻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 안에서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은 다른 이야기를 즐기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이 즐기는 이야기의 줄인 말은 오늘날 베슬란입니다.
베슬란은 러시아 도시로 테러리스트들이 인질로 어린이들과 심지어 갓난아이들까지 붙잡고 있던 곳이며, 수십명의 어린이들이 공포에 떨고 죽음을 당한 곳이 베슬란입니다.
새 학년이 시작되던 베슬란, 벨슬란은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세상을 줄인 말입니다.
난폭하고 무자비한 세상, 사랑이 없는 세상. 그곳에 사랑이 없으니 하나님도 없습니까?
그러나 진심으로 우리들이 그 질문을 할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요한이 어떻게 기록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9, 10절 일부)
여기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악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악과 만나고 있습니다.
사랑은 피를 흘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를 잘 압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악과 싸우지만 악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베풀기 위해 어떤 살기 좋은 섬과 악이 없는 세상 을 창조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아들을 죄인들을 위해
보내고 그들과 한 식탁에 앉아 먹고 마셨으며 그들을 용서하고 소망을 주셨으며 그들을 대신해서 죽으셨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은 최후까지 남을 진리의 말씀으로 (모든이들에게 다가가는) 쉽게 걸어가고 쉽게 뛰어갈 수 있는 그런 넓은 길이 아닙니다.
복음이 하나님은 사랑이다 라고 말할 때, 복음은 우리들이 선한 뜻을 언제 어디서나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리고 언제나
사랑의 음성을 우리들이 듣게 되거나 아니면 우리들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우리들에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선한 뜻도 사랑의 음성도 사랑하는 사람들도 없는 곳을 단지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언가 결핍된 곳에 머무르십니다.
사랑에 정복당한 우리들은 그곳에 파송을 받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 여러분들에게 줄 것이 없는 사람들, 우리들의 사랑을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자들로서 우리들이 받은 그 사랑을 전합시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현관문 앞에 적어두기도 하고
아니면 교회당 벽에 적어 놓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라는 이 말씀은 하나님 아들 이야기에 대한 응답이며 그의 길에 동참하라는 초청임을 우리들은 압니다.
그 이상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교회 공동체로서 우리들이 실천하는 것들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의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요 새로운 힘을 공급 받는 휴게소 입니다.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뺀다면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줄인 말이 아니라 우리의 목표입니다.
부활의 약속이 있는 십자가의 길이 하나님의 사랑에 다다르게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