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예배-Ondřej Kolář

<마태복음 24 : 3-14>

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자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Sestry a bratři, když se řekne apokalypsa, většina našich současníků si pod tímto slovem představí něco docela podobného tomu, o čem mluví Ježíš v dnešním oddíle. Tedy nejrůznější katastrofy spojené s koncem světa. Existuje dokonce celý literární i filmový žánr, který s těmito tématy pracuje. Ve všech dobách se také najdou lidé, kteří jsou přesvědčeni o tom, že v apokalypse právě žijí. Není těžké k takovému přesvědčení dospět. Vždycky se dá najít dost důvodů se domnívat, že svět dospěl na pokraj propasti a čeká ho už jen neodvratný zánik. Ježíš navíc mluví poměrně obecně, a tak si do jeho slov snadno můžeme dosadit konkrétní události a postavy. Také v dnešní době si šíří apokalyptická nálada, cítíme se ohroženi a budoucnost vidíme temně.

형제 자매 여러분, 어떤 묵시적인 것이 말해질 때, 우리와 동시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묵시와 관련하여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과 매우 유사한 것을 상상합니다. 즉, 세상의 종말과 관련된 여러 재난들을 상상합니다. 심지어 재난을 다루고 있는 문학과 영화 장르도 존재합니다. 각 시대마다 종말의 때를 살아간다고 확신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확신에 이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이 파멸의 문턱에 이르렀고, 피할수 없는 멸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은 여러 정황들을 늘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예수님께서는 아주 일반적으로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건들과 인물들을 예수님의 말씀에 쉽게 대입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도 종말론적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고, 우리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며, 미래는 어둡게 보입니다.

 

Ježíšova slova sice znějí apokalypticky, ale ve skutečnosti žádnou apokalypsu nepopisují. Jsou spíš polemikou s různými tehdy oblíbenými apokalyptickými představami. Ježíš ohlašuje hrůzy, které mají nastat, ale hned vzápětí k tomu dodá: toto ještě nebude konec. Na otázku svých učedníků, jaká znamení budou předzvěstí konce světa, zpočátku vůbec neodpovídá. Ano, přijdou války, hladomor, zemětřesení – ale všechny tyto události ještě nebudou signálem přicházejícího konce. Ježíš naopak říká: to bude spíš počátek. To zní na první poslech dost pesimisticky. Pokud by totiž katastrofy měly přijít teprve až těsně před zánikem světa, mohli bychom se uprostřed nich aspoň těšit na to, že Pán je blízko a co nevidět přijde svůj svět vysvobodit. Takto to spíš vypadá, že zloba a nenávist jsou prostě trvalou a nevyhnutelnou součástí dějin. Nejsou znamením konce, ale spíš znamením světa, v němž žijeme a ještě nějakou dobu budeme žít.

예수님의 말씀은 다분히 묵시적인 말씀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결코 묵시를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은 그 당시 여러 묵시적 사상들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예수님께서 닥칠 재난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지만 곧 이어 이것이 끝이 아님을 덧붙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의 전조 현상으로 어떤 징조들이 있을 것인가“ 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처처에 전쟁들과 기근들과 지진들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지만, 그러나 이 모든 재앙들이 아직 세상 끝의 징조는 아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이러한 재앙들이 세상 끝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언뜻 듣기에 상당히 비관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만약 세상의 종말 직전에 먼저 재앙들이 발생해야 한다면 그 재앙들 한 가운데서 우리는 최소한 주님께서 가까우시며 주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곧 오실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 악과 증오가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악과 증오는 역사의 영구적이고 불가피한 부분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점에서 악과 증오는 세상 끝의 징조가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고 좀 더 살아가야할 이 세상의 징조인 것처럼 보입니다.

 

Ježíš varuje před pokusem vyčíst z dějinných událostí Boží záměry s tímto světem. Je zajímavé, že takové výklady se objevují nejčastěji právě v souvislosti s válkami, diktátorskými režimy či pandemiemi a jinými děsivými přírodními jevy. Tím, že zdánlivě podáme vysvětlení, co těmito hrůzami Bůh zamýšlí, se pro nás stanou snesitelnějšími a získají jakýsi vyšší smysl. Ze stejného důvodu ostatně vznikají také různé konspirační teorie, které v dnešní době přímo zaplavily veřejný prostor. Je nesmírně těžké připustit, že temným dějinným událostem jednoduše nerozumíme a že neexistuje nikdo v zákulisí – ani Bůh, ale ani žádné lidské spiknutí – , kdo by tahal za nitky a tyto děje řídil. Ježíš trvá na tom, že zlo si způsobujeme sami, a proto nemůžeme svalovat odpovědnost na Boha. Bůh není původcem toho, že se lidé nenávidí a zabíjejí. Stejně tak ale není ani původcem covidu nebo třeba klimatické krize.

예수님은 역사적인 사건들로부터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들을 해석해 낼려고 하지 말것을 경고하십니다. 흥미롭게도 그러한 해석들은 가장 빈번하게 전쟁들과 독재정권들과 전염병들과 가공할만한 자연재해들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재앙들로 의도하시는 것을 상상하면서 그러한 재앙들이 우리가 받아들일만한 것이 되게 하며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같은 이유로 오늘날 다양한 음모론들이 발생하여 공공장소들을 뒤덮고 있습니다. 어두운 역사적 사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과 또 그러한 사건들의 배후에 아무도, 하나님도, 어떤 인간적인 음모도, 재앙들과 얽혀 그러한 재앙들을 조종하는 누군가가 배후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기 어려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스스로가 악을 발생케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서로 미워하고 죽이도록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코비드나 기후위기를 일으키신 분도 아니십니다.

 

Dále Ježíš varuje před falešnými proroky a mesiáši, zejména těmi, kdo budou vystupovat v jeho jménu. Budou schopni využít všeobecné ohrožení a znejistění pro svůj prospěch. Takoví obchodníci s lidskou slabostí a strachem se řídí podle pravidla: čím hůř, tím lépe. Čím více vystrašených duší, tím lépe se dají zmanipulovat a ovládnout. Také dnes jsme svědky toho, jak někteří ve jménu údajně křesťanských hodnot šíří nenávist a škodlivé dezinformace, například tvrdí, že očkování je nástroj ďáblův. Proto Ježíš říká: nepodlehněte lžím, které se tváří jako záchrana a řešení všech možných problémů, ale ve skutečnosti zabíjejí. A současně vybízí: nelekejte se. Ani tito falešní proroci nejsou znamením konce světa, spíš jsou znamením lidské vychytralosti – a žel také skutečnosti, že náboženství lze snadno zneužít k sobeckým záměrům.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 거짓 그리스도, 특히 예수님의 이름을 사칭하는 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그들은 모든 위협과 불확실성을 그들에게 유리하게 이용코자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삯군들은 상황이 심각할수록 그러한 상황이 그들에게 더 유리한 것으로 생각하고 사람들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이용합니다. 겁에 질린 영혼들일수록 더 쉽게 조종되고 더 쉽게 지배당합니다. 우리는 또한 오늘날 예를들어, 백신접종이 마귀의 도구라고 주장하면서 마치 이러한 주장들이 기독교적 가치들이라도 되는냥 호도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증오와 잘못된 정보로 퍼뜨리고 있는지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러한 것에 즉,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것처럼, 그러한 문제들로부터 구해 줄 것처럼 하지만 실상은 죽이는 자들의 거짓말에 굴복하지 말것을 경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 끝의 징표가 아니고 오히려 인간의 교활함의 징표임을 경고하시며 그러므로 이런 거짓 선지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도록 격려하십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종교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이 모든 위협과 불확실성을 쉽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Přicházejí těžké dny a zejména křesťané budou mít na světě soužení, oznamuje Ježíš. Jak se v takových chvílích zachovat? Kdo vytrvá až do konce, bude spasen, říká Ježíš. Obvykle se toto slovo vykládá jako výzva, abychom v bouřlivých dobách prostě vydrželi a neztratili víru. To je jistě důležité. Zároveň ale Ježíšovu výzvu můžeme číst v souvislosti s tím, co říká těsně předtím: protože se rozmůže nepravost, vychladne láska mnohých. Tedy: uprostřed zuřícího zla máme právě my, křesťané, nevychladnout a zůstávat v lásce. Utrpení nás nemá rozdělit, ale naopak spojit. Právě tehdy, když se každý bude starat o svůj prospěch nebo holé přežití, právě tehdy vnášejte do světa soucit, přátelství, odpuštění. Buďte ostrovem světla a tepla v temnotě a chladu.

예수님께서는 어려운 날들이 닥칠 때, 특히 크리스쳔들이 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일반적으로 이 말씀은 재앙의 때에 견디고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한 도전으로 해석되는 말씀입니다. 이는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바로 위에 있는 말씀 즉,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라는 말씀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들끓는 악 한가운데서도 우리 크리스천들은 사랑이 식지않고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고난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연합하도록 해야 합니다. 모두가 다 자신의 이익을 구할 때, 모두가 다 오직 자신의 생존에 매몰되어 있을 때, 우리는 그러한 세상으로 불쌍히 여김과 우정과 용서를 가지고 와야 합니다. 우리는 어둠과 추위의 바다 속에서 빛과 온기의 섬이 되어야 합니다.

 

Ta druhá věc, která se po nás požaduje, je hlásat evangelium všem národům. Uprostřed katastrofických zpráv, které se na nás valí ze všech stran, má dál znít dobrá zpráva o Božím království. Navzdory všemu platí, že Bůh panuje a jeho vláda se jednou prosadí. Světodějným hrůzám se nemáme poddávat a propadat pocitu, že svět vypadl z Božích rukou. Bůh ještě neřekl poslední slovo. A tak uprostřed všeobecné beznaděje má být slyšet naše svědectví o naději, která nevyrůstá z našich sil a možností, ale přichází mezi nás od Boha. Proti falešným obrazům zlomyslného boha, který sesílá na lidi nemoci a války, máme hlásat Boha, který dává a obnovuje život. Proti falešným mesiášům, kteří slibují nesplnitelné a vnášejí mezi lidi rozdělení, se máme hlásit k Ježíši Kristu láskyplnému a odpouštějícímu.

우리에게 요구되는 두번째의 것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방에서 우리를 둘러싸는 재앙의 소식들 한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모든 재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스리고 계시며, 그의 통치가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악에 굴복해서도, 세상이 하나님의 손아귀를 벗어났다는 생각에 빠져서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마지막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의 한 가운데서도 우리의 힘과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소망의 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질병들과 전쟁들을 내려 보내는 악한 신의 거짓된 모습들에 대항하여 우리는 생명을 주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루지 못 할 것을 약속하고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거짓 메시야들에 대항해서 사랑이 풍성하시고 용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Sestry a bratři, na začátku našeho oddílu se učedníci ptají Ježíše: jaké bude znamení tvého příchodu a skonání věku? Už víme, co tímto znamením není, tedy čím se nemáme nechat zmást a vyděsit. Podle čeho se ale máme orientovat? Znamením Kristovy přítomnosti je nakonec samotné evangelium, které neseme. To ale znamená, že tím znamením jsme také my, nakolik z tohoto evangelia žijeme. Jsme znamením Kristovy blízkosti, pokud se spoléháme na Boží vládu nad světem navzdory všemu temnému a absurdnímu, co se v něm odehrává. Jsme znamením Kristova příchodu, pokud se nenecháme strhnout duchem doby a nepoddáme se zoufalství a rezignaci. My sami dáváme druhým pocítit Boží blízkost, pokud se neuzavřeme do sobectví a naše láska nevychladne. Jsme Božím nástrojem v tomto světě, pokud se přidáme k silám života a svobody proti mocnostem zkázy a otroctví. Záleží tedy také na nás. A tak prosíme: přijď, Pane Ježíši – také skrze nás. Ať dokážeme být svědky o tvém království. Amen.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본문 서두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을것인지 여쭈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세상 끝의 징조가 아닌지 다시 말씀드려서, 우리는 이제 세상 끝에 속거나 두려워하면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임재의 표징은 결국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복음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복음에 얼마만큼 순종하여 사느냐에 따라 우리가 세상 끝의 징조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어두움과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지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까우심을 나타내는 징조가 됩니다. 우리가 시대의 영에 사로잡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징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기심에 우리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우리의 사랑이 식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체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가까우심을 나타내는 징조가 됩니다. 만약 우리가 폭력과 노예의 권세에 맞서 생명과 자유의 권세를 붙든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시도록, 주 예수께서 우리를 통해 이 땅에 다시 오시도록 기도합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