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 예배 (2023년 6월 4일)
- 고린도후서 13장 11-13절
- 설교자: Ondřej Kolář 목사
- 2023년 6월 연합예배 설교문 - 고후13,11-13 - 온드제이 꼴라즈.docx
Text: 2 Kor 13,11-13 – Kolář – Kim
본문: 고후13: 11- 13
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그리하면)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2Korintským13;11–13
Nakonec, bratří: žijte v radosti, napravujte své nedostatky, povzbuzujte se, buďte jednomyslní, pokojní, a Bůh lásky a pokoje bude s vámi. Pozdravte jedni druhé svatým políbením. Pozdravují vás všichni bratří. Milost našeho Pána Ježíše Krista a láska Boží a společenství Ducha svatého se všemi vámi.“
- Sestry a bratři, tato Pavlova slova často znějí na začátku bohoslužeb. Jsou vlastně pozdravem. U pozdravů někdy moc nevnímáme jejich obsah. Jsou zaběhané a automatické. U tohoto pozdravu apoštola Pavla bychom se ale měli zastavit. Stojí totiž na konci dopisu, který patří k jeho nejosobnějším. Je plný rozhořčení i slz, výčitek i omluv. Při jeho četbě nám vyvstává obraz neklidného sboru, kde soupeří různé duchovní proudy i výrazné osobnosti.
형제 자매 여러분,
바울이 언급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배를 시작할 때 자주 듣는 인사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인사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사말에서 그 내용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사말은 그저 인사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 사도바울의 인사말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의 인사말은 그의 가장 개인적인 서신의 끝부분에 쓰여져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인사말에는 분노와 눈물, 질책과 용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인사말을 읽는 중에 우리는 다양한 영적 견해들과 독특한 성격들이 부딪쳐서 시끄러워진 그러한 교회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 A tak když Pavel přeje korintskému sboru milost Pána Ježíše Krista, jistě má také na mysli ty jeho členy, kteří se chlubí svou zbožností a duchovními dary. A připomíná jim: to, čím se chlubíš, je nezasloužená Boží milost. Nemáš právo se nad ostatní povyšovat nad ostatní. Boží milostí jsi to, co jsi. A tak spíš hleď, aby tvé obdarování bylo ostatním kužitku, abys zněj rozdával a sloužil celému sboru.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를 빌 때 그는 경건함과 영적 은사를 자랑하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자랑하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보다 스스로를 높일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여러분 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여러분이 받은 바 은사대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그 은사들을 쓰십시오. 받은 바 은사대로 교회에 나눠주고 교회를 섬기는 데 사용하십시오.
- Stejně tak, když Pavel připomíná lásku Boží, má před očima jistě také mnohé spory, snimiž se vkorintském sboru setkával. Láska je naproti tomu trpělivá, laskavá, nezávidí, nejedná nečestně, nehledá svůj prospěch, nedá se vydráždit, nepočítá křivdy, nemá radost ze špatnosti. Tak to napsal Pavel Korinťanům v jiném svém dopise. Taková láska ovšem sboru bolestně schází.
마찬가지로, 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시킬 때, 그는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여러 논쟁들을 눈 앞에 그리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다른 편지에서, 논쟁과는 반대로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악을 기뻐하지 아니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는 그러한 사랑이 매우 부족합니다.
- A konečně, když Pavel prosí za společenství Ducha svatého, říká tím, že ne vše, co se děje vkorintském sboru, je zDucha svatého. Pavel odhaluje mezi Korintskými mnoho všelijakých zlých duchů. Kdybyste opravdu měli Ducha svatého, jak tvrdíte vy dokonalí, vypadal by váš život i život celého sboru jinak, říká tím Pavel.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이 성령의 교통하심을 간구할 때 그는 고린도교회에서 일어난 모든 것이 성령으로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 있는 온갖 악한 영들을 드러냅니다. 온전한 자들이라고 자처하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주장처럼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정말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이라면 고린도교회 온 회중의 삶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사도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Milost Pána Ježíše Krista – láska Boží – společenství Ducha svatého. Do tohoto pozdravu apoštol Pavel shrnul celou svatou Trojici. Současně do něj vtělil také svoje trápení skorintským sborem. Pavel nehlásal nauku o Boží Trojici, ta vznikla až o několik století později. Boží Trojici vnímal jako zkušenost víry, zkušenost sBožím působením v životě jedince i společenství. Nezajímalo ho předně to, kým Bůh ve své podstatě je, ale co pro nás udělal a stále dělá. Šlo mu především o to, jak se víra v trojjediného Boha odráží v našem každodenním životě, v našich vztazích.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 하나님의 사랑 – 성령님의 교통하심. 사도바울은 이 인사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 전체를 요약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동시에 이 인사말에 그가 고린도교회 교인들과 함께 겪었던 그의 고난을 언급해 놓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치고 전파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삼위일체 교리는 수 세기 후에 정립된 교리입니다. 사도바울은 삼위일체 교리를 믿음의 체험을 통해, 개인적인 또는 공동체의 삶 속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인식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은 누구신지 그 분의 본질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도바울은 우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여러 관계성들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 Řekni mi, vjakého Boha věříš, a já ti povím, jaký jsi. Nebo alespoň, jaký bys měl být, pokud svou víru bereš vážně. Ten křesťanský Bůh je trojjediný. To především znamená: není sám. Není osamocené a soběstačné Já. Je sám vsobě společenstvím, společenstvím lásky. A láska nikdy není sama, nevystačí si sama se sebou, musí k druhému, musí sebe sama darovat. Bůh je láskyplný – i kdybychom my tu nebyli, i kdyby tu nebyl celý svět. Láska neoddělitelně k Bohu patří. Proto může Pavel říci: Bůh lásky. Bůh pokoje. Bůh společenství, kde jeden nestojí nad druhým a všichni se vzájemně přijímají. Jiného Boha neznáme. Jen Boha lásky, který pro naši spásu poslal svého jediného Syna a doprovází nás svým svatým Duchem.
당신은 어떤 하나님을 믿는지 나에게 말해 줄 수 있습니까? 그러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 드리겠습니다. 또는 최소한, 당신이 진지하게 어떤 믿음을 갖고 있으면 당신은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당신의 믿음과 당신의 어떠함 즉, 당신 자체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함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함은 고독한 자아나 자기충족적 자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 자체로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혼자로서 충분하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을 향해야 하며,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여기 없어도, 모든 피조물이 여기 없어도, 그 자체로서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불가분하게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평강(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공동체로 계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오직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시고, 그의 영, 성령님으로 우리와 동행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 Jak tuto Boží Trojici žijeme? Jak žijete Boží lásku, Kristovu milost, přítomnost Ducha svatého? Křesťané sice ústy vyznávali Boží trojjedinost, ale svými skutky často dosvědčovali Boha izolovaného a soběstačného. Boha, který nikoho nepotřebuje a druhé vnímá jako přítěž nebo konkurenci. Boha, který nemá porozumění a lásku pro druhého. Boha, který nenávidí každou odlišnost a pestrost.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어떻게 살아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은혜, 성령님의 임재를 어떻게 살아내고 있습니까? 크리스천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성을 고백했지만, 그러나 종종 행동으로는 고립되고 홀로 충분하신 하나님을 입증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행동으로는, 누구도 필요치 않으시는 하나님, 다른 사람들을 무거운 짐으로 또는 경쟁자로 보시는 하나님, 다른 사람들을 향한 이해와 사랑이 없으신 하나님, 모든 차이와 다양성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을 입증해 왔습니다.
- V jedné písni zpíváme: Jeden Pán, jedna víra, jeden křest pojí nás. Ale měli bychom si ujasnit, o jaké jednotě mluvíme. Existuje jednota vnucená, nadiktovaná, která lidem bere svobodu a důstojnost. Není vní místo pro rozmanitost a jedinečné lidské příběhy. Mnozí křesťané byli vdějinách postaveni před volbu – buď se vzdáte svého vyznání, anebo se musíte vystěhovat ze země, ve které žijete. Ve jménu jednoty církve byli nepatřiční lidé pronásledováni nebo i zabíjeni.
우리는 하나됨의 노래 즉, 한 주님, 한 믿음, 한 세례가 우리를 연합시킴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하나됨이 어떤 하나됨인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자유와 존엄성을 빼앗는 하나됨, 강요하고 명령하는 하나됨이 존재합니다. 그 하나됨에는 다양성과 다른 사람들의 독특한 이야기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들의 신앙고백을 포기하든지 또는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을 떠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교회의 하나됨이라는 명목하에 교회에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거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 Jednota vyrůstající zBoží Trojice není jednotou stejnosti, není jednotou, která odlišného člověka odmítá a vidí v něm hned nepřítele, tak jak tomu je vrůzných diktaturách. Věříme, že v Bohu samotném je prostor pro rozdílnost a sdílení odlišného. A tak i věřící mají žít v této jednotě v různosti. Není to jistě jednoduché. Je k tomu zapotřebí vcítit se do druhého, porozumět mu v jeho jinakosti, nepokládat sebe sama za měřítko všech ostatních. Jedině tak se ale dá žít společně v lásce – tak jak žije Bůh sám v sobě.
하나님의 삼위일체에서 나오는 하나됨은 동일성의 하나님이 아니며, 다른 사람을 거부하는 하나됨도 아니고, 여러 독재정권들이 그렇게 해 왔듯이 다름을 적으로 규정하는 하나됨도 아닙니다. 우리는 삼위 한 분 한 분 속에 다름을 위한 공간이 있으며 차이를 공유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도 또한 그렇게 다양함 속에서 하나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분명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삶을 살려면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다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나를 다른 사람들의 잣대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 당신 안에서 그렇게 사시는 것처럼, 사랑 안에서 함께 사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Jak se takové soužití projevuje, nám Pavel v rychlosti, a přece zřetelně sděluje vposledních větách svého listu. Vprvé řadě: radujte se. Láska není jen přikázání, ale především dar, kterým jeden druhému děláme radost. Kde není láska, tam se rychle vytrácí především radost ze života a soužití a zůstává jen trpkost, nedůvěra, strach.
사도바울은 이러한 하나됨의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의 편지의 마지막 문장에서 간략하지만 명확하게 알려 줍니다. 우선 기뻐하십시오. 사랑은 계명일 뿐만 아니라 우선 서로를 기쁘게 하는 선물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우선 삶에서 기쁨이 속히 사라지고 혹독함과 불신과 두려움만 남게 됩니다.
- Dále slyšíme: napravujte vzájemně své nedostatky. Láska není slepá vůči chybám a selháním druhého. Kdo druhého miluje, umí jej také vpravou chvíli varovat, že jde špatným směrem. A samozřejmě ho také povzbudit a pomoci mu kdobrému. Kdo chce svého bližního ponížit, odsuzuje ho. Kdo miluje, ten ho chce naopak z ostudy vytáhnout.
다음으로, 우리는 부족한 점들을 서로 채워주라는 권면을 듣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실수와 실패에 눈을 감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적절한 때에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경고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또한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격려하고 그가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줄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경시하는 사람은 그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수치로부터 끌어내고 싶어 합니다.
- Následující výzva zní: buďte jedné mysli. Nikoli: buďte stejní. Doslova se tu píše: myslete na to samé. Tedy: Mějte před očima to, co vás spojuje, a ne to, co vás rozděluje. Myslete na to, že vy všichni, ať už se jakkoli lišíte, žijete zBoží lásky, Kristovy milosti a přítomnosti Ducha svatého. Pak bude mezi vámi panovat pokoj.
이어지는 초청은, 마음을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같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을 하나되게 하는 것을 눈 앞에 가까이 두고 여러분을 나누는 것을 멀리 두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아무리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교통하심으로 살고 있음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할 때 평강이 여러분에게 있을 것입니다.
- Poslední Pavlova výzva je pro nás možná nejméně srozumitelná: Pozdravte jedni druhé svatým políbením. Jedná se prostě o výraz přátelství? To jistě také. Avšak tento polibek má být navíc svatý. Čím je vlastně svatý? Společenství církve má hlubší kořeny než jen vzájemnou náklonnost. Jistě je krásné, když se lidé ve sboru vzájemně přátelí a jsou si blízcí. Ale to, co nás spojuje, není jen lidský cit, ale Boží láska. My všichni jsme Boží děti, navzdory vzájemným rozdílům. Bůh sám svým Duchem tvoří společenství. A buduje ho i tehdy, když si zrovna nerozumíme, máme na věci jiné názory, anebo si nejsme úplně sympatičtí. Láska Boží, milost Kristova a společenství Ducha mezi námi vytváří hlubší pouto, svaté pouto. Je svaté právě proto, že není znás a našich sil. A tak, sestry a bratři: Milost našeho Pána Ježíše Krista, láska Boží a společenství Ducha svatého se všemi vámi. Amen
바울의 마지막 초청은,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초청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십시오. 단순한 우정의 표현일까요? 그런 의미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입맞춤은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이란 무엇일까요? 교회의 친교는 상호간의 애정보다 더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사람들이 서로 친구가 되고 가까워지면 이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연합하게 하는 것은 단지 인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서로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당신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공동체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사물에 대해 다른 의견들을 갖고 있거나, 서로 완전히 공감하지 못할지라도, 그 때에도 공동체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교통하심은 우리 사이에 더 깊은 유대, 거룩한 유대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 유대는,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유대이기 때문에, 거룩합니다. 그러므로 형제 자매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아멘!
(번역: 김영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