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2.20)

 








2014년 2월 20일 목요일 오늘의 말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장 12-14절)

   

묵상


 

바울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나는 이미 얻었다 말할 수 없다, 온전히 이루었다 할 수도 없다, 잡았다 말할 수도 없다”

 

무엇을 말입니까?

 

이 앞에서 언급한 내용, 즉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에 아직 온전히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에 따르면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입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 푯대를 향해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가겠다고 말합니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게 됩니다. “나는 어디를 향해 무엇을 잡으려 달려가고 있는가?”

 

썩어질 것들을 잡으려 애쓰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은 허무합니다.

 

반면 이 땅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참여하며 살다가,

 

마지막 때 그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성취를 감격속에 바라볼 수 있는 인생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이러한 삶으로 부르시며, 이 부르심에는 또한 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따르는 것이 곧 그리스도 안에 감추인 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바라보고 달려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깨닫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이 참으로 복된 인생의 비결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복과 상을 위해 부지런히 달려가는 인생 되게 하소서.

 

많은 사람들이 좇는 넓고 편한 길 대신, 예수님 걸어가신 좁고 험한 길 택하며 살 수 있는 믿음과 은혜를 허락해 주소서.

 

몸과 마음이 아프거나 약해져있는 지체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허락해 주소서.

 

 

 

알려드립니다

– 오늘 오전 11-12시에 여러분의 자율기도를 위해 예배당을 개방합니다. 가능하신 분은 오셔서 기도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2.19)

 


2014년 2월 19일 수요일 오늘의 말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립보서 3장 7-11절)

   

묵상


 

바울은 그에게 유익하던 것을 이제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유익하던 것이란, 할례받은 유대인이라는 태생적 자부심, 바리새인이라는 사회적 우월감, 로마시민이라는 신분적 유리함 등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부터 그 모든 것을 더이상 유익한 것이 아니라 해로운 것, 심지어는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정도면 되지, 굳이 그것을 해로워서 버려야 할 것으로까지 여겨야 하는가?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을 제가 이해한 대로 풀어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부터 나의 유일한 관심은 그리스도를 얻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와 만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인인 우리의 구원을 위해 대신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능력의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내게 이보다 더 고귀하고 유익한 지식은 없습니다.

 

나는 이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것입니다. 

 

내 유일한 소망은 내 안에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전에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이제는 과감히 버립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데 그것이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나 역시 진리와 생명을 위해 고난받는 삶을 살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이 내게도 부활의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도 바울처럼 내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내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더 많이 나타나게 하소서.

 

체코교회와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교회,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교회 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2.18)

 


2014년 2월 18일 화요일 오늘의 말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빌립보서 3장 3-4절)

   

묵상


 

본문에 ‘할례파’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들을 “육체를 신뢰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육체를 신뢰할 만한 걸로 치면 자기도 결코 뒤지지 않는 사람이지만,

 

거기에는 구원의 길이 없고, 따라서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지할 것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물로 주어진 성령입니다.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며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사람,

 

즉, 그의 몸과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고 그 흔적을 드러내며 사는 사람,

 

그가 진정한 할례파, 즉 진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전에 자랑하고 의지하던 것을 더이상 신뢰하거나 좇아가지 않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을 자랑하며 살게 하소서.

 

내 힘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성령을 의지하며 봉사의 삶 살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2.17)

 


2014년 2월 17일 월요일 오늘의 말씀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빌립보서 2장 25-30절)

   

묵상


 

본문에 ‘에바브로디도’라는 사람이 언급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사도 바울의 쓸 것을 돕도록 빌립보 교회로부터 보냄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만 병이 들어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에바브로디도는 자기 목숨을 걱정하기보다 바울을 섬기는 일에 지장이 생길까봐 걱정합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기적적으로 회복시키십니다.

 

이후 바울은 그의 손에 편지(빌립보서)를 들리워 빌립보 교우들에게로 보냅니다.

 

그리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당부합니다.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세상에서의 편한 삶을 뒤로하고 조용히 예수님의 길을 따라 사시는 분들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생 말년에 그 조용한 섬김과 희생의 삶이 세간에 알려져 사람들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아마도 더 많은 경우는 그 모든 힘겨운 삶을 기쁨으로 감내하며 소리없이 생을 마감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그처럼 소리없이 주님의 공동체를 섬기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하는 섬김과 희생입니다. 

 

주님은 분명 그런 성도들을 존귀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을 따라 그런 분들을 존귀히 여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분들이 존귀히 여김을 받고, 그런 삶이 더욱 격려되는 우리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으로 존귀한 삶이 무엇인지 알고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 주심에 감사합니다.

 

조용한 섬김과 희생으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존귀한 동역자들을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성도로 살아가게 하소서.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사람들이 존귀히 여김을 받는 우리 교회 되게 하소서.

 

새로운 한 주를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 승리하며 살게 하소서. 

 

이종실 목사님의 모든 여정과 일정 가운데 주께서 늘 함께하여 주소서. 

 

 

일상사역을 위한 전교우 1분 기도 운동 – 월요일 낮 12시에 잠간 멈추고 1분간 함께 기도해요!!

 

샘플: 독일 개신교 찬송가에 실린 월요일 점심의 기도문 / 박동현 목사 옮김

 

내 하나님, 다시 일 하려니 쉽지 않습니다.

일을 잊어버리고 쉬면서 논 것이 제게는 좋았습니다.

지금은 다시 진지해져야 합니다.

제 앞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이걸 어떻게 다 해내야 하지요?

당신께 빕니다. 하나님! 제가 침착하게 해 주십시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이 급하고 무엇이 급하지 않은지,

제가 잘 분별할 수 있게 도와 주십시오.

나날의 번잡함 가운데서도 생각할 시간을 제게 주십시오.

당신과 대화할 시간, 남들과 이야기 나눌 시간을 주십시오.

(주님) 저와 함께 계시지요!

 

이어서 주님의기도를 드려도 좋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1)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9)
예수님은 이 주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바른 지침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기 원하시는 아버지시며,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아버지시고,
시공을 초월하여 어디에나 계시기에 우리를 늘 가까이서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사랑과 능력의 아버지십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기도의 본격적인 간구는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시길 구하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다른 사람들의 기도와 달라야 하고 또 다를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바라보고 기도하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시게 하는 우리의 기도와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설교전문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