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츨라프 클라우스의 말

나눔터 제 21 호 (2002/02/02 발간)

살며 생각하며 – 바츨라프 클라우스의 말

바츨라프 클라우스는 현재 체코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41년 6월 19일 프라하에서 태어나 1963년 프라하 경제대학 국제무역학과를 졸업하였다. 공산당 통치 시절인 1966년에 이태리에서 그리고 1969년에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1970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아카데미 경제연구소에서 일하였다. 1971년부터 1986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국가은행에서 여러 직책을 거쳤다. 그의 학문적인 업적은 외국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고 찰스 대학과 출신 대학인 프라하 경제대학의 정교수로 임명될 정도로 뛰어난 경제학자이다. 1989년 과도정부시절에 재정부 장관이 되면서 정치무대에 등장하여 1992년에 수상이 되었다. 현재 정권은 경쟁당인 사회민주당(CSSD)에게 내어주었지만 그의 당인 시민민주당(ODS)은 다수당으로 현재 그는 의회 의장직을 맡고있다.

요즘 그는 체코의 유명한 스키장이 있는 슈핀들 물리녜의 한 식당 지붕 위 빌보드 광고에 등장하였다. 거기서 클라우스는 Volkl 상표의 스키를 들고있고 그 아래 “뷜클 을 찍으십시오. (Volte Volkl)” 광고문구가 들어있다.

국내정치 지도자가 해외상표의 스키를 선전하는 것을 언론매체가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다. 이에 대해 클라우스의 답변은 기상천외하다. 그의 얼굴은 친구식당을 소개하기위해 친구를 바라 보고있고 자신이 사용하는 스키는 Head인데 뷜클 스키선전과 관련 짓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전문구가 광고사진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지 빌보드의 걸려있는 위치가 광고의 내용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며 클라우스의 답변에 국민들의 비난이 일고있다.

클라우스는 뷜클로부터 광고비용을 단 1꼬룬도 받지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도 믿지않는다. 바츨라프 클라우스의 이 말 같지 않은 뉴스거리 때문에 나눔터 독자들도 슈핀들 물리녜의 클라우스 친구 식당과 뷜클 표, 스키 그리고 Head 표 스키 이름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광고가 언론매체에 의해 논쟁이 일어난 것을 싫어하지 않는 클라우스는 “우리들은 선거운동을 위해 많은 돈을 제공하는데, 빌보드 하나가 이처럼 언론의 관심을 촉발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매우 가치가 있다. 언론매체는 뷜클 회사의 광고비 수주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최소 경비로 최대효과를 위한 이러한 사례를 계속 만들 것이다.” 약간의 콧소리가 더욱 감미로움을 더하는 특유의 미소에 촉촉이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평소에 바츨라프 클라우스의 경제학 서적을 언젠가 한번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싹 달아났다. 말하나 곧게 할 줄 모르는 지식인의 글이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할 때 경직되는 것을 고쳐보려고 애쓰는 필자이기에 텔레비전에서 그를 볼 때 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격앙되지않고 웃는 얼굴로 부드럽게 말하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그러나 부드러운 말씨만으로 안 된다. 부드러운 말씨와 함께 말이 곧아야 한다. 부드러움을 가장한 정직하지 못한 말은 사기요 폭력이다.

말 같지 않는 소리 때문에 짧은 우리 인생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있는가? 가뜩이나 스트레스가 많은 이 해외에서 많지않은 우리 한인들 특별히 종교인들이 먼저 서로 부드럽고 정직하고 교양 있는 말들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이 새해에 가져본다. 말 같지 않은 소리하는 소리꾼들로 체코의 한인사회가 고통 받지 않도록 이 새해에 시인의 노래로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싶다.

“네 혀는 날카로운 면도날, 속임수의 명수로구나,
착한 일보다 악한 일을 더 즐기고
바른 소리보다 거짓말을 더 좋아하니
해치는 소리라면 모두 좋아하는 사기꾼아
하느님께서 너를 박살 내어
영영 없애 버리시리라.
장막에서 너를 끌어 내서
인간 세상에서 뿌리째 뽑아 버리시리라.”
(시편 52편 2-5절, 공동번역)

목사 이 종실( 나눔터 발간인 )
 

체코에서의 자녀교육

자녀 교육을 함께 생각합시다

 

들어가는 말

해외에서 자녀들의 교육문제는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하다. 특히 체코에서는 자녀들을 영어교육이 가능한 학교에 보내거나 아니면 체코학교에 보내는 두가지 경우가 있다. 부모들 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교육적인지에 대한 질문은 한번쯤 토론의 여지가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토론은 이 글에서 피하기로 하고 오늘은 자녀를 체코학교에서 교육을 시킬 때 부딪치는 교육적인 문제를 생각나는 대로 일단 세가지를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교육철학 부재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해외에 나오면 제일먼저 다가오는 문제가 자녀교육이다. 그리고 최근에 한국에서 해외 이민의 주요 이유가 자녀들의 교육이라고 한다. 자녀들에게 영어나 다른 세계적인 언어를 어려서부터 익힐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은 부모들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러한 마음만으로 해외 이주를 결정하기는 쉽지않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중요한 동기는 한국의 교육정책에 대한 불신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 학교교육과 국가의 교육정책을 불신하는 부모들이 해외에서 자녀들에게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대체 교육기관이지만 우리 부모들 역시 해외의 자녀교육에 대한 교육철학은 물론 정보와 준비가 잘되어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외에서 교육한 자녀들의 막연한 성공사례들을 가지고 내 자녀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녀들의 입장에서 학업의 어려움들을 부모들이 지나쳐 버리는 경우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교육이란 단지 언어의 학습만이 아니다. 인성교육과 민족과 국가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일까지 포함된다. 부모가 자녀들의 올바른 가치관을 지도 하기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자문을 해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그대로 드러날것이다. 자녀들이 겪는 문화충격이 무엇이며, 사춘기의 아이의 특징이 무엇이며, 사춘기의 특성들이 타문화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며, 타문화 속에서 아이들의 가치관, 사회성, 국가관 그리고 민족관의 형성 등 어느 하나 부모들이 연구와 고민없이 대답 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둘째, 체코어로 공부하는 아이들의 심리적인 충격

자녀의 입장에서 일단 언어의 문제이다. 언어습득에 있어서 어린아이들은 성인들 보다 외국말을 빨리 배우겠지만, 아이들의 언어습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개인차, 연령의 차, 학습환경 등을 전혀 고려하지않고 어린아이들은 외국말을 빨리 배운다는 신화를 부모들은 경전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영어나 독어 불어와 같은 세계언어가 아닌 체코어를 습득하는데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영어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경우 부모는 아이의 학습을 어느정도 도움을 주며 지도할 수 있다. 이것은 낯선 언어를 배우는 아이에게 심리적으로 안정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아이의 학습효과는 그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체코어로 학업을 하는 아이들의 경우 심리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부모들이 체코어를 함께 공부하지 않을경우 아이들은 체코어로 공부해야되는 이유를 찾기 힘들다. 더구나 또래 아이들이 영어로 공부하는 학교에 다니는 경우 세계적인 언어를 배우는 것을 제쳐두고 소수민족의 언어를 배우는데서 오는 열등의식을 가질 수 있다. 체코어로 공부해야되는 당위성과 분명한 목표가 아이에게 제시되지 않으면 체코어로 공부하는것에 흥미를 잃게될것이다.


셋째, 체코학교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

체코의 한인 이주 역사가 일천하여 체코학교에 대한 정보가 매우 제한 되어있다.
복잡한 체코학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한글자료가 아직 구비되어있지않다. 5년제 초등학교와 9년제 초등학교 그리고 4년제 김나지움(고등학교)과 8년제 김나지움, 사립학교와 국립학교의 차이,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립학교들의 종류, 사립학교의 단점과 장점, 아이의 장점을 조기에 발굴하기 위한 다양한 종류의 특별 활동 학교들, 그 학교를 이용하는 방법, 예술과 체육계통의 초등학교와 김나지움의 종류, 입학방법, 다양한 특성을 가진 국립 초등학교들, 이공계열과 사회과학계열 그리고 계열 구분이 없는 김나지움의 구분의 기준과 그 특성들, 김나지움 입학전형 방법, 아카데미로 불리우는 전문학교들, 특별한 분야들을 전공을 하는 중등학교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학교를 선정하는 방법은 물론 처음 체코에 왔을 때 학교에 입학시키는 방법, 체코학교들의 교육철학과 방법에 대한 이해,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적을 측정하는 방법, 학생의 학교생활 태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체코학교의 규칙들, 초기에 체코어를 지도하는 하는 방법, 학업을 지도하는 방법, 외국학생들에 대한 학교법 등 기초적인 학교정보는 물론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정보마저 모두 개인화되고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나가는 말

체코학교에 대해 전혀 경험이 없는 부모가 자신의 자녀들을 돕기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일은 체코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부모들이 만나서 자녀들의 경험과 어려움들을 가감없이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서로 돕는것이다. 뿐만 아니라 타 문화속에서의 자녀 교육에 대해 함께 지혜를 모으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자녀들이 공부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한국의 유수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일일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부모가 자녀를 생각하는 교육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또한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살며 생각하며] 영화 “군청색의 세계”

[살며 생각하며] 영화 “군청색의 세계”

나눔터 제 18호 (2001/ 10/ 01 발간)

영화 꼴리야 그리고 가공의 인물을 극화한 찌므르만 코메디 시리즈의 배우 즈데녝 스비에락은 체코인들이 좋아하는 대중적인 인물이다. 그의 아들 얀 스비에락은 현재 젊은 영화감독으로 아버지 못지않은 대중성을 갖고 있다.

아들 스비에락이 제작한 “군청색의 세계”는 월별 관람객을 기준으로 하는 체코 극장가의 흥행 기록을 연일 새롭게 갱신한 화제의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지않고 체코인들과의 대화에 동참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의 내용자체가 체코인들 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역사적인 소재거리로 풍부하다.

이 영화의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군청색”은 체코 파일럿을 의미한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에게 체코는 별다른 저항 없이 항복하자 나라와 자신의 비행기를 잃은 파일럿들을 징병하여 히틀러와 대항하는 영국의 한 기지에 몇몇 체코 파일럿들이 모인다. 그들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영국의 전쟁 미망인과의 사랑, 전우의 의리, 목숨을 건 독일군들과의 전투를 잔잔 하면서도 매우 재미있게 그렸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돌아와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는 체코 파일럿을 사랑했던 영국 여인의 모습, 그러나 그 여인과 헤어져 체코로 돌아온 파일럿을 기다리던 것은 일상의 삶이 아니었다. 이미 결혼해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사랑했던 옛 애인과 1948년 공산혁명이라는 대 변혁의 삶이었다.  그는 나라와 정의를 위해 싸운 보람도 없이 집단 수용소에 갇혀 노동과 질병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전쟁은 끝나도 약소국들은 여전히 강대국의 전리품으로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되고있다. 주인공인 한 체코 파일럿이 수용소 병실에 누워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영화의 내용은 전개된다. 

이 영화 속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프라하 8 – 꼬빌리시 이야기가 나온다. 앞 길 전차 다니는 큰 거리 이름이 “스트제리츠나” 이다. “스트제리츠나”는 형용사로 동사는 “스트제리트” 로 “(총을)쏜다” 는 뜻이다. 미루어 짐작해서 이전에 “사격장”이 이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했었는데 영화의 이야기 속에 히틀러 당시에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 “사형장”이 있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약 석 달간 사형을 당해 죽어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 거리를 “스트제리츠나”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류의 재앙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현장 보다 더 떨리던 것은 그 현장을 매일 지나 다니면서도 인류 재앙의 과거 역사 그리고 강대국들의 제국성을 잊고 사는 나 자신에 대해서 이다.   

이 종실 / 나눔터 발간인

[살며 생각하며] 교회의 자폐증

나눔터 제 16호 (2001/07/01 발간)

교회당 옆 숲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확 뚫린 시야에 프라하 시내가 저 아래 보인다. 뾰쪽 뾰쪽 솟은 교회당의 탑들을 보면 서울의 밤하늘을 수 놓고 있을 빨간 네온싸인의 십자가가 불현듯 보고 싶어진다.

세월의 흐름을 정지시켜 희귀한 볼거리로 변해버린 빛 바랜 복음의 흔적들을 보느니 마구잡이 일지언정 새싹처럼 솟아나는 생생한 살가운 복음의 생동감을 어쩌면 서울 하늘아래 빨간 네온싸인 십자가에서 느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리라.

어쩌면 좋을까? 막강한 자본의 힘이 세상을 동-서로 나눈 철의 장막을 걷어냈지만 교회와 사회 사이에 가로막힌 이 장막을 누가 걷어내 줄 것인가? 최근 인구조사에서 체코의 카톨릭 교인수가 40%에서 20%로 줄어들고, 줄줄이 중요한 선거를 앞둔 정당의 당수가 교회를 많은 복지단체 가운데 하나로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전파를 타는 것은 체코사회에서의 기독교 위상을 가늠케 하는 것이다. 게다가 카톨릭 신부의 섹스 스캔들, 개혁교회 목사의 금전 스캔들이 터지자 세상의 언론은 물길을 만난 물고기 처럼 생기가 넘치게 끊임없이 가십거리를 재생산 하고있다. 정말 교회에 대해 애정이 있었던 것 처럼 기독교인과 일반인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 교회와 물질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문제를 교회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연일 교회를 힐난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요즈음 카톨릭 신학부가 아예 세상과 담을 쌓는 유아독존으로 세상 여론이 교회에 대해 더욱 신랄해 지고 있다.

중세시대의 대학은 곧 신학교였고 교회였다. 1348년 설립된 까렐대학도 신학교로 출발하였다. 종교개혁자 얀 후스(Jan Hus 1370/1371-1415)는 신부이자 이 학교에 학장을 지냈고 그의 동상이 전형적인 중세 풍의 대학교정 안에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져 있다. 그의 교회의 부패와의 투쟁은 대학을 교회와 국가(사회) 둘 사이를 연결하는 영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다리의 역할로 자리 매김 하였다.  이러한 대학정신의 발전은 현대에 이르러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까렐대학의 카톨릭 신학부는 타 학부와의 교류를 거부하고 여성 및 평신도의 입학을 제한하며 교과 과정도 19세기로 돌아가고 있다. 교회를 위한 신학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그 방법은 시대착오라고 교회 안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심지어 바티칸에서 조차 우려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까렐대학 당국은 대학 역사 이래로 전무후무한 총장 직권을 사용하여 카톨릭 신학부의 학사 행정을 관리하려는 조짐까지 있다.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빠짐없이 읽고 또 사람들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필자는 이것이 “교회의 자폐증”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까렐대학 카톨릭 신학부의 사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외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 있다. 

지난 6월 5일부터 9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럽 한인교회 신학협의회가 열렸다. 유럽의 이민교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유럽교회 대표들과 한자리에 모인 것 만으로도 한국교회와 유럽교회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건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유럽교회와 한인교회가 하나의 교회로 세워진 사례발표를 위해 필자도 그 협의회에 참석을 하였다. 그 협의회는 결국 유럽의 한인 이민 교회들이 민족, 교파, 신분, 인간관계의 동굴로서의 한인교회를 탈피하고 유럽의 한인들은 물론 유럽인들과 함께 공감 공명을 느끼며 살아보자는 취지였다.

교회가 세상과 대화는 물론 공감 공명을 느끼지 못하면 자기세계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사람에게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자폐증”으로 의심을 한다. 세상과 공감 공명을 느끼지 못하는 종교는 종교학의 관점에서 “섹트” 라고 정의한다. 기독교인과 기독교회를 성경은 빛에 비유를 한다. 빛은 감출 수 없는 그 속성 때문에 용도는 더 멀리 비취게 하는데 사용된다. 그래서 빛의 자리는 더 높은 곳, 더 드러난 장소에 있다. 빛을 막을 수 있는 경계선은 없다. 우리 모두 마태복음 5장 16절의 말씀의 빛으로 우리 자신들을 비추어 보자.

“이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살며 생각하며] 삶을 선교로

나눔터 제 15호 (2001/06/03 발간)


[살며 생각하며] 삶을 선교로 –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의 실험

한국 기독교인들이 선교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은 많이 되었다. 그러나 선교의 방법과 이해에 대해서는 매우 폭이 좁은 것을 마지막 나의 봉사지 였던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통합) 세계 선교부에서 5년간 간사로 일할 때 느꼈던 점 가운데 하나였다. 그 대안을 체코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에서 찾아보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체코-한인 교우들의 클럽 활동이다. 아직 선교의 대안이라고 말하기는 초보 단계이고 시작 단계이지만 “삶을 선교로” 여기는 적극적인 대안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체코 인들의 놀이는 문화를 즐기는 것이다. 수준이 높은 문화는 물론이고 접해 보지않는 미지의 문화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문화를 우리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체코 인들을 접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체코 인들의 문화 이해란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행해지는 일반적인 삶의 양태라고 나름대로 정리하고 싶다. 체코 영화의 장면 장면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것을 화면으로 옮겼을 때 그 장면들이 주는 미학적인 감각이라든지 철학적인 메시지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일반적이고 평범하고 지나치기 쉬운 장면을 예술로 끌어올리는 문화적인 비범한 감각을 가진 민족이 체코 인들이다.

이것이 체코 인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설정했을 때 우리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요소이다. 그 시작과 초석을 꼬빌리시 교회(야곱의 사다리 교회)의 체코-한인 교우들이 다지고 있다. 꼬빌리시 교회의 체코 교우들과 한인 교우들의 교류 프로그램으로 10개의 클럽 활동 반이 있다.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양 교우들이 함께 교류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동의 관심과 주제를 가지고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이다. 활동을 통해서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삶을 더 깊이 보게 된다. 이 만남은 가정과 가정의 만남으로 개인과 개인의 만남으로 문화와 인종과 국가를 넘어 한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로 고백하는 만남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클럽활동은 서로의 전통음식을 가르쳐 주는 요리반,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 주는 언어반, 여행을 함께 하는 여행반, 운동을 함께하는 운동반,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만나는 골프반, 일년에 한 두 차례 예배시간에 올릴 연극을 준비하는 연극반, 서로의 전통문화를 전수하는 예술반, 예배시간을 위해 특송을 준비하는 성가반, 한국 장기 – 체코 장기를 서로 전수하고 시합하는 장기(將棋)반, 바느질로 예쁜 소품들을 만드는 퀼트반 등이 있다.

체코-한인 교우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어 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리고 모든 모임이 다 활발하게 진행 되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무슨 모임이든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자와 관심자가 있을 때 그 모임이 활성화가 된다. 그 역할을 우리 한인 교우들에게 당부를 하고 있다. 그래서 체코 교우들이 재미를 느끼고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만 거부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을 초청하고 교회 안에서 만남이 일어나고 그리고 그들이 교회의 필요성과 교회의 존재 의미를 알게 될 때 그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체코 교회는 점점 생기가 돌게 될 것이다.

체코의 국가와 교회간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할 때 체코 선교는 사람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는 일은 물론 외부 사람들을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체코 교회를 돕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이 양자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체코 선교는 자기 만족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삶을 단순히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 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체코에 온 것 역시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고백하고 있다. 그 뜻은 물론 단순하지 않다. 더욱이 그 뜻을 빌어 체코 선교의 당위성을 주장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배타적이지 않고 타민족 기독교인들과 어울려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세상에 표현하는 것은 누구도 금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마땅히 해야 될 일이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말고도 우리들이 외국에서 외국인들과 어울려 함께 살아야 되는 이유는 우리들이 우리들의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다. 한국의 문화를 보통의 일반 체코 인들의 삶 속에 파고 들어가는 것은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친근하게 하여 우리 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애국 애족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당위성 외에 체코-한국 기독교인들의 만남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가 하나 있다. 진솔한 만남, 사랑의 만남을 통해 체코 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격과 교양을 갖춘 한국 민족으로 평가 받는 우리들이다. 이 열려진 공간에 체코의 모든 한인들의 참여를 진심으로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