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1.6)

2014년
11월 6일 목요일 오늘의 말씀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고린도전서 5장 11-13절)

 

묵상

 

앞에서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4:5) 권면했던 사도 바울이 여기서는 강경한 어조로 준엄한 판단을 내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고린도교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서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권면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 걸까요? 

 

앞에서 판단을 유보할 것을 권면하는 말씀은 고린도 교인들이 사람(바울,아볼로,게바 등)을 따라 서로 분열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됩니다.

 

어떤 영적 지도자가 내 눈에 훌륭해 보이거나 혹은 비천해 보일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과 칭찬은 마지막 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인간적인 기호나 취향을 따라 사람을 판단하거나 자랑하며 서로 대적하여 교회를 분열시키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한편, 교회의 준엄한 판단을 권면하는 이 5장의 상황은 고린도 교인 중 하나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사실을 알고도 교회가 이를
묵인하고 있는 상황과 관련됩니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5:2)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명백히 잘못된 일을 행하고도 뉘우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교회가 그 잘잘못에 대한 분명한 판단을 내리고 출교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가 그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껄끄러워 교회 안의 평화를 명분으로 그 상황을 묵인하거나 방치하고 심지어 그 행동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그건 교만한 태도라는 것입니다.

 

우선 그것을 그대로 두면 죄가 교회 공동체 전체로 퍼져나갈 위험이 있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6)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잘못을 범한 사람 본인에게도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주는 일이 됩니다: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5) 

 

물론 잘못한 사람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만약 그가 진실히 회개하면 교회는 그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을 마태복음 18장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18:15-17)

 

이처럼 잘못을 회개하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해서 행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교회가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은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10)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지금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 즉 교인이 행한 잘못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음행’, ;탐욕’, ‘우상숭배’, ‘기만적 탈취’의 잘못 외에, ‘모욕(다른 사람에 대한 욕설이나 비방을 서슴치 않고
행하는 것)’과 ‘술취함’을 교회 안에서 용납될 수 없는 죄의 목록에 추가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판단과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의 잘못에 대한 판단과 처벌은 힘들고 부담스럽더라도 사실 관계 확인과 하나님 말씀에 입각해 교회가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교회는 세상을 위해 내어주는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이 될 수 있고(8), 그리하여 교회 밖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 잔치에로
바르게 초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겸손히 세워주시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우리가 순전하고 진실한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게 하소서.

 

꼬빌리시교회를 하나님의 진리로 거룩히 빚어 주소서.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1.5)

2014년 11월 5일 수요일 오늘의
말씀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린도전서 4장 5절)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이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광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1.4)

2014년
11월 4일 화요일 오늘의 말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린도전서 3장 6-7절)

 

묵상

 

고린도교회에 시기와 분쟁이 있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나뉘어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하느냐며 책망합니다.

 

바울이든 아볼로든, 그들은 그저 주께서 맡겨주신 일들을 감당한 사역자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복음의 씨앗을 심은 사람입니다.

 

아볼로는 그 심겨진 씨앗이 잘 자라도록 물을 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 사이에는 우열이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을 위한 일꾼으로 부름받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9).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 아래에서 교회가 사람을 따라 서로 나뉘는 것은 육신을 따라 행하는 일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교회를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기 욕심을 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몸을 헐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웁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꼬빌리시교회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시고 이루어가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우리 교회가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함께 바라보고 붙들며 따르는 교회 되게 하소서.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더이상 사람을 따라 나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이루어가게 하소서.

 

모든 하나님의 동역자들 속에 겸손한 자기비움의 마음을 허락해 주소서.

 

모든 하나님의 동역자들 속에 자기 몸을 헐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희생과 헌신의 마음을 허락해 주소서.

 

오늘 예정된 모든 성도들의 모임 중에 주께서 함께하여 주소서.

 

몸이 아픈 지체들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소서.

 

오늘의 찬양

 

<소원>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0.30)

2014년 10월 30일 목요일 오늘의
말씀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에베소서
6장 13절)

 

묵상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눈 앞에 있는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이 세상에 악을 조장하는 영적 세력 및 그들의 하수인들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마귀와 그 하수인들을 단번에 싸그리 멸절시킨다는 뜻이 아닙니다.

 

깨어 그 악에 맞서고 그 영적 싸움이 끝난 후에 주 안에 더 견고히 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승리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해야 합니다.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라”고 합니다.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 합니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 합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라고 합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로 승리케 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오늘 하루도 깨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고 승리하는 삶 살게 하소서.

 

오늘 저녁의 청년모임 가운데 주님의 은혜를 부어주소서.

 

오늘의 찬양

 

<승리>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0.28)

2014년
10월 28일 화요일 오늘의 말씀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에베소서 6장 7-8절)

 

묵상

 

그리스도인 종과 상전에게 주는 실제적 삶의 권면입니다.

 

사도 바울은 종과 상전을 나누는 당시의 신분제적 사회질서 자체를 문제삼기보다,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종’의 마음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5)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6)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7)

 

그리고 상전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9)

 

우리가 이 땅에서 종으로 사느냐 상전으로 사느냐는 사실 신앙적 관점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두신 그 자리에서 믿음으로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인간관계 속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보다 중심을 보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 것을 따라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8) 

 

감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야 할 지 깨우쳐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하나님께서 내게 붙여주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하듯 섬기며 살게 하소서.

 

오늘 내게 맡겨진 일들을 마음 다해 성실히 감당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보이는 것을 따라 살지 않고 믿음으로 선을 행하며 살게 하소서.

 

위협과 공포, 분쟁과 상처가 있는 일터들에 주님의 평화와 치유가 일어나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온맘다해>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