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3 띤 사제관

3. 띤 사제관 – 띤 앞의 성모마리아 성당 옆
Týnská fara – při kostele Panny Marie před Týnem

첼레뜨나 거리에서 출발하여 구시가로 가다 보면 오른편에 슈뜨빠르뜨스까(Štpartská) 거리가 좁게 나있다. 이 거리 오른편에 까렐 4세가 띤 앞의 성모마리아 성당(Panny Marie před Týnem) (다다음편에 우리는 이 곳을 둘러볼 것이다.)을 위한 사제관으로 건립한 5/601호 건물이 있다.

이 곳은 허옇게 바랜 색으로 써있는 ‘띤 앞’ (před Týnem)이라는 이름에서 설명된다. – 이 이름은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띤(Týn), 띤 마당(Týnský dvůr) 혹은 운겔트(Ungelt) 등과 관련이 있다. 11세기에 이미 띤 이라는 이름의 안뜰에는 외국 상인들을 위한 여행자 숙소와 수입품 등에 관세를 매기는 세관이 있었다. 이 지역에는(오늘날의 띤 사제관을 포함하여) 외국 병원과 더불어 작은 성모 마리아 교회가 건립되었다. 이 상인들을 위한 공간은 체코 왕 뿐 아니라 시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그래서 ‘돈이 나오는 가장 중요한 장소’ 였던 띤 마당은 – 독일어로 um Geld가 프라하 시민들에 의하여 발음이 와전된 채로 운겔트라 불리웠으며, 까렐 4세에 의하여 지어진 새로운 고딕 성당도 ‘띤 앞’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체코 개혁시대에 띤 사제관에는 양종 성찬교회들을 관리하였던 후스 교의회(husitská konzistoř)가 있었다. 이 곳에서 대주교 얀 로키찬(Jan Rokycan)은 1424-1471년 사이에 모든 후스 교회들을 대표하였다. 띤 사제관은 반 개혁파가 재집권 할 때 까지 후스파 교회들을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곳의 마지막 행정관이자 목사였던 이지 디카스투스(Jiří Dikastus)는 1621년 가을 띤 사제관을 떠나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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