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 한인 예배 (2004년 11월 21일)
  • 눅 10:29-37
  • 설교자: 다빗 유레흐

041121

본문: 누가복음 10장 29-37

제목:

<본문>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 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자료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이 27키로미터였고 걸어서 약 여섯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해발 750미터이고 여리고는 해저 250미터여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려면 해발 총 1000미터를 넘어가는 셈입니다.

가끔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분들께서는 이 길이 대충 어떠할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리적인 조건을 고려할 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주로 내리막길 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내리막 길은 두 도시를 오가는 길에서 여행자들이 겪는 마지막 장애물이 아닙니다.

물건을 팔고 이익을 남긴 돈을 가지고 그리고 특별히 구입한 물건을 가지고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돌아 옵니다.

가장 물건이 많고 가장 값이 저렴한 물건들이 있는 곳은 수도나 대도시입니다; 이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은 지방에서 살면서 빨리 부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좋은 생각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것을 원치 않는 강도들이던 간에 아니면 민족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단체이던 간에 오늘날
주저함이 없이 테러를 자행하는 사람에 대해 그리고 자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간단히 말씀드려 이들 모두가 예루살렘과
여리고를 오가는 여행객들에게 폭행하는

그런데 어떤사람, 그는 분명 유대인이었습니다. 그가 여행을 하다가 강도를 만나 강도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거반 죽게 때렸습니다.

혼자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고 길에 쓰러졌습니다. 이 상황을 누가는 <반쯤  죽여놓았다>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순찰하는 경찰도, 긴급구조대도 없었고 그를 도울 수 있는 어떤 기관도 없었습니다.

거반 죽게된 여행자는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의 혹시 있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부상당한 여행자는 왜 상황에 의존하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여행길이 이니었기에 그의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 가운데 그를 도와줄 사람이 있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운전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상황을 잘 압니다.

고장난 자동차가 길거리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차를 세울 시간이 없고 그리고 자동차 수리할 줄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차를 세우고 그를 도와줍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일상의 경험이 오늘 본문의 상황을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우연히 제사장이 그 부근을 지나갔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회당의 제사장은 여리고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일주일 일하고 몇 주간 휴가를 보냈습니다.

회당 일로 지쳤고 게다가 힘든 여행 길이 더욱 그를 피곤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거반 죽게된 여행자를 보았을 때 그를 피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놀랄 수도 있고 아니면 놀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사장, 유대사회의 특별한 계층의 구성원인 제사장은 거룩한 것을 취급하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거반 죽게 되어 누워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율법이 시체를 만지는 것은 부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율법에 의해 제사장은 돕지않았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는 여행객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십시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도움을 받을 그의 희망은 점점 적어졌습니다.

해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제사장으로부터 도움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반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할 다른 여행자가 가까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은 레위 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예수님 당시에 낮은 지위의 제사장 계층이었습니다. 오늘날 체코교회 안에 있는  디아코니아 조직에 해당되는 그런 계층이었습니다. 

레위 인들도 제사장들 처럼 교대로 근무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레위인도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으며 매우 지치고 피곤해 있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 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로 높은 지위의 사람들 만큼 업무가 과중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은 얼마든지 부상당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그렇지 못했습니다.

거반 죽게 된 사람 가까이 가서 그를 보고도 어떤 도움도 주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이 사람은 이미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태야“, 아니면 „누군가가 그를 도와 주겠지“ 아마 레위 인은 그렇게 생각했을 지 모르겠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의 두 번째 희망이 빠르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 강도 만난 사람의 머리 속에 어떤 생각들이 오고 가고 있을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다.

아마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나간 자신의 생들이 주마관등처럼 스처지나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강도에 대한 원망, 자기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을 존경하였던 유대인으로서 그가 자신의 종교지도자들을 후회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최소한 그는 분명 마음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잠시 후에 도움의 손길이 다가 왔습니다.

끄랄리쯔까 성경은 <사마리딴>이라고 번역되어있는 <사마잔> (우리 한국 번역에는 사마리아인)이 그 길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인에 대해서는 히브리어 성경인 구약 전체가 아닌 단지 모세 오경에만 잠깐 언급될 뿐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멸시하였고 심지어 이방인들 보다 도 더 못한 부류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단 한 줄 일지라도 그들에 관해 기록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증오는 이성을 지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욕으로 생각하였고, 사마리아 인들로부터 받은 음식이나 물건들은 돼지고기와 같이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인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강도 만난 유대인도 분명히 사마리아 인들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만진다면 유대인은 곧 부정한(더러워진)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의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 사마리아 인은 매우 사려깊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위험에 처한 이웃에 대한 착한 사랑은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도 하지 않았습니다.

거반 죽게 된 사람곁에 가까이 가서 상처를 치료하고 싸매주고 자신의 나귀에 그를 앉혀서 그를 돌보아 줄 수 있는 주막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튿날 상태가 조금 나아졌을 때 주막 주인에게 그를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하고 들어갈 비용을 미리 지불하였습니다.

맡긴 두 데나리온은 매우 큰 돈이었습니다. 당시에 1/12 데나리온이 하루치 식대였습니다. 

이 사마리아 인을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는 예루살렘과 여리고로 자주 오가는 상인이었습니다.

그가 주막을 잘 알고 있었고 주막 주인과의 좋은 관계가 그 증거입니다.

제사장과 레위 인과 그가 상반된 모습으로 서로 비교되고 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었고, 그래서 당장 처리해야 되는 긴급한 일이 없었기에 도움을 줄 시간이 충분했습니다.

그에 비해 사마리아 인은 장사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자신의 고객들과 신속하게 정확하게 약속을 지켜야 되는 것은 장사를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기대하지 않던 상황에서 그는 거반 죽게된 사람이 자신의 편안함과 이익보다 우선이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두 번째 비교입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을 돕지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이방인들 보다 도 못하게 여기는 사마리아 인이 유대인을 도왔습니다.

도움 받은 그 사람의 기분이 어떠했겠습니까?

어쩌면 그가 도움을 받아야만 되는 그런 처지가 아니었더라면 부정 탄다고 믿는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주막에 누워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멸시하던 사람의 도움으로 지금 그는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구사일생한 것은 바로 그 사마이라 인의 사랑과 선행 덕분입니다.

그런 경험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과거와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강도 만난 사람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주막을 떠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음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중요합니다.

제사장과 레위 인의 행위입니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삶에서 그와 같은 행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웃에 대한 사랑이 어디까지 입니까?

누가 이웃입니까?

모든 사람입니까? 아니면 단지 우리들, 같은 민족,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까?

사람들의 관계는 사람이 무언가 응답을 해야 되는 상황을 만듭니다.

동시에 이웃에 대해 도울 만한 가치가 있다 없다 판단하지 않고 우리들 각자의 태도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생각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누가 나의 이웃인가 질문하지 않고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고 있는지, 상심한 이들 누구에게나 내가 이웃이 되고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입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는 사람이 이웃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사랑은 편견 없이 모든 경계선을 넘어갑니다.

종교, 민족, 인종의 차별 없이 모든 이들의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웃입니다.

오늘 누가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자비를 베풀라. 그것은 실천에 대한 분명한 강조입니다.  고통 받는 이들과 마음을 같이하고 단지 그 고통을 함께 느낀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용기있고 실질적인 도움과 자신의 편안함과 시간의 포기와 물질적인 손실을 요구합니다.

사랑의 실천을 위해 요구되는 모든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런 실천을 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며 사랑의 실천을 위한 힘을 주시며 우리를 사랑의 길로 이끌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는 복음의 기쁜 소식이 없이 우리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며 힘이라는 믿음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와 사랑의 우리의 삶을 전해 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집으로 돌아가시 길에 생각하실 두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누가복음 9장 52-56절

52  그는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셨는데, 그들이 가서 예수를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 사람의 한 마을에 들어갔다.
53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이므로, 예수를 맞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54 그래서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보고 말하기를 “주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55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고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이 사건이 있은 직후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사랑의 사람, 사마리아인의 예를 들었습니다.

제일 먼저 사마리아 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유대인을 거부한 직후에 사마리아 인이 상처 입은 유대인을 치료하기 위해 받아들입니다.

편견이 무너지고 가치없는 경계선들이 끊어집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증언의 학교입니다.

두번째 묵상의 말씀은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손을 붙잡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삶의 문제를 율법이 해결한다는 믿음안에 살았습니다.

강도만난 여행자들의 예는 율법이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구원은 기대하지 않게 유대인들이 무시하던 사마리아인에게서 왔습니다.

오늘 비유에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가 사마리아인이고, 우리들은 거반 죽게된 강도만난 사람들로 우리들은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웃에 대한 최고의 사랑의 표현으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구원에 대한 복음의 소식입니다.

사마리아인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도울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그의 손길을 거부하는 사람은 제사장이나
레위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이 다시 생각해야될 아주 헛된 희망에 대한
상징비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들을 위해 죽으셨기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 한인 예배 (2004년 09월 19일)
  • 요일 4:7-12
  • 설교자: 빠벨 뽀꼬르니

19.9.2004

Text: 1 J 4,7-12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안에 온전히 이루느리라

하나님은 사랑이다  – 성경에 이해하기 쉽지 않는 많은 비유들이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와 비유는 우리들이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인들의 삶의 자리와 경험에 얻은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많은 성경귀절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다  라는 이 말씀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체코에서 (특별히 체코개혁교인들에게) 성경 말씀들을 그림대신 벽에  붙여 놓것이 하나의 습관이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매일같이 눕고 일어나도록 침대 위에 말씀을 붙여놓거나 아니면 들어오고 나가면서 중요한 전달사항을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현관문에 붙여 놓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은 벽에 걸어두거나 붙여두는 성경 귀절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한마디 말씀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바다처럼 명쾌하게 가장 근본적이고 마지막까지 남을 우주의 진리이며, 가장 본질적인 의미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이 필요로 하는  오직 한가지와 그 의미는 사랑하는 것이입니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직장과 일상생활의 새로운 회기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우리들은 학업과 새로운 과제들에 전념할 것이며, 휴가기간이 끝나고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인생에 가장 근본적인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성경의 전통에 따르면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감정이 아니라 특별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작은 일로 매일의 삶의 노력으로 가능하며, 사랑하는 것은 우리들이 하는 모든 일에 의미와 나아갈 길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신학을 공부할 필요도,  대학입시자격시험을 치를 필요도 주일학교를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람들도 이 말씀을 알고 그리고 실천합니다. (어쩌면 실천을 하는데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 보다 더 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 이 말씀으로 모든 종교와 교회들의 경계선에 도달하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요한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 사회적 지위, 출신, 지식, 영적인 능력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사랑을 경험하였습니다.

사랑은 전 세계에 모든 문화와 종교들에 있습니다.

다시말씀드려 하나님은 모든 이들 가까이 계시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은 간략하게 줄인 말입니다.

모든 줄인 말처럼 이 말씀은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시킬 수 있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EU처럼 – 어디서나 누구나 바로 EU가 유럽연합인 줄 압니다. 그러나 일부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들께 그게 무슨뜻이며  EU의 근본정신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말할 것입니다.

줄인 말의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 줄인 말은 마치 암호와 같습니다.

줄인말은 남용될 수도 있고 바르게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독교 역사에서 그것이 몇 번이나 바르게 해석되고 얼마나 남용되었는가 생각을 해봅니다.

몇몇 사람들이 교회가 어떻게 자신을 속이고 있는지 알았을 때,  그래서 그에대해 그들이 말하려고 할 때, „비판하지
마시오, 여러분들의 지도자들을 공격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침묵을 강요당하였습니다.

수없이 이 말씀은 마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교회의 아름다운 외모로서 이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이 뜻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 안에서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은 다른 이야기를 즐기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이 즐기는 이야기의 줄인 말은 오늘날 베슬란입니다.

베슬란은 러시아 도시로 테러리스트들이 인질로 어린이들과 심지어 갓난아이들까지 붙잡고 있던 곳이며, 수십명의 어린이들이 공포에 떨고 죽음을 당한 곳이 베슬란입니다.

새 학년이 시작되던 베슬란, 벨슬란은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세상을 줄인 말입니다.

난폭하고 무자비한 세상, 사랑이 없는 세상. 그곳에 사랑이 없으니 하나님도 없습니까?

그러나 진심으로 우리들이 그 질문을 할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요한이 어떻게 기록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9, 10절 일부)

여기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악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악과 만나고 있습니다.

사랑은 피를 흘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를 잘 압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악과 싸우지만 악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베풀기 위해 어떤 살기 좋은 섬과 악이 없는 세상 을 창조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아들을 죄인들을 위해
보내고  그들과 한 식탁에 앉아 먹고 마셨으며 그들을 용서하고 소망을 주셨으며 그들을 대신해서 죽으셨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은 최후까지 남을 진리의 말씀으로 (모든이들에게 다가가는) 쉽게 걸어가고 쉽게 뛰어갈 수 있는 그런 넓은 길이 아닙니다.

복음이 하나님은 사랑이다 라고 말할 때, 복음은 우리들이 선한 뜻을 언제 어디서나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리고 언제나
사랑의 음성을 우리들이 듣게 되거나 아니면 우리들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우리들에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선한 뜻도 사랑의 음성도 사랑하는 사람들도 없는 곳을 단지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언가 결핍된 곳에 머무르십니다.

사랑에 정복당한 우리들은 그곳에 파송을 받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 여러분들에게 줄 것이 없는 사람들, 우리들의 사랑을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자들로서  우리들이 받은 그 사랑을 전합시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현관문 앞에 적어두기도 하고

아니면 교회당 벽에 적어 놓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라는 이 말씀은 하나님 아들 이야기에 대한 응답이며 그의 길에 동참하라는 초청임을 우리들은 압니다.

그 이상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교회 공동체로서 우리들이 실천하는 것들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의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요 새로운 힘을 공급 받는 휴게소 입니다.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뺀다면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줄인 말이 아니라 우리의 목표입니다.

부활의 약속이 있는 십자가의 길이 하나님의 사랑에 다다르게 합니다.

아멘

III/1 백설의 성모 마리아 교회

III 신도시 – 남쪽과 남서쪽 코스

1. 백설(雪)의 성모 마리아 교회당 (Kostel Panny Marie Sněžné) – 2. 프란띠쉑 빨라쯔끼의 집 (Dům Františka Palackého) – 3. 체코형제개혁교회의 후스의 집과 그의 상징 (Husův dům Českobratrské církve evangelické a jeho symboly) – 4. 예로님 쁘라슈스끼 문화재 안내판이 있는 집 (Dům s pamětní deskou M. Jeronyma Pražského) – 5. 신도시 시청과 구 하나님의 몸 채플 (Novoměstská radnice a někdejší Kaple Božího těla) – 6. 슬로반의 엠마오 수도원 (Emauzský klášter na Slovanech) – 7. 블타바 강변에 있는 프란티쉑 빨라쯔끼 동상 (Pomník Františka Palackého u Vltavy) – 8. 즈데라제에 있는 성 바쯜라프 교회당 (Kostel sv. Václava na Zderaze) – 9. 찌릴과 메또뎨이 교회당 (Kostel sv. Cyrila a Metoděje) – 10. 보이뗴흐 거리의 보이뗴흐 교회당 (Kostel sv. Vojtěcha ve Vojtěšské ulici) – 11. 이르하지 거리의 성 미할 교회당 (Kostel sv. Michala v Jirchářích)

무스텍 지하철 아래 쪽 정거장에서 부터 신도시 후스 추종자인 급진파 지도자 얀 줼리브스끼(Jan Želivský)의 흔적을 따라가는 세 번째 코스가 시작된다. 남동쪽 융만 광장쪽으로 가면 약 100미터쯤에 프라하에서 교회당 높이가 가장 높은 백설의 성모 마리아 교회당의 높은 벽이 가까이 우리들 앞에 우뚝 솟아있다. 오스트리아 문화원이 있는 사제관 북쪽 문으로 들어가면 교회 앞마당에 도착하게 된다.

1. 백설(白雪)의 성모 마리아 교회당 (Kostel Panny Marie Sněžné) 나중에 세워진 교회당 토대 가운데 일부는 까렐 4세가 자신의 체코왕 대관식 때 카르멜 수도회를 위해 1347년에 세웠다. 세 구역의 회중석을 가진 장엄한 양식의 대규모의 고딕교회당 건설을 계획하였다. (프라하 교회당들 가운데 가장 큰규모로 구상된, 길이 100미터 높이 35미터의 교회당이었다. 그러나 1398년 까렐이 죽을 때 까지 완성 완성되지 못하였다.) 로마의 Esquilin의 교회당 건축양식과 관련된 “백설의” 또는 “눈(雪)속의” 성모 마리아라는 교회당 이름은 일반적이지 않다. 전설에 의하면 교회당을 세운 사람은 교회당의 좋은 터를 하늘의 뜻으로 알게되는데 8월달에 눈이 쌓인 곳이 바로 그 곳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대교회당 건설은 후스파가 두 파로 나뉘어져 서로 전쟁을 하기 시작할 때까지도 완성되지 않았다. 카르멜 수도회는 1412년에 위클리프(Viklef)의 사상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일반대중이 좋아했던 베들레헴의 얀 후스 선생도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예로님 선생(Mistr Jeronym)의 지도아래 있었던 후스파들은 교회로 강제로 들어가서 교회의 장식을 파괴한 다음에 그들에게 가장 적대적이었던 미꿀라쉬(Mikulaš) 수사를 블타바강에 던졌다. (그러나 그는 어부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콘스탄츠에서 후스가 죽은 후 1415년 2월에 프라하 시민들은 카르멜 수도회의 수사들에게 그들의 교회에서 양종성찬의 성만찬미사를 하도록 강요하였다. 그 다음해에 그들은 양종성찬의 성만찬미사를 요구하러 콘스탄쯔까지 갔지만 성공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공의회는 예로님 선생에게 화형선고를 하게된다. (1416. 5.30)

양종성찬을 위해 투쟁하던 시대에 카르멜 수도회의 수사들이 도망간 교회였던 눈 속의 성모 마리아 교회는 1419년에 후스파의 압력으로 바츨라프 4세가 정기적인 양종성찬 미사를 허락한 프라하의 세개의 교회가운데 하나였다.(II/2) 왕의 명령으로 성 슈떼빤(sv. Štěpán) 설교단을 떠나야했던 얀 줼리브스끼(Jan Želivský)가 이때 이 교회 설교자가 되었다.

줼리브 출신의 얀은 눈 속의 성모 마리아 교회에 설교자가 되기 전에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사였다. “눈 속의 성모 마리아 교회”에서 죽을 때까지 활동하였다. (I/4) 그는 설교를 통해 대담하게 세속화된 교회의 지도계층과 프라하의 타락한 사회상을 비판했다. 그는 욕망이 가득한 프라하의 지배계층을 반대하는 프라하의 하층 계급 시민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첫 번째 프라하 투척사건 이 후( 1419년 7월 30일에 신도시 청사 창문 밖으로 공무원들을 던졌던 사건 III/5) 그는 프라하의 모든 후스파 신자의 지도자가 되었다. 줼리브스끼는 슬퍼하는 군중들의 애도 속에 눈 속의 성모 마리아 교회에 묻혔다.

지그문드(Zikmund)의 십자군이 비쉐흐라드(Vyšehrad) 싸움(1420. 11. 2)에 진 이후 급진적인 따보르(Tábor)파 바츨라프 꼬란다 스따르쉬(Václav Koranda Starší)가 1421년 봄에 눈 속의 성모 마리아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후스파 극단주의자 야쿱 블륵(Jakub Vlk)이 이 교회에서 줼리브스끼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의 조언에 따라 신도시 양종성찬파들이 1434년 봄에 왕의 군대와 구도시의 온건파에 대항하여 싸움을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따보르파와 고아파들과의 연대를 포기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쁘로꼬프 홀리(Prokopa Holý)의 지도아래 이들은 신도시 형제들을 돕기위해 신속하게 왔다. 구도시와 신도시의 싸움에 교회당은 심하게 부서졌고 교회 탑은 구도시의 승리로 파괴 되었다. Vlk신부는 프라하에서 격퇴당하였고 눈 속의 성모 마리아 교회의 신도시 후스파 중심역할은 끝이났다.

급진적인 후스파가 Lipan전투(1434. 5. 30 )에서 패배한 후에 카르멜 수도회의 수사들이 교회에 다시 돌아왔고 이 교회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수도원도 재건하였다. 그러나 1483년의 프라하 반란 때 교회는 다시 파괴되었다. 그리고 1521년의 후스 기념일에도 교회는 다시 또 파괴되었다. 카르멜 수도회의 수사들이 16세기 중반까지 비바람으로 쓰러져 가던 교회당과 수도원을 사용하였다. 1603년에 루돌프(Rudolf) 2세가 폐허가된 건물들의 관리를 독일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에게 맡겼다. 그 이후에 수리된 교회당에서 1884년까지 독일어 미사가 진행되었다.

그 후에 세워진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건물들 남쪽 앞에 지금까지 큰 수도원 정원이 남아 있다. 이 정원은 1950년에 프라하 시민들에게 개방 되었다. 1990년대 정원이 공원으로 개축되었고 이제는 소음이 많은 도시의 휴식공간이 되었다. 교회 앞 수도원 안 뜰에서 융만 광장까지 서쪽 정문을 통해 나갈 수 있다. 여기는 19세기의 뛰어난 민족 부흥 운동가 요셉 융만(Josef Jungmann)의 동상이 있다. ( 1878년에 조각가 쉬멕(L. Šmek)은 융만을 안락의자에 앉아 펼진 책과 펜을 들고 있는 학자로 만들었다. )

요셉 융만 (+ 1847 )은 시인이며, 문헌학자며 동시에 번역가이다. 그는 합스부르크의 반개혁운동으로 차츰 파괴되는 체코 문화와 특히 체코 언어의 미래를 걱정하여 체코어를 구하기 위해 일생을 헌신하였다. 그가 쓴 글이다 : “체코 민족은 교황을 벗어나는 영광의 시대에 유럽에서 가장 뛰어났지만 예수회가 지배할 때는 이처럼 밑바닥까지 떨어질 때가 없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역사가인 그의 친구 프란띠쉑 빨라쯔끼(František Palacký + 1876) 과 동일 하였다. 빨라쯔끼의 기념 집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하겠다.

융만 동상에서 일방통행의 융만거리로 들어간다. 왼쪽 두 번째의 우 트지 흐로젠(U tří hroznů)이라는 집은 융만이 죽을 때까지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집 뒤로 약 100미터 지나가서 왼쪽에 있는 빨라쯔끼 거리로 돌아들어간다.

[기독공보 기고글] 땅끝까지이르러 체코편 (6)

기독공보 (www.kidokgongbo.com)
* 호. 발행일:2481. 20041009
땅끝까지이르러/ (24) 오픈 하우스 체코선교정책 <체코편(6)>

체코교회의 폐쇄성 극복을 위한 첫 시도로서의 선교 프로그램이 체코형제개혁교단의 쁠젠 꾸란두브교회에서 구체화됐다. 쁠젠은 프라하에서 동쪽으로 1백 킬로미터 떨어진 체코 제 3의 도시이다. 체코 동부지역은 개혁파들이 왕성했지만 1620년대부터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대대적인 박해를 받아 소위 ‘재가톨릭화(세계 교회사에서 ‘반종교개혁운동’으로 때론 설명을 함)’ 되어 현재 개신교회가 가장 미약한 지역이다.

 2000년 2월에 꾸란두브교회에서의 선교 프로그램이 구체화되기 훨씬 이전인 1996년부터 꾸란두브교회 담임 목사와 교제를 하다가 1998년 하반기부터 교회에 상담실을 개설했다. 교회 안에서 구호차원의 상담실을 운영하는 예는 있으나 상담을 목적으로 하는 상담실은 체코교회에 존재하지 않았다. 상담은 종교비판에 근거를 둔 심리학의 사회 과학적인 접근으로 공산정부가 종교의 대안으로서 정책적으로 접근한 분야였다. ‘목회상담’이란 용어 자체가 이제 체코교회에 소개되고 있고 많은 목회자들은 목회와 상담을 구분하여 서로 다른 영역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직 이곳의 교회 분위기이다. 여전도회 전국 연합회가 관심을 가지고 이 활동에 재정 지원을 하면서 나는 상담실과 연계를 시켜 목회자와 지역주민이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오픈 하우스(Open House)’ 선교 프로그램으로 기존의 활동을 확대할 계획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을 위해 더 넓은 교회 공간 사용이 필요하여 꾸란두브교회 당회를 설득하여 허락을 받고 이어 2000년 1월 꾸란두브교회 공동의회에서 교인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직접 설명했다. 꾸란두브교회에 접한 부속 건물들은 맥도널드가 위치할 만큼 시내 요지의 장소여서 교회 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교회의 동의를 끌어내기가 쉽지않았다. 이때부터’오픈 하우스’는 선교 프로그램 이름이자 동시에 나의 체코선교정책의 대명사가 됐다.

 (아래의 내용은 2000년 1월말 꾸란두브교회 공동의회에서 교인들에게 프로젝트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던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공동의회 자료로 제출한 것이다.)

 프로젝트 ‘오픈 하우스’는 특별히 기독교의 증언 가운데 하나인 ‘섬김’을 표현하길 원한다. 그리고 교회 밖의 사람들과 교회 안의 사람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중간장소’가 되길 원한다. 그리고 ‘오픈 하우스’가 특별히 가난한 계층(소비 또는 문화 생활 등의 다른 삶의 출구가 없는 이들)에게 교회가 제시하는 삶의 대안이 되길 원한다. 이 프로젝트는 다른 말로 ‘선교적인 목회’라고 표현할 수 있다. ‘선교적인 목회’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면에서 기독교에 대해 넘쳐나는 정보를 갖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 교회로부터 어떤 기본적인 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교회는 그들을 무관심 속에 버려두었다. 교회가 무관심 속에 버려두었던 사람들을 만나 ‘기쁜 소식’을 나누는 희망은 그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지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고백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도움을 세상에 육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집으로서 교회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져야 한다.

 선교적인 목회의 중요한 모습은 강의나 설교가 아니라 사람들과 형식 없는 만남이다. 프로젝트 ‘오픈 하우스’는 이러한 만남의 모든 기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여러분들의 교회당과 부속건물의 지붕 아래 증언자의 보물을 감추지 않아야 한다. 욕심 없는 섬김으로 사람들과 즐거운 만남을 이루어야 한다.

이 종 실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