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공동의회 한인공동체 보고

2002년 공동의회 한인공동체 보고

우리 한국교인들이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꼬빌리시 교회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사랑으로 대해주신 체코교우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체코인 한국인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한 공동체를 이룬지 불과 두 해가 안되어 우리 교회는 전 유럽에 소문난 교회가 되었습니다. 50년대에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들이 취업을 하면서 유럽의 한국교회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현지교회와 한국교회가 한 집에서 한 공동체로 함께 사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럽교회도 유럽의 한국교회도 어떻게 체코의 작은 교회가 그러한 교회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가? 놀라와 하고 있습니다. 작년 스위스에서 유럽의 한국교회 대표들은 카톨릭은 하나의 교회이지만 유럽에서 우리들이 느끼는 개신(혁)교회는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배장소를 찾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고 교회당을 빌리는데 경비를 지출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유럽교회들은 유럽의 한국교회들의 폐쇄성과 분열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꼬빌리시 교회는 유럽교회와 한국교회의 관계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작년한해 우리 교회를 방문한 한국인들은 160명이었습니다. 그 중의 1/3이 우리 교회에서 최소한 하룻밤을 잤습니다. 이들은 “체코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는 우리의 선교모델이다. 체코에 가서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를 배워라. 그리고 그곳에서 최소한 하룻밤을 자면서 그 교회의 분위기를 느껴보아라.” 말하고 있습니다. 꼬빌리시 교회의 한국인들은 이제 단지 우리가 뿌리를 내리는 제 2의 고향이 아니라 이미 유럽교회와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사명을 깨닫고 그것을 수행하는 우리의 집이 되었습니다.

꼬빌리시의 한국인들은 이제 서서히 체코교회와 한국교회의 차이점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한국 교인들의 신앙전통에 성전은 매우 거룩한 장소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성전을 찾아 그곳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곳입니다. 말씀 단 뒤에 서있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에게 말씀과 성찬이 중요한 만큼 우리들의 신앙전통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배 전통도 서로 다름을 발견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예배가 세대간의 대화의 요소가 있다면 우리 한국인들에게 예배는 교육의 요소가 있습니다. 설교는 회개와 결단을 촉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관심이 있는 예배, 감동이 있는 예배를 예배의식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서로 다른 전통이 존중되고 토론되길 희망합니다. 전통은 계승되어져야 하지만 동시에 발전되어야 합니다. 꼬빌리시 교회 안에서 체코인과 한국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우리들이 함께 사는 하나님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작년에 두 가정 7인이 귀국하고 5가정 11인이 새로 오셔서 현재 교인 수는 어린이 포함 60명이며 작년한해 주일 예배에 평균 45명이 참석했습니다. 찬양대가 조직되어 예배 전에 30분 예배 후 다음 예배를 위해 2시간 연습을 합니다. 두 명의 성인이 세례를 받았으며 성경공부를 위해 각 가정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남성도,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 여성도들이 모입니다. 청년을 위한 성경공부는 월 2회이며 어린이 학생들은 주일 예배 후에 있습니다.

일 시: 2002/3/17
보고자: 목사 이종실

정부, 기독교 학교 재정지원 거부

정부, 기독교 학교 재정지원 거부

기독교학교와 사립학교의 교사들은 다른 학교의 동료들 보다 더 낮은 봉급을 받게 될것이다. 정부가 교사들에게 3월부터 약속한 11퍼센트 봉급인상을 언급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37억꼬룬을 봉급인상분으로 지정하였다. 기독교학교 교사들의 봉급인상은 5천만 꼬룬의 약간의 예산으로도 충분하지만 1꼬룬도 책정하지 않고있다.

교회들은 문교부가 기독교 학교를 폐교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지금까지 문교부는 우리들에 대한 봉급인상을 언제나 기억하였고 그 예산을 마련하였었다. 이처럼 한적이 없었다. 문교부 장관 에두아르드 제만이 기독교학교를 경제적으로 붕괴하려는 노력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학교대책을 위한 체코주교회의에서 다니엘 꾸힌까가 말했다.

3월 6일에 체코주교회의 의장 대주교 얀 그라우브네르가 문교부 정책에 항의를 하였다. 수상 밀로쉬 제만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국가는 국가 학교와 같은 차원에서 법에 따라 기독교 학교를 세웠음을 상기시켰다. “민주적인 원칙이 지켜지고 기독교 학교의 교사들이 국립 학교의 교사들과 동등하게 대우 받을 수 있도록 귀하에게 요청합니다.” 대주교는 수상에게 편지를 썼다.

문교부는 그러나 기독교 학교와 사립학교 교사들의 봉급인상 예산 책정할 돈이 없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그 학교들에 대해 국립학교와 시립학교의 책임에 따라 지원하였다. 지금 우리들은 여력이 없다.” 문교부 재정부 최고 책임자 즈데녝 베르나르드가 말했다.

125개의 기독교학교는 현재 오직 문교부의 재정지원에 의지하고 있다. “우리는 예산을 확충할 수 없다. 완전히 불가능하다. 문교 감독기관의 평가에 따르면 기독교 학교들은 교육 환경의 질이 좋지않다. 재정의 부족 때문에 교육시설이 뒤떨어져있다.” 주교회의의 꾸힌까가 말했다. 그는 학교들이 옛날 시설로 교육하고 있고 수리비와 교재비가 없다고 한다. 학교들은 교회의 기부금을 기대할 수도 없다. 교회들은 문화부의 예산으로 운영되며 문화재 수리를 위한 높은 비용 때문에 교사들을 위한 지원을 할 수 없다. 기독교 학교들은 낮은 봉급 때문에 교사들의 영입에 곤란을 격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문교부의 최고 책임자 베르나르드는 그러나 정부의 봉급인상은 비국립 학교들의 교사들까지 포함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있다. “정부는 예산 기관들의 교사들을 위한 봉급을 인상한것이지 교회와 사립학교들이 아니다. 5천만 꼬룬은 그들에게 적을는지 모르지만 문교부의 입장에서 많은 부분의 예산 삭감을 의미한다.” 베르나르드는 말하였다. “그들을 위해 단 1꼬룬도 없다. 국립학교들을 위한 돈들이다.” 덧붙였다.

그러나 학교들은 그러한 주장은 예산의 목적만을 고려한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주교회의의 다니엘 꾸힌까는 기독교학교의 교사들은 봉급인상은 없고 단지 도의적인 책임만 있으나 그러나 법이 봉급인상을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교부는 문교부가 국립학교의 차원에서 기독교 학교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헌법을 어기고있다.”고 꾸힌까가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악화되고있다. 얼마안 있어 기독교 학교들은 국가의 예산을 한푼도 받지않게 될 수 있다. “만약에 새로운 학교법이 재정되지 않으면 우리들은 재정확충 권한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 학교들은 합법적인 재원확충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드는 말했다.

학교들은 그러나 그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우리들이 국립학교로서 활동하는가? 책임있는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즈루치 나드 사자보우에 있는 주교 김나지움 교장 이지 쪼체브가 분노하였다. 자신의 교사들에게 3-5퍼센트 인상하려면 그 경우 학교가 빚을 얻어야된다. “더 부유하게 되길 위하여 교사들이 우리들에게 오지 않을 것이나 그러나 그 돈은 구할 수 없다.” 그는 덧붙였다.

<출처> Lidove Noviny 2002년 3월 9일 토요일

2002년 3월 3일

오늘 에큐메니칼 예배는 파리한인장로교회 찬양 선교단들이 참여하였다. 한인 교우들과 함께 봉헌시간과 성만찬시간에 그리고 축도 후 송영을 함께 불렀다. 예배 설교는 이종실 목사, 성경 읽기는 서병조 집사, 그리고 선교단을 인솔한 성원용 목사가 성만찬 집례에 참여하였고 축도를 하였다. 예배 통역은 방인갑 유비에프 선교사가 하였다.

파리한인장로교회 찬양 선교단원 가운데 이 년전에 다녀간 단원들이 그때보다 훨씬 예배 진행이 짜임새가 있고 안정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예배 뒷자석에 있는 어린아이들 관리 그리고 예배 안내의 미흡과 찬양대와의 호흡 부족으로 부분적으로 산만하였다.

선교적인 관점에서 에큐메니칼 예배의 취지와 해외의 한국인의 교양과 문화에 대해 긴장감을 다시 다질 필요를 느끼게 하는 예배 분위기였다. 첫 주마다 있는 한인 교우들의 공동식사 준비로 예배자들의 분주한 마음들이 드러나는 것도 느껴진다.

교회소식 시간에 3월 21일 우주베키스탄으로 발령을 받은 정중명 집사가족이 교우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예배 후 체코교우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종실 목사의 설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체코교우들이 “설교가 선동적이었다.”라고 비판하였고 반면에 젊은층들은 매우 감동적이었다는 의견이었다. 화요일 오후 몇몇 체코 교우들이 이종실 목사를 찾아와 에큐메니칼 예배 설교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체코교우들은 목사의 설교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언제나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논쟁이 아니라 서로 배우려는 토론의 차원이다. 체코어 표현이 부족하지만 체코교우들은 이종실 목사의 설교를 진지하게 경청한다.

파리한인장로교회 찬양 선교단 활동 보고

3월 1일부터 3월 5일까지 파리한인장로교회(이극범 목사) 찬양 선교단이 프라하를 방문하였다. 이년전에 처음 시작하여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다. 단원은 파리한인장로교회 교인들로 주로 성악 또는 기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다. 이 프로그램은 파리한인장로교회와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가 연대하여 선교의 인적인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은 파리한인장로교회 이극범 목사님의 지지와 성원용 목사의 많은 선교적 관심과 기도가 있기에 가능하다.

이 년전 찬양 선교단의 활동에 비해 이번 활동은 진일보하였다. 단원들은 3일 주일과 4일 월요일에 매우 농도짙은 활동을 하였다. 주일에 체코교우들과 한인교우들이 함께 드리는 에큐메니칼 예배에 참여하였고 오후 5시에 찬양 콘서트를 하였다. 공연은 완전히 감동과 은혜가 충만한 예배 분위기였다. 감동에 젖은 청중들은 공연이 끝나자 기립박수를 끝없이 보냈다. 단원들은 세 차례 앵콜 박수를 받았다. 단원들이 모두 떠난 후에도 주중에 만나는 교우들 마다 콘서트에서 받았던 감동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몇 몇 교우들은 개인적으로 내게 단원들의 주소를 문의하였다. 콘서트의 감동과 함께 감사의 편지를 보내고 싶어한다.

3월 4일 월요일 오전 8시 45분 정각에 프라하를 출발하여 삐섹을 향하였다. 삐섹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30분이었다. 삐섹에 유명한 체코국립 김나지움(고등학교)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이 학교는 불란서어로 수업을 하는 특별학교이다. 초등학교 8학년과 9학년이 되면 집중적으로 불란서어를 교육받고 4년의 고등학교 과정은 모두 불어로 교육하는 체코 학교이다.

체코는 학교에서 포교활동을 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있다. 그래서 체코에서는 학원선교가 매우 열악하다. 정부에 등록이 된 교회들이 학교당국의 허락으로 종교학 강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 대해 배타적인 사회분위기는 교회의 학원활동에 매우 장애가 되고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찬양 선교단의 학교 방문은 삐섹에서 벨리바 찻집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는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오전 10시 55분부터 11시 40분까지 그리고 11시 55분부터 12시 40분까지 두시간 학생들과 만남을 허락받았다. 단원들은 자기소개 간단한 찬양곡 소개 그리고 학생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기 위해 오후 2시에 찻집으로 초대하였다. 기대하지않았던 고등학교 최고학년 화학수업시간에 잠깐 허락을 받았다.

점심을 급히 한 뒤 단원들은 찻집으로 갔다. 단원들은 각각 테이블로 흩어져 이미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었다.

오후 4시 무대시설도 없고 천장도 낮고 카페트가깔려 있어 콘서트를 하기에 열악한 환경이지만 선교를 목적으로 방문한 단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하였다. 공연이 끝난뒤 콘서트에 참가한 7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비뽑기를 하였다. 제비를 뽑은 그 순간 까지 어떤 선물이 기다리고 있는지 참가한 학생들에게 비밀로 하였다. 한 여학생이 뽑혔고 그리고 약 일주일간 파리 왕복 비행기 티켓과 홈스테이를 제공한다는 이야기에 제비에 뽑힌 여학생은 물론 참가한 모든 학생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요나가 제비에 뽑혀 풍랑이 이는 바닷속에 던져졌고 그래서 큰 물고기(벨리바) 속에서 회개의 기도가 있었던 것 처럼 제비 뽑힌 학생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환영하는 파리한인장로교회와 친교를 나누는 며칠간 그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오기를 기도한다.

파리한인장로교회의 이 선교 프로그램은 프라하 뿐 아니라 삐섹의 선교활동에 큰 자극과 도움을 주고있다. 서로 나눌 수 있는 자원으로 협력해서 선교를 이루어가는 노력은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고백이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어갈 것이다.

파리한인장로교회와 수고한 찬양 선교단 단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 일을 위해 봉사한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 한인교우들 그리고 숙소를 제공한 꼬빌리시 교회에게 감사를 드린다.

예수님의 일, 우리의 일

  • 연합 예배 (2002년 03월 03일)
  • 요 2:13-22
  • 설교자: 이종실

02/03/03(사순절 세번째주일)
본문: 요한복음 2:13-22


늘 복음서는 엄격하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성전청결 이야기 입니다. 요한복음에 그 성전청결 이야기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첫번째 여행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유대인의 대절기인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가셨습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을 기억하는 축제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유월절 축제를 통해 매년 자신의 백성을 구원한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기억하고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갈 때 성전 뜰이 상업지역으로 바뀐 것을 보았습니다.


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도착하던 그날 축제의 찬송을 부르며 경건하게 성전으로 들어갈 수 가 없었습니다. 제일 먼저 장사꾼들의 임시로
지은 조그마한 판매건물과 가판대 사이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장터는 성산 맞은편 올리브산에 열리게 되어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짐승 파는 사람들 돈 바꾸는 사람들의 그 행위를 반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짐승을 팔는 사람들은 장거리 여행을
하며 이 유월절 축제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성전 가까운 곳에서 짐승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환전하는
사람들 역시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나 다른 나라의 돈으로 헌금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로마
황제나 다른 통치자들의 그림이 있는 동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십계명은 그러한 다른 그림이 있는 돈을 헌금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환전하는 사람들은 율법이 금하는 돈을 유대인의 법이 허락하는 돈으로 바꾸어주고 있습니다. 가축을 파는 사람들이나
환전하는 사람들이 일을 잘하면 그들의 일은 올바른 유월절 축제에 기여하는 일이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가축파는 사람들과
환전하는사람들의 그 일에 대해 반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금 장사행위를 하는 장소에 대해 공분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 안을
장터로 만든 것을 예수님은 싫어하고 계십니다.

한 성서학자는 대제사장 가야바가 자신을 지지하던 사업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영업을 허락한 그 년도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가야바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업가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자신을 지지하는 사업가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확실하게 챙겨줍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축제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던 그 해에 가야바의
결정이 내려졌다면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 영업을 하던 사업가들에 매우 엄격하게 반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것입니다. 영업은
사업가들의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야바도 자신의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그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일이 있습니다.
같은 장소 성전에서 이와 같은 세가지 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못하였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는 순종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 때문에 당시 사회질서와 권력의 구조와 충돌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던 자들은 무슨 권한으로 당시 성전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지 알기를 원합니다. 그의 권한이 로마의 황제로부터 인지
아니면 빌라도로부터 부여 받은 것인지 질문합니다. 누가 장사하는 일들을 방해할 권한을 그에게 주었는가?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성전 안
영업방해 행위 허락서를 요청하였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문서를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예언자의 전통에 따라 그들에게 예언서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한복음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청중들은 언제나 성전에 대한 그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였습니다.


수님의 제자들도 그리고 예수를 반대한 자들도 성전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성전건축에 관한 이야기로 이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이 성전을 자신의 몸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석을 달고 있습니다. 사흘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부활
사건을 예고하고있습니다.

부활의 선언은 예수의 반대자들의 권력과 상업주의자들의 권력과 모든 권력구조에 도전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이 우상 숭배임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코 공화국에 좌파정부가 통치하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엘 살바드로에서는 우파 정부가 권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남미에 있는
그 조그마한 나라에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로메로“ 라는 대주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불의한 우파 권력에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로메로는 자신의 생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암살특공대의 위협을 겪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1980년 3월 제단에서 성만찬을 집례하는
중에 총격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이 세상의 가치들이 어떻게 성만찬에 위협이 될 수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로메로 대주교로부터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일의 현대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들이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 더 넓은 시각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들의 노력과 우리들의 비젼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애동안 우리들은 단지 하나님이 행하시는 아름다운 사역의 조그마한 한 부분만을 수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들이 하는 어떤 것도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어떤 뉴스도 모든 것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누구도 완전히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지못합니다.
어떠한 신앙고백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결과를 가져오는 어떠한 목회자의 심방도 없습니다. 교회의 전도와 봉사를 충족시키는
어떠한 선교 프로그램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포함하는 어떠한 목적도 목표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젠가 자라날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희망 안에서 심은 씨앗에 물을 뿌립니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필요한 모퉁이 돌을 세우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노력이 우리들의 능력 이상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은 모든 것을 할 수 없지만 우리들은 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무엇인가 시도하도록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일을 잘 하도록 하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들이 하는 하나님의 일이 불완전할 지라도 그것은 시작이며 우리들의 하나님의 일은 한걸음씩 더 멀리 전진할 것이며, 우리들에게
안식을 주는 하나님의 은총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비록 우리들이 결과를 전혀 모른다고 할지라도 우리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의 일꾼과 창조자의 차이점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일꾼이지 창조자가 아니며 우리들은 신도들이지 메시아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위한 예언자들이지 우리들이 그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일하신 것 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일해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