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천국

  • 한인 예배 (2001년 08월 26일)
  • 마 13:24-30
  • 설교자: 이종실

01.08.26(삼위일체 후 열한번째 주일)
마태복음 13장 24-30절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천국

(공동기도)                                           
저희들을 끝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알기를 원합니다.
나를 위해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천국을 열어주신 주님임을
이 세상에 고백하며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본문 읽기)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 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로마의 통치 아래 자유를 빼앗기며 살아가던 유대인들,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파멸시키고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를 갈망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타민족에게 통치를 받으며 오랫동안 수탈과 수치와 경멸을 겪던 유대인들에게 오늘 예수님의 천국비유가
얼마나 불쾌하게 들렸을 지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 뿌리고 갔더니”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고개를 끄덕 거렸을 것입니다.
“우리 유대인들은 좋은 씨들이지. 우리가 우리 밭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데 원수 저 로마가 와서 우리들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지.” 그들은 가라지와 원수를 정복자 로마로 일치시켜 이해했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타 민족에게 정복을 당하고 통치를 받는 것을 원치않습니다.

구나 하나님의 택한 민족이 이방민족에게 정복을 당해 통치를 받는 다는 것은 참을 수 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죽음의 항쟁을 통해 자유와 독립의 해방으로 민족적인 고통을 벗어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아닌 열심당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를 뽑아 버려야 되는 불필요한
가라지로 여겼습니다. 로마로부터 독립하여 유대의 주권을 회복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들은 어떠한 어려움도, 어떠한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시간 자신들의 노력이 가장 선한 일이며 모든 유대인들이 자신들 처럼 살아야 된다고 그들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암살도 서슴없이 하였습니다.

이러한 열심당 사람들이 예수님의 천국비유를 계속 듣고 있습니다.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종들의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당연히 뽑아야 되는 자신들의 생각과 일치할 주인의 의견을 확인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열심당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체코어로 번역되어 시중에 나오자 마자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자 정부는 이책을 판매금지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정부의 판매금지 조치에 대해 찬반 토론이 사회일각에서 벌어졌던 것을 기억하실 줄 압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소개하는 서문에서 콘라드 하이든은 “히틀러 같은 인간이 그의 야심을 실현시키는데 그토록 성공할 수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 기꺼이 협력하는 수백만의 협력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수세기 동안 세계인류가 깊이 돌이켜 생각해야
할 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관철하려고 하는 열심당 사람들의 독제성은 어쩌면 우리 인간의 삶의 본질의
뿌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천국비유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 가운데 이 시간 우리들이
함께 기억해야 될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 역시 로마 통치의 문제를 사회문제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원수는
로마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과 그 법이 요구하는 것을 무시하는 모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어기고 무시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로 간주하여 그들을 경멸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문제해결 방식은 종교적인 열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겼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삶으로 세상의 가라지들과 차별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으로 세상 속에서 가라지들과 다른 삶의 양태를 창조하였습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피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들만의 엘리트
사회를 만들어갔습니다.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열심당 사람들 처럼 바리새인들도 받아들일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둔다는 것은 열심당 사람들에게는 정의를 부인하는 것이며 바리새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을 능멸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매우 우유부단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또 율법을 파괴하는 자로 비추어졌을 것입니다.

예수님
의 천국 비유는 사람들에게 천국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 아니라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것을 미리 아신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인 13장  10절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비유로 설명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답변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바리새인과 유대인)에게는 아니되었나니 …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메시야를
대망하는 유대인들, 열심당원 사람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 – 천국의 비밀 –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 예수님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셨을까 우리는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은 탐욕과 악독이 가득 하도다.”(눅 11:39) 비판하시고 다른한편 바리새인들이 죄인들로 지옥의
땔감으로 여기며 배척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어울렸던 사람들은 세리, 창녀, 병자와 잡배들이었습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의 유대인 통치를 돕던 민족의 앞잡이 매국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 세리들과 모든 형태의 죄인들과 같은 식탁에 앉아
함께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가 열심당 사람들이나 바리새인들이 믿던 하나님 나라와는 명백한 차이가
있음을 우리들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 열쇠는 종교적인 열정과 순결함의 정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불순함과 죄인 됨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냐하면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자신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씀드려 하나님 나라는 체코의 가장 유명한
관광회사 피셔의 광고책에 나오는 지중해 어디엔가 있는 환상의 섬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골고다 언덕 위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고다 언덕에서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 처형을 당한 한 행악자가 예수님께 간청을 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2-43) 십자가 위에서 격심한 고통을 겪는 예수님이 낙원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낙원은 우리 죄인들을 용납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마지막 심판을 연장하고 곡식의 뿌리하나 상함이 없이 모두 거두어들이려는 하나님의 은혜가 천국의
비밀이었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문제를 해결 하지말고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무것도 하지않는 것과 인내와 관용으로
기다리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마 주인은 아무것도 하지않고 집에서 바둑을 두며 그냥 추수 때를 기다리지 않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밭의 곡식들을 돌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냥 때를 기다릴 수 없어 독생자 아들의
모습으로 자기 밭인 세상 속에 오셔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하나님 은혜 안에 있는 천국이 되었습니다.

천국을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닌” 이란 수식어로 설명을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또 다른 천국 비유인 겨자씨와 누룩의
천국 비유도 천국은 점차 성장하여 완성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은 이미 시작되었고 현재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하면서
마지막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천국을 성장시켜가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천국 비유의 의미를 바로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호롱불을 길거나 짧은 막대기에 매달아 들고 미지의 땅을 안전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과 같고 은혜 보다도 교리와
같은 종교의 외적인 교훈에 집착하는 사람은 마치 호롱불을 기둥에 매달아 놓고 그 불빛이 비취는 범위 밖을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에
비유한 글을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비록 곡식과 가라지의 뿌리가 뒤엉켜 엉망이 된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자유를 누리고 천국 처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는 이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였다면 우리들의 삶이 어떠했을 지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둔 체코 부모님의 제일 큰 걱정이 18세만 되면 집 나가서 여자친구 또는 남자친구 하고 사는 것 입니다. 체코의 자녀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관계에서 조차 은혜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가정을 떠납니다.


혜가 없는 엄격한 가정에서 자라난 헤밍웨이가 쓴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스페인 아버지가 집을 나가 마드리드로 간
아들과 화해하기로 다짐을 합니다. 아버지는 뒤늦게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엘리베랄” 신문에 짧은 광고를 냈습니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빠.” 파코는 스페인에서 흔한 이름입니다. 아버지가 그곳에 나가자 파코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가 무려 800명이 나와서 저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아주 어렸을
때 인도로 갔다가 성장기를 보내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는 어떤 영국 작가가 “어린아이를 타문화속에 보내는 것은 아이를
살해하는 것과 같다.”고 술회한 것 처럼 우리 부모들이 알지 못하지만 우리 자녀들은 매일 타 문화 속에서 다가오는 숱한
어려움들과 힘들고 어려운 자기 싸움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자녀들에게 은혜가 넘치는 따뜻한 가정이 있는 한 그
안에서 행복과 천국을 맛보는 그 힘으로 자신들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과 불안과 긴장으로 어느 한곳 마음의 출구가 없는 이 외국생활에서 우리 모두의 영적인 가정, 교회를 통해 행복과
천국을 맛보며 살아야 됩니다. 우리들은 이 교회 안에서 곡식의 뿌리하나 상하지 않기 위해 가라지를 뽑아 버리지 못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체험하고 그 은혜를 서로 나누는 나눔의 삶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고 싶어하는 신앙의 열정과
순결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죄인됨, 부족함, 연약함을 마음깊이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는
천국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삶의 현장과 그리고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날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천국을 체험하며, 불안과 좌절과 고통과 외로움이 날마다 이어지는 어려운 외국 생활을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설교후 기도)

랑과 은혜가 끝이 없으신 주님,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오늘도 인내와 사랑으로 참고 기다리시는 주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진심으로 저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우리들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천국으로 변화하여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 부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움속에 살아가는 우리 자녀들이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며 불안으로 삶의 토대가 날마다 흔들리는 우리들의 삶을 하나님의 은혜의 체험 위에 든든히
세워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여름 성경학교에 초대합니다.

여름 성경학교를 개설합니다.

▶ 때 : 8월 30일 (목) 10:00 – 16:00

▶ 장소 :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당

▶ 대상 : 자녀 1, 2, 3반의 우리 자녀들

비록 하루만 열리는 성경학교이지만, 우리 자녀들의 영적, 지적, 신체적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성경학교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협조 부탁드립니다.

[펀글]굿모닝C코리아/ “기도하는 한국교회에 깊은 인상”

아래의 글은 체코형제개혁교단 총회장께서 한국기독공보에 기고한 내용을 퍼온글입니다.

* 글쓴이:파벨..

굿모닝C코리아/ “기도하는 한국교회에 깊은 인상”

1995년 11월 대한예수교장로회(이하 예장통합) 교회 지도자들이 체코형제개혁교단 총회에 참석했다. 그 방문은 양교회의 동역관계의 시작이었다. 중요한 몇 몇 사항을 의논하고 미래의 선교협력을 위해 협정서를 논의했다.

협정서는 양 교회의 소식을 정규적으로 교환을 하는 것, 서울과 프라하 신학생 목회자와 교수의 교류, 체코 공화국에 사는 한국인들을 위한 목회적 관심과 한국의 이산 가족에 대한 관심, 체코 종교개혁에 대한 서적 및 자료의 번역, 양 교회대표의 상호협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97년 3월 나와 내 아내가 양 교회간의 협정서 서명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우리들은 신학교, 개 교회와 교회기관 등을 방문했다. 나는 우리 교단의 청소년들을 위한 월간지 ‘형제(Bratrstvo)’에 한국 방문여행 소감을 피력한 적이 있다. 그때 기자가 한 질문은 “한국 교회 방문 중에 받은 소감을 소개해 주십시오”이다.

첫째로 많은 교회당을 가리키는 붉은 네온십자가와 장로교회 교회당은 교회의 선교의 결과를 뜻했다. 붉은 네온 십자가는 길을 보여주는 등대처럼 빛나고 한국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음을 나는 확인했다.

둘째로 교회의 기도의 삶은 한국교회의 성장의 비밀을 감추고 있다. 많은 개 교회에서 새벽기도 모임의 전통이 있다.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직장의 일과 시작 전에 자기 교회당에 모두 모여 기도하는 것이다.

그 많은 좌석에 두 차례 세 차례 모임이 있었다. 다시 말해 새벽기도모임의 첫번째가 이미 새벽 5시에 시작한다. 기도하는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이다.

셋째로 신학교의 높은 수준이다. 신학교 교수들의 대부분이 유럽과 미국 대학에서 학문적으로 준비를 했다. 우리들은 현대의 신학발전이 자기 고유의 신학적인 연구를 더 부유케 하는 것이지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넷째로 세속의 사회적인 신분에 상관없이 평신도들이 폭 넓게 교회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다섯째로 여성의 폭 넓은 활동이다. 여성들의 활동이 자신이 소속된 개 교회뿐 아니라 교단의 선교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여섯째로 교인의 희생(자신의 수입의 십일조를 헌금한다)이 국내외 교회의 경제적 자립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교회가 목회자와 직원의 생활비와 교회, 신학교, 병원, 사회봉사단체의 운영들을 지원하고 있다. 심지어 60개 나라 5백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우선과제와 기도제목이 한국의 통일이다. 교회는 남북 적대진영의 국경이 다시 열리고 이산가족과 교회가 다시 하나되는 그 순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무신론주의의 공산주의 체제하 우리교회의 경험을 미래의 선교로 활용하길 원하고 있다.

체코형제개혁교단 총회는 예장통합이 파송하여 몇 년 전부터 우리교단에서 활동하던 이종실 목사를 2년 전에 선교를 위한 우리교단 목회자로 결의를 했다. 프라하의 한국인들이 그의 지도 아래 우리 교단의 소속 교회인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와 하나되어 선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열려진 교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체코와 한국 개신교회의 매우 의미있고 가치있는 공동체가 등장했다. 동시통역으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체코어-한국어로 된 하나의 교회 소식지가 발간되고 있다.

거리, 언어, 문화의 차이 뿐 아니라 역사적 경험과 영적인 전통의 커다란 차이에 의해 매우 힘들고 어려운 우리의 상호협력선교가 이제 시작 단계이다. 체코형제개혁교단은 그 영적인 생활이 예장통합의 경험에 의해 여러 면에서 풍성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체코종교개혁의 의미있는 전통, 박해의 시대의 종교개혁의 노력들, 세속화된 사회에서의 신학적인 연구 등은 현대산업의 권력에 의해 급진적인 변화가 있는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을 위한 예장통합의 노력에 많은 창의력을 제공할 수 있다. 한국 장로교회의 불안한 모습은 많은 교단으로 나뉘어진 것이다. 나뉘어진 교회들이 하나의 기독교회로 회복되는 방법을 우리들은 함께 찾아야만 한다.

파벨 스메타나/ 체코형제개혁교단 총회장

Harmony(화음)

Harmony(화음)

누군가 음악은 세계 공용어라고 했다. 이 말을 실감 할 수 있는 참 좋은 만남이 있었다. 주님의 이름으로 찬양이라는 아름다움을 위해 꼬빌리시의 체코교인과 한국교인이 만났다. 모임이 있기 전의 우려(언어가 통하지 않으므로), 불신은 첫 만남에서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이었나를 확인 시켜 주었다. 체코교인 7명, 한국교인 5명, 어린이 이렇게 모여 찬송가 “주 앞에 성찬 받기 위하여” 를 한국어로 부르는 그 순간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라는 그 말뿐이었던 것 같은 그것을 화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4파트로 나누어 화음을 만드니 아! 이것은 천상의 소리였다. 물론 음악적인 기술(?) 이것은 글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들의 삶도 이렇게 화음을 이루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화목하라고 명령하셨다. 그것을 위해 화목제로 드려지셨는데…. 무엇이 걸림돌이 되어 우리는 화목하지 못하는 것 일까? 이념, 사상, 생각, 언어, 문화, 지위, 환경 등의 차이로 서로 반목하며 살아 가기 보다는 이렇게 체코교인과 한국교인이 만나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서로의 마음과 마음으로 화음을 이루었을 때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는 것처럼 자기를 낮추고 서로 사랑하며 산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각자의 파트에서 다른 파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음악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체코인, 한국인… 이런 편견 없이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희생을 닮아가며 서로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우선 나부터…

우리의 이 성가 반이 우리 모두의 화음을 위해 하나의 작은 불씨가 되기를 기도한다.
“작은 불꽃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어 곧 주위 사람들 그 불에 몸 녹이 듯이 주님의 사랑 이 같이 한번 경험하면 그의 사랑 모두에게 전하고 싶으리…”

소 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