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0년 9월 13일)
- 로마서 4장 1-8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믿음은 복입니다 - 롬4,1-8.docx
<로마서 4:1-8>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빕니다.
여러 사정으로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교우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돌봄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말씀 속에 담긴
바울의 세 가지 강조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모두가 예외 없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믿음에 의해 도리어 율법이 굳게 세워진다’ 하였습니다.
이제 4장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이것을 논증합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혈통적 조상으로 삼고 있는 아브라함,
그는 분명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떻게 얻은 것인가?
행위로써 얻은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얻은 것이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구약성경 창세기 15장 6절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임하였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아브람이 대답합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종이 모든 걸 물려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합니다: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이어 하나님은 아브람을 밖으로 이끌어내어 말씀하십니다:
저 하늘에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아라
저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처럼 네 자손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나오는 말씀이 본문에서 바울이 언급한 그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은 그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믿으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아만’인데,
‘신뢰하다’ 혹은 ‘의지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의 명사형이 ‘아멘’입니다.
따라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는
‘아브람이 주께 아멘하니’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아브람의 반응을 보시고,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여기 ‘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쩨다카’인데,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바른 행동’을 의미하며,
법률적으로는 ‘비난받을 만한 점이 없는 정의로운 행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아브람의 아멘의 반응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아브람이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어긋남이 없이 바르게 서 있다,
하나님이 그에게 기대하신 대로 바르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아멘’ 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이 나를 위해 하시는 일에 뛰어든다는 뜻입니다.
아브람이 뭔가를 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뭔가를 시작하셨습니다.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15:7)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18:18-19)
믿음은 내가 하려는 일에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내가 아멘 하며 뛰어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그 초청에 아멘 하며 뛰어들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로 세워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방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울려퍼진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의 말씀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그분이 우리 모든 죄인을 향해 두 팔을 벌리셨습니다.
예수 부활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십시오.
그분이 우리 모두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능히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에
아멘 하며 뛰어드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히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열심히 해서 무언가를 이루었다면,
그로 인해 얻는 대가는 ‘보수’로 여겨지지 ‘은혜’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구원의 문제는 다릅니다.
우리가 뭔가를 열심히 한다고 스스로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주시는 복을 믿음으로 받는 사람에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하나님 나라의 비유 중에 ‘포도원 품꾼 비유’가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다’ 합니다.
아침 6시에 나가 만난 사람들에게 하루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냅니다.
또 오전 9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후한 임금을 약속하고 또 포도원에 들여보냅니다.
낮 12시와 오후 3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합니다.
오후 5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기에 묻습니다.
“어째서 당신들은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습니까?”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으니 그러지요.”
“그래요? 그럼 당신들도 내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시오.”
오후 6시 하루 일과가 끝나고 일꾼들에게 품삯을 나눠줍니다.
오후 5시에 들어온 사람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으니,
먼저 온 사람들이 속으로 나는 더 받겠지 생각했다가,
주인이 그들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을 나눠주니,
주인을 원망하며 말합니다.
“나중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똑같이 대우한단 말입니까?”
그러자 주인이 말합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잘못한 게 있습니까?
당신들은 나와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지 않았나요?
당신들의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중 온 이 사람들에게 그와 같이 주는 게 내 뜻이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단 말이오?”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는 ‘은혜로’ 들어가는 나라라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누가 그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하려 하겠냐구요?
하나 있죠. 은혜를 아는 사람, 그 사람은 아마 더 열심히 일할 겁니다.
이 포도원 주인을 만나 유일하게 변화된 사람,
진정한 변화를 겪은 사람은 아마 그 사람일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완벽히 의로운 사람을 부르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경건하지 않기에’ 의롭다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경건하지 않음에도’ 의롭다 하신다는 뜻입니다.
왜요? 그처럼 경건하지 않은 우리들을 그분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로마서 5장 6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그리고 8절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리, 창녀, 부랑아들과 친구가 되신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을 만나 진정한 변화를 겪었던 것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믿음을 발휘했고,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아브라함도 처음부터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신뢰는 단번에 생겨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단번에 생겨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길을 떠난 아브람,
어디로 가야할지 알고 떠난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비로소 그는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그곳으로 이끄셨다는 것을.
하나님은 그 땅을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럼 이제 모든 일이 술술 풀려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닥칩니다.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이주합니다.
누군가 자기를 해칠까 두려워집니다.
아내를 누이라 속입니다.
그러니까 바로가 아내를 데려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십니다.
아내를 되찾습니다. 가축과 재물도 많이 얻습니다.
그 일로 아브람은 또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바로보다 크시다는 것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식솔과 소유가 많아지니 조카 롯과 더불어 살기 어려워집니다.
아브람은 조카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나님을 좀더 신뢰하게 된 아브람의 모습을 봅니다.
더 좋아 보이는 소돔 지역으로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또 말씀하십니다.
‘네 눈에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이후 그 땅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아브람은 자기 집 사람들을 데리고 쫓아가 조카 가족을 구해옵니다.
돌아온 아브람은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줍니다.
이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합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두려워하고 있었기에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을 것입니다.
‘하늘에 뭇별을 바라보아라. 네 자손이 그처럼 셀 수 없이 많으리라’
이 약속의 말씀이 그 순간 아브람의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들었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믿어졌습니다.
현재 자식이 1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무한대의 후손이라구요?
그 일이 이루어지리라 확신할 만한 눈에 보이는 증거는 없었지만,
그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이 신뢰할 만한 분임을 알았기에,
아브람은 그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걸어온 지난 시간들 속에서 어느덧 그는
전보다 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 삶에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왜 기근이 닥치고, 왜 아내를 뺏기는 일이 생기며,
왜 조카가 사로잡혀 가는 일이 벌어지나요?
왜 코로나 상황이 닥치고, 왜 생업의 길이 막히며,
왜 이런 위험하고 불편한 상황을 겪어야 하나요?
한 가지 답은 ‘신뢰’,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려고!
신뢰는 그냥 생겨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련의 도가니에서 오랫동안 단련되며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햇빛을 받고 비바람 맞으며 나무가 자라듯이,
언제 자라는지 외견상 뚜렷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걷는 우리 삶의 여정 속에서 신뢰는 커갑니다.
비록 겉으로는 무너져도 속은 채워집니다.
아들 하나 주시는 게 하나님께 뭐 그리 어려운 일이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대여섯씩 잘도 낳아 기르는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받은 아브람에겐 자식 하나 없었습니다.
자녀는 분명 복입니다.
시편에도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복이 있습니다.
‘믿음의 복’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이것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 주시는 온갖 좋은 것들을
감사함으로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뢰의 길은 인내를 요하는 길입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기까지 다시 아브람은 15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사이 아브람은 아내의 권유를 따라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습니다.
어쩌면 아브람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라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국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삭을 낳기까지 그 15년의 목적 또한 ‘신뢰’였을 것입니다.
비록 겉으로는 무너졌지만 그의 속은 채워졌습니다.
약속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가 순종하여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시간들을 지나며 그가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길 원하십니다.
자식의 신뢰를 받는 것보다 부모에게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높은 곳에서 아빠를 향해 가차없이 뛰어내리는 아이를 받아 안으며
아빠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인생은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여정입니다.
영성학자 브레넌 메닝의 말처럼,
신뢰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아브람은 바로 그 최고의 선물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여 약속하시는 하나님께
그의 진심어린 신뢰로 응답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 중에 최고의 복은 아멘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에 뛰어들어
그 예비된 은혜를 누리는 것, 그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그분의 포도원에 초청하십니다.
오후 다섯 시에 초청받은 사람처럼
감사함으로 그 은혜의 포도원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품으로 뛰어드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비로서 모든 것이 바로 서게 될 것입니다.
이 아멘의 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뭔가를 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그 선하신 일에 믿음으로 뛰어드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