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 예배 (2022년 5월 1일)
- 요한복음 14장 1-3절
- 설교자: Ondřej Kolář 목사
- 2022년 5월 연합예배 설교문 - 꼴라즈 목사.docx
요한복음14장 1-3절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Slovy, která jsme právě slyšeli, začíná Ježíšova dlouhá řeč na rozloučenou. Při rozloučení říkáme v češtině „na shledanou“ – a často ani neuvažujeme o tom, jestli se sdotyčným vůbec můžeme nebo chceme znovu shledat. Při každém loučení pociťujeme jakousi úzkost. Nejen smutek ztoho, že se nebudu s druhým nějaký čas vidět. Nikdy si nemohu být jistý, zda se právě neloučím napořád. Když Ježíš hovoří ke svým učedníkům, je taková obava na místě.
방금전 우리가 읽었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길게 말씀하셨던 작별인사입니다. 체코사람들은 헤어질 때 „나슬레다노우“ 즉, „다음에 또 만나요“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 인사말과는 상관없이 다시 만날 수 있는지 또는 다시 만나기를 원하는지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헤어질 때마다 약간의 불안을 느끼곤 합니다. 한동안 그 사람을 볼 수 없다는 슬픔 때문만이 아니라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작별인사말씀을 하셨을 때 이러한 두려움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Ježíš by při svém loučení mohl říci: na shledanou. Ujišťuje totiž své učedníky, že opět přijde. Ale to „na shledanou“ by bylo vtéto chvíli příliš málo. Tím podstatným, co nám chce sdělit, totiž není jen naděje ve shledání po nějaké době odloučení. Ještě důležitější je to, co se bude dít vonom mezičase, kdy Ježíše nebudeme mít na dosah.
예수님께서 헤어지시면서 제자들에게 „나슬레다노우“ „다음에 만나자꾸나“ 말씀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다시 오실 것을 확신시켜주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헤어지는 이 순간 „나슬레다노우“ „다음에 만나자꾸나“ 하는 인사말은 뭔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시는 근본적인 것은 단지 일정기간 헤어진 후에 다시 만날거라는 그런 희망이 아닙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가시고 다시 오시는 그 사이, 우리가 예수님께 가 닿을 수 없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Ježíšovu řeč můžeme vnímat jako jeho poslední vůli. V závěti obvykle stojí, jaký úkol leží na pozůstalých. Tedy hlavně: jak mají naložit smajetkem, který tu po zesnulém zůstal. V Ježíšově řeči je tomu jinak: ze všeho nejprve nenabádá knějakým úkolům, ale mluví o tom, co bude dělat on sám: jde svým učedníkům připravit místo u svého Otce. Bůh nechce být jen sám pro sebe. Má u sebe dost prostoru i pro ostatní, říká Ježíš – a buďte si jisti, že tam nějaké místo zůstává i pro vás. Ježíš nám ho jde připravit. Nejen na zemi, ale také na nebi se s námi chce Kristus o vše rozdělit a nenechat si nic jen pro sebe.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을 향한 그 분의 마지막 의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언장에는 통상 유족들에게 어떤 일이 있을지가 명시됩니다. 예를들어, 어떤 사람이 죽은 후에 그가 남긴 재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것이 명시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이와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당신이 무엇을 하실 것인가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을 위해 아버지가 계신 곳에 처소를 예비하시겠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 오직 당신 혼자 계시는 것을 원치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나님 주위에는 거할 처소가 많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제자들을 위해 거할 처소가 많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시기 위해 이 땅을 떠나십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모든 것을 우리와 나누시기를 원하시며, 아무 것도 오직 당신 혼자만을 위한 것으로 남겨놓으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Co to pro nás znamená? Bůh není nekonečný oceán, vněmž se po smrti rozplyneme jak nepatrná kapka. Věčný život není vyhasnutí, nirvána, kde lidské já přestává existovat. Spása nespočívá vtom, že už přestanu být a stanu se momentem čehosi většího. Naopak: u Boha se plně stanu sám sebou, naleznu své pravé já, které se mi zde na zemi tak často ztrácí. Nebo ještě jinak: najdu svůj pravý domov, svůj příbytek, své pevné místo.
이것이 우리를 위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죽은 후에 아주 미미한 한방울의 물방울이 보태져 사라져버리는 무한히 큰 바다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인간적 자아, 인간적 나의 존재가 사라져버리는 소멸이나 열반이 아닙니다. 구원은 내가 나이기를 그만두고, 나보다 더 큰 어떤 무엇이 되는 순간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나 자신이 됩니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이 세상에서 내가 그토록 자주 잃어버렸던 참된 내 자신을 찾게 됩니다. 또는 이를 좀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하나님 안에서 나의 참된 집, 나의 처소, 나의 견고한 거처를 찾게 됩니다.
Slyšeli jsme také, že těch příbytků je vBožím domě mnoho. Bůh je velkorysý. Nebe není pro hrstku vyvolených. Jiné biblické obrazy přirovnávají Boží království dokonce k velkolepému městu. Člověk se neubrání představám, jak mohou asi ty nebeské příbytky vypadat. Věřím, že to nebudou izolované cely, ani vily vsatelitních městečkách, všechny obehnané vysokými zdmi. U Boha bude každý sám sebou, ale zároveň v ničím nenarušeném společenství s druhými. Nebudeme splývat ani s Bohem, ani jeden s druhým. Budeme spolu, a přece každý ve své jedinečnosti.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관대하십니다. 천국은 선택된 소수만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성경의 다른 그림들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웅장한 도시에 비유하고 있기도 한데 우리는 장차 우리가 가게 될 하늘처소를 상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하늘처소가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고립된 셀들이나 빌라들이 아닐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각자는 그 자신이 되겠지만 동시에 타인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합해져버리지 않을 것이며 각자는 타인에게 합해져버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는 그 고유의 나로 있을 것입니다.
Ježíš svým učedníkům říká: ať se vaše srdce nechvěje úzkostí. Nemusíme se strachovat o to, co snámi teď bez Ježíše bude. Nemusíme se úzkostlivě starat o ani o vlastní spásu. Ježíš nám ji zajistí lépe, než bychom to dokázali sami. VJežíšově závěti nestojí: tyto podmínky musíte splnit, abyste se dostali do nebe. To nebe jde pro své blízké vybojovat Ježíš sám. Jediné, co máme udělat, je tomu všemu uvěřit. V Ježíši Kristu jsme i my vítáni v Božím domě.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에 대해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제자들이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어떤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제자들을 대신하여 주님께서 홀로 싸우시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 우리가 해야하는 유일한 일은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또한 하나님의 집으로 초대되어져 있습니다.
Když slyšíme toto Ježíšovo ujištění, musíme si připomenout, že církev se v tehdejším světě cítila jako cizinec. Odžidovského prostředí už se odpoutala, ale zároveň se nemohla přiblížit kžádnému z rozmanitých náboženství tehdejší doby. Byla na tehdejší duchovní scéně bezdomovcem. A právě tato církev nyní slyší od svého Pána: V domě mého Otce je mnoho příbytků. Ten pravý domov zde na zemi nikdy nenalezne, avšak nebeské občanství jí nikdo vzít nemůže.
오늘 본문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예수님 당시에 교회가 이방인과 같이 여겨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교회는 유대환경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동시에 다양한 종교에 전혀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그 당시 영적 상황 속에서 마치 노숙인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는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땅에서 우리가 주의 백성들을 위한 참된 처소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주의 백성들이 갖고 있는 하늘 시민권을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Možná někoho na tomto místě napadne: co ztoho zde na zemi mám, že mám kdesi vnebesích svou komůrku? To mám čekat na smrt jako na vysvobození? K čemu tedy vůbec ještě žít? Proč to hned neukončit a nebýt rovnou u Pána? Máme vůbec nějakou naději i pro tento náš život? Někdy slyšíme výtku, že my křesťané odsouváme spásu a štěstí na onen svět. Ježíš ovšem hovoří jinak: opět přijdu a vezmu vás k sobě, abyste i vy byli, kde jsem já. Ježíš nezůstane jen strážcem našich nebeských pokojů, ale objeví se opět u nás, v našich lepších či horších pozemských stanech.
우리 중의 어떤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 땅에 무엇인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천국에서도 어딘가에 작은 내 방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 나는 죽음을 기다려야 하나? 그렇다면 나는 왜 이 땅에서 더 살아야 할까? 왜 지금 당장 이 삶이 끝나 주님과 함께 있지 않는걸까? 이 세상의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우리 크리스천들이 우리의 구원과 행복을 내세로 옮겨놓는다는 비난을 듣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와는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다시 오셔서 제자들을 영접하시고 주님께서 계신 곳에 제자들도 있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단지 우리의 하늘 처소를 지키시는 분으로 머물러 계시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있는 이 땅으로, 우리에게로 다시 오십니다.
Loučím se svámi, ale opět přijdu, říká Ježíš. To není formální, bezmyšlenkovitý pozdrav. Je to zaslíbení, kterého se mají učedníci pevně držet. Ježíš přijde a vezme nás ksobě. Ale ne až na konci naší pozemské cesty. Ježíš si pro nás nepřijde tak, jako si pro nás chodí smrt. Máme ho čekat už zde, v našich životech, protože nás chce přivést k našemu společnému Otci. Nemusíme kvůli tomu čekat na vlastní smrt, nebo na konec světa. Kristus zavítá k nám, protože touží, abychom i my už nyní byli Bohu blízko.
예수님은 지금은 제자들과 헤어지시지만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형식적인, 생각없는 인사가 아닙니다. 이는 제자들이 견고히 붙들어야 할 주님의 약속입니다. 주님은 오셔서 우리를 당신께로 이끄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은 우리의 삶이 끝나기를 기다리셨다가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죽음이 우리에게 오고 그 때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지금 여기에서, 우리들의 삶들 속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지금 여기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를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 아버지와 함께 있기 위해 우리의 죽음을 또는 세상의 끝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환영하여 맞이해 주시는데,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가 바로 지금 하나님과 가깝게 있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Věčný život tedy nepřichází až po smrti. Je darem, který nám už teď přináší radost. Ve víře přichází Kristus do naší přítomnosti. Společenství sKristem je sice neviditelné, ale je reálné. Můžeme ho konkrétně zakoušet: například všude tam, kde Duch svatý přemáhá naše sobectví, nenávist, únavu a strach, kde boří bariéry mezi lidmi a vede je k sobě navzájem. Nebo kde se shromažďujeme okolo Kristova stolu. Různými způsoby je Kristus u nás přítomen a vede nás k Bohu.
영원한 생명은 죽음 후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이미 지금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선물입니다. 우리의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가 지금 있는 이 곳에 오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함은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실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이기심, 미움, 피로, 두려움 등을 이기게 하시고, 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허무시고 서로에게 다가가도록 하시는 그 모든 곳에서, 또는 우리가 주님의 식탁에 둘러 선 그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는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십니다.
A tak i když jsme tu jen jako poutníci a cizinci, má naše pobývání na zemi smysl a hodnotu. V našich dočasných obydlích, které jednou budeme muset opustit, se nemusíme cítit jako exulanti, kteří se celý život jen smutně ohlížejí po své vytoužené domovině. Pozemský dočasný pobyt se může stát místem putování k Bohu. Cesta je otevřena. Já jsem ta cesta, pravda i život, říká Ježíš. Po této cestě se máme vydat.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순례자들처럼 이방인들처럼 살아간다 할지라도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한 번 떠나야 할 이 땅에서의 임시적인 거처에 살면서 떠나온 고국을 슬프게 그리는 망명자처럼 살 필요는 없습니다. 이 땅에서의 임시적인 삶이 하나님을 향한 순례의 장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은 열려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길을 떠나야 합니다.
Jako Boží poutníci tedy nemáme světem pohrdat. Náš přechodný pobyt není jen slzavým údolím, kterým se máme protrpět kvěčné blaženosti. I přechodný domov je domovem. Smíme vněm zažít už mnohé z toho, co nás čeká až v samotném cíli. To není málo. Zároveň jsme ale od tohoto světa také svobodni. Je to jen průchodiště – důležité, nám Bohem darované, ale cíl to ještě není. Nemusíme se na něj křečovitě vázat a trávit svůj čas tím, že se z něj pokoušíme urvat co nejvíc. To definitivní šťastné shledání, po kterém už nikdy nepřijde žádné další loučení, nastane jinde. Jednou naše nájemní smlouva vyprší a my odtud odejdeme. Náš pozemský stan bude stržen. Ale nestrachujte se: příbytky u Boha jsou pro nás už připraveny.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순례자들로서 이 세상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임시적인 삶은 영원한 복을 위해 견뎌야 하는 눈물골짜기가 아닙니다. 임시적인 거처도 거처입니다. 우리는 이 임시적인 거처에서 장차 우리가 궁극적인 목적지에 이르러 경험하게 될 것들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이 세상은 단지 통로로서 중요하고 또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삶에 집착하며 메달리거나 또 이 세상의 삶에서 가능한한 멀리 벗어나려고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이상 이별이 없는 결정적이고 복된 만남은 다른 곳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의 임대계약서가 만료가 되고 우리는 떠날것입니다. 이땅에서의 우리의 처소가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아버지 집에 우리를 위한 거처들이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멘!
(번역: 김영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