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라

<누가복음 23:50-24:12>

23: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부활주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죽으시고 묻히셨던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은 그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죽음의 권세와 인간의 잔꾀가 그를 무덤에 가둬둘 수 없었습니다.

무덤은 비어 있었고, 천사들이 그의 부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이 부활의 능력 가운데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선포되었습니다(롬1:4).

이 부활의 증인들로 인해 그리스도의 복음은 큰 확신 속에 온 세계로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의 첫 증인은 여인들이었습니다. 네 복음서가 공히 밝히고 있는 바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중 그분을 따라다니며 사역을 도왔던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도 갈릴리로부터 따라와 그 일을 지켜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빌라도에게서 넘겨받아 바위에 판 새 무덤에 넣어둘 때에도 이 여인들은 그 뒤를 따라 무덤의 위치와 시체의 안치상태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 새벽,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으로 갔을 때, 이미 돌문이 굴려져 있는 것과 무덤 안에 시체가 없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근심하는 여인들에게 그 상황의 의미를 설명해 준 것은 천사들이었습니다.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문득 그들 곁에 서서 말합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너희가 찾는 그분이 여기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가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천사들은 여인들을 꾸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여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분의 무덤을 찾아온 것입니다.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서.

그리고 그렇게 찾아왔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먼저 소식을 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교회가 그렇게 욕을 먹고, 체코에서 교회가 이렇게 인기없는 상황에도, 꿋꿋이 신앙을 지키며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 같은 사람들입니다.

진짜 기독교는 뉴스에 나오는 그 이름난 교회들의 모습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문의 여인들이 그 무덤 속의 시체가 여느 행악자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새벽 거길 찾아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참된 신앙은 그저 인간적 의리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그분은 그저 추억 속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소식과 함께 그들이 해야할 일 한 가지를 더 말합니다. 바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6절 하반절입니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무엇을 기억하란 말인가? 7절입니다: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지금 일어난 상황, 즉 예수 부활은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일이 일어날 것을 이미 예수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셨음에도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몇 장만 앞으로 넘겨 봐도 이 사실은 쉽게 확인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눅9:22)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인자)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눅18:33)

하지만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고”(18:34),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9:45) 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바람과 계획에 배치되는 미래였고, 그들이 듣고 싶지 않은 말씀이었기에, 자신들의 “귀에 담아 두지”(9:44)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상황이 이쯤 되면 자동적으로 기억나야 할 게 아닌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이 이미 말씀하셨던 일을 내 주위에서 행하실 때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것이 내가 바라고 그려온 그림에 부합되는 일이라면 바로 알아보며 호응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이 전혀 엉뚱한 각도에서 예상치 못한 전개로 다가온다면?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혀 일하지 않고 계시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우크라이나를 위해 매일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거죠?” 저희 집 둘째 아이가 물었습니다. 이 얘기를 어떤 우크라이나 목사님에게 했더니 그분 대답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 전쟁은 러시아의 승리로 벌써 끝났을 겁니다.”

이 분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일로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방향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파악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십자가가 그 시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 부활 역시 그 시대 누구도 기억할 수 없었던 하나님 말씀의 성취였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던 그 때에도 하나님은 그렇게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의 닫힌 회로를 벗어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에 우리의 눈이 열리기 위해서는 말씀을 ‘기억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내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새롭게 포착되고 해석되며 새로운 틀 속에서 통합되는 일이 필요합니다.

천사들을 통해 그 부활의 첫 증인들에게 일어났던 일이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8)

마침내 기억해내고 그들은 달려갔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음을, 그분이 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이루어졌음을 증거하는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실제 현실과 무관한 환상 속의 한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단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한번의 아름다운 추억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말씀을 통해 이미 약속된 미래가 이 세상 역사 속으로 뚫고 들어와 현재를 새롭게 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이 세상 속에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실 수 있음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그 현실 속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새 일을 그분이 행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이 믿음으로 담대히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며, 또한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에 앞서 일하시고,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일깨워 새로 보게 하심으로, 그분의 일에 우리가 동참할 수 있도록 초청하십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분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날 것을 비로소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덧붙여 하시는 말씀이,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9:23-24)

언제부터인가 제가 지나치게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과로를 경계하고, 건강을 염려하고, 롱런을 생각하고…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내가 ‘살려고’ 하고 있네… 내 목숨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거고 주님 위해 내 목숨 내놓으면 구원하리라 했는데, 내가 반대로 하고 있네…

오늘 이 부활주일 아침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우리 주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승리가 선포되었습니다!

기뻐하며 우리 모두 승리하신 우리 주님의 길을 따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