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 예배 (2024년 3월 3일)
- 빌립보서 4장 10-13절
- 설교자: 온드제이 꼴라즈 목사
- 2024년 3월 연합예배 설교문 - 온드제이 꼴라즈.docx
Text: Filipským 4,10-13 Kolář – Kim
본문: 빌4,10-13
Velmi jsem se v Pánu zaradoval, že již zase rozkvetla vaše péče o mne. Vím, vždycky jste na to mysleli, jen jste neměli příležitost. Ne že bych si naříkal na nedostatek; naučil jsem se být spokojen s tím, co mám. Dovedu trpět nouzi, dovedu mít hojnost. Ve všem a do všeho jsem zasvěcen: být syt i hladov, mít nadbytek i nedostatek. Všecko mohu v Kristu, který mi dává sílu.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Milé sestry, milí bratři,
všecko mohu v Kristu, který mi dává sílu. Nedávno jsem s překvapením zjistil, že tento verš je v anglicky mluvícím prostředí oblíbeným motivačním heslem. Hojně se sdílí na sociálních sítích, sportovci jím oslavují svá vítězství, odkazuje se k němu, když se někomu podaří zvládnout náročný úkol. Má povzbudit k překonávání překážek a posouvání vlastních hranic. Zdá se, že výborně zapadá do současné společnosti zaměřené na výkon. Pro mnoho úspěšných křesťanů je Kristus jakýsi energetický nápoj probouzející v člověku téměř nadpřirozené schopnosti. S Kristem dosáhneš vše, na co pomyslíš, nic pro tebe není nemožné, stačí jen se snažit a věřit. Hlavně nenaříkej, nevymlouvej se a nepodceňuj se, to sám ďábel tě oslabuje a odvádí od vytyčeného cíle! Tak zní evangelium vítězů.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저는 최근에 이 말씀이 영어권 세계에서 성공을 향해 동기를 부여해 주는 인기 있는 슬로건이라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쏘셜 네트워크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으며, 이 말씀으로 운동선수들은 그들의 승리를 축하하고, 누군가가 어려운 일을 해 냈을 때 이 말씀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장애물을 극복하는데 또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격려하는 데 사용이 되는 것이지요.. 이 말씀은 오늘날 성과 중심 사회와 잘 어울리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가 성공을 거둔 많은 사람들에게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일종의 에너지 음료와 같은 것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마음먹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노력하고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불평이나 변명을 해서는 안 되고,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불평이나 변명을 통해 마귀가 당신을 연약하게 만들고, 이루어야 할 목표로부터 당신을 벗어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오늘날 승리를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Osud, který potkal tento verš, je ukázkovým příkladem vytrhávání biblických citátů zjejich původních souvislostí. Pavlovo slovo není určeno jen úspěšným a vítězně bojujícím, ale i těm ostatním. Je tu pro lidi, kterým se daří někdy více, někdy méně. Je tu pro chvíle, kdy život zvládáme a překážky úspěšně překonáváme, ale i pro chvíle, kdy jsme na pokraji sil a neumíme si se svým životem poradit. Pavel filipské křesťany ujišťuje o tom, že Kristus je nám nablízku za všech okolností, tedy i uprostřed našich proher, bolestí a starostí. Kristus není záruka, že se mi podaří dosáhnout všeho, co si usmyslím. Není zázračný doping umožňující doskočit co nejdál nebo udělat skvělou kariéru. Kristus je vnašich životech přítomen jako síla, díky níž dokážeme ustát různé životní situace, dobré i zlé.
그러나 이 말씀이 그렇게 적용된다면, 전후 문맥을 살피지 않고 한 구절만 딱 따서, 원하는 상황에 끼워 맞춘, 잘 못 인용된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바울의 이 말씀은, 성공하고 승리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성공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성공하지 못 한 사람들을 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잘 극복하고 우리의 삶을 잘 살고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힘의 한계에 직면하여 우리의 삶을 감당할 수 없을 때도 여전히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모든 상황 가운데 즉, 우리의 실패 가운데, 우리의 고통 가운데, 우리의 근심 가운데.. 모든 상황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신시킵니다. 그리스도는, 내가 마음 먹은 대로 나에게 모든 것을 성취시켜 주시는 그런 어떤 보장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내가 가장 멀리 도약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또는 대단한 경력을 쌓게 해 주시는 그런 기적적인 디딤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다양한 삶의 상황, 나의 삶의 상황이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그 모든 삶의 상황 속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심으로써, 우리의 삶에 임재하시고 함께 하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Situace apoštola Pavla zrovna příznivá nebyla. Svůj list psal ve vězení a vůbec nebylo jisté, jestli se odtud ve zdraví dostane. Přesto si ale nestěžuje, pokorně nese svůj úděl a ještě je schopen povzbuzovat své bratry a sestry ve víře. To je jistě obdivuhodné. Vneštěstí totiž snadno podlehneme pocitu, že na nás Bůh zapomněl, a proto nemá smysl mu důvěřovat, ani se kněmu modlit. Rozhodně neplatí, že co tě nezabije, to tě posílí. Různé životní rány mohou člověku přivodit trvalé následky, srazit na zem, nebo dokonce jeho víru udusit. Nouze a strádání nepřibližuje člověka automaticky k Bohu, jak si někteří asketicky ladění křesťané mysleli.
지금 사도 바울은 호의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이 빌립보서 서신을 감옥에서 쓰고 있는 것이며, 감옥으로부터 건강하게 석방될 수 있을지 어떤 확신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그 상황을 견디며, 오히려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셨다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힙니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신뢰하거나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다양한 삶의 고통은 우리에게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우리를 쓰러뜨리기도 하고,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금욕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기 상황이나 고난이 우리가 자동적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Ovšem nejen nouze a nebezpečí, ale také pravý opak, totiž dostatek a nadbytek mohou být pro víru velkou zkouškou a ohrožením. Bohatý a nasycený věřící snadno propadne dojmu, že už Boha kničemu nepotřebuje, protože si vystačí i bez něj. Anebo se jeho život začne točit už jen kolem jeho majetku, chce mít stále víc a víc, a místo Boha tak začne sloužit mamonu. Nejhorší je, že když takový člověk vopojení sebou samotným přestane myslet na své bližní, kteří takto úspěšní nejsou.
위기 상황, 위한한 상황 뿐만 아니라 반대로 풍요로움과 부유함이 신앙에 큰 시험이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부유하고 풍요로운 신자는 하나님 없이도 그다지 필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일에 더 이상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이제 점점 그의 소유물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는 끊임없이 점점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길 원하게 되고, 이제 하나님 대신 맘몬을 섬기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삶의 가장 큰 비극은 스스로의 성공에 취해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K tomu, aby nás různé životní situace neodvedly od Boha a nerozvrátily nám život, abychom dokázali střízlivě přijímat dobré i zlé, ktomu je ovšem nutné dozrát, nejde to hned a samo od sebe. Naučil jsem se být spokojen stím, co mám, říká Pavel. Také tento verš by se ovšem také dal snadno zneužít. Pavel tu totiž používá slovo „autarkés“, které bylo v té době v jistých intelektuálních kruzích v módě. Autarkie znamená doslova soběstačnost. To bylo heslo stoické filozofie. Označovala se tak schopnost co možná nejvíc se odpoutat od vnějších daností a okolností, nenechat se jimi nijak ovlivňovat, být na nich nezávislý. Soběstačný člověk k životu téměř nic nepotřebuje, a proto také není nešťastný, když se mu něčeho nedostává a nějaká jeho potřeba není uspokojena. Setrvává v naprostém klidu a spokojenosti, ať se děje kolem cokoli. Je otázkou, jestli se k takovéto autarkii nějakému filozofovi skutečně podařilo dopracovat. V poněkud obměněné podobě se s ideálem soběstačnosti setkáváme i dnes. Úspěšný život prý spočívá v tom, že se mi podaří se natolik finančně zajistit, že už nikoho nepotřebuji a na nikoho nejsem odkázán.
다양한 삶의 상황들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삶의 상황들이 좋든 나쁘든 그 모든 삶의 상황들이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우리는 물론 성숙해 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아침에 그리고 우리 스스로, 그러한 성숙을 이룰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여기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에서 ‚만족하는 법‘이라는 단어도 잘 못 사용되어 온 예가 많습니다. 바울은 ‚만족하는 법‘이라는 단어로, 그 당시 특정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단어인 „autarkés“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autarkés“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스스로 족함‘을 뜻하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스토아철학의 모토였습니다. 이는 외부의 주어진 상황과 환경으로부터 최대한 벗어나,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족함으로 들어간 사람은,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얻지 못해도 또는 필요가 충족되지 않아도 불행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만족하며 평온 가운데 머무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철학자가 그러한 경지에 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족함‘이라는 그러한 이상은, 다소 변형된 형태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고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을 만큼 독립적이면, 그러한 삶을 성공적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Apoštol Pavel rozhodně takto soběstačný být nechtěl. Sice dokázal žít i vnedostatku, ale přesto byl vděčný a radoval se, když ho jeho bratři a sestry zFilip hmotně podporovali. Křesťanským postojem není vypjatý individualismus, tedy přesvědčení, že každý člověk se musí postarat především sám o sebe a také nikomu nic nedlužit. Nejsme izolovanými ostrovy, ale žijeme ve společenství, k němuž patří také sdílení, pomoc a solidarita. Lidi okolo nemáme chápat jako otravnou konkurenci, kterou je nutné porazit, ale jako své bližní. Někdy potřebují moji bližní mě, někdy potřebuji jejich pomoc já. To není žádný nežádoucí stav, který je nutné překonat, ale Boží záměr s člověkem.
그러나 사도 바울이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했을 때 ‚스스로 족함‘ 이런 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는 가난에 처할 줄도 알았지만, 빌립보 교회 형제자매들이 물질적으로 그를 지원해 줬을 때, 그는 그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기뻐했습니다. 기독교인의 태도는 냉철한 개인주의 즉, 각자는 먼저 자기자신을 돌봐야 하며 누구에게도 빚지면 안된다는 그러한 확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립된 섬에서 격리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눔과 도움과 연대가 있는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쟁상대가 아니라, 우리의 이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할 때도 있고 때로는 내가 이웃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결코 잘 못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삶이 인간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Nejvíce ale svou nesoběstačnost pociťujeme vůči Bohu. Všichni jsme odkázáni na Boží dobrotu a milosrdenství, i když se třeba tváříme, že žádného Boha nepotřebujeme. Také apoštol Pavel dobře ví, že jeho spokojenost stím, co právě má, je mu darovaná. Všecko mohu v Kristu, který mi dává sílu! To neznamená, že Kristus mi pomůže splnit každé moje přání a pokaždé dojít až na vrchol. Pavel spíš vyznává, že ať už se mu vživotě podařilo dosáhnout čehokoli, nebyla to jeho zásluha, nebyl to výsledek jeho schopností a vynaloženého úsilí. Kristus sám mu dával sílu. A to nejen k úspěchům, ale ještě mnohem víc k unesení neúspěchů. V Kristu dokázal Pavel projít všelijakým vnějším protivenstvím a také vlastním selháním – nezapomeňme, že mnohem dříve, než začal být Pavel pronásledován, sám byl pronásledovatelem církve. Jedině díky Kristově milosti smíme zpracovat a překonat svá provinění a najít odvahu jít dál.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 의존의 감정을 느낍니다. 우리는 비록, 어떤 하나님도 필요하지 않는 척 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의존합니다. 사도 바울이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 했는데,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 늘 정상에 도달하도록 도와주실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오히려 그의 삶에서 그가 무엇을 성취했든, 그것은 그의 공로도 아니고 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도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물론 사도 바울에게 늘 힘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승승장구할 때만 힘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실패하고 넘어질 때 더욱더 그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 자신으로 인한 실패 뿐만 아니라 온갖 외적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박해를 받기 오래 전에 그가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음을 잊지 맙시다. 우리가 우리의 허물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Všecko mohu v Kristu, který mi dává sílu. To není motivační heslo silných a odvážných, ale naopak evangelium pro slabé, nejisté a selhávající. I skrze mou slabost se může projevit Boží síla, říká jinde Pavel. Současně je to však i povzbuzení – je možné se spolehnout na moc, která není ze mě. Vtéto perspektivě se smíme dívat na svůj život, stejně jako na život církve i našeho sboru. Nejsme jen to, co sami umíme a dokážeme. To bychom si nad sebou museli spíš zoufat. Jsme to, co znás chce učinit Bůh. Jsme Kristovi lidé a v jeho síle ho následujeme. Amen.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은 강하고 용기있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는 슬로건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오히려 연약하고 염려하고 실패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곳에서 그의 약함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가, 나로부터 말미암지 않는 능력을 의지할 때, 이 말씀은 ‚복음‘일 뿐만 아니라 또한 동시에 ‚격려‘입니다. 그리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이, ‚복음‘과 ‚격려‘라고 하는 관점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과 교회와 성도들의 삶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오직 그러한 나, 그 나가 내가 아닙니다. 아니 우리는,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오직 그 나에게, 절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자 하시는 그 우리, 그러한 우리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요, ‚내게 능력 주시는‘ ‚그 힘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