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 예배 (2022년 11월 6일)
- 미가서 4장 1-4절
- 설교자: Ondřej Kolář 목사
- 2022년 11월 연합예배 설교문 - 온드제이 꼴라즈.docx
본문: 미가서4:1-4
1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올 것임이라
3 그가 많은 민족 중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Sestry a bratři, když slyšíme proroctví jako je toto, možná nás napadne: jak Bůh řídí velké dějiny? Jak vstupuje do života národů a států? Když s úzkostí i s nadějí sledujeme válku na Ukrajině, rádi bychom se spolehli na to, že i tam Bůh vládne, že tuto těžce zkoušenou zemi neponechává napospas agresivnímu sousedovi. Rádi bychom věřili tomu, že Bůh může ovlivnit a změnit také smýšlení diktátorů. Vždyť Bůh není jen pánem nás křesťanů, kteří jsme mu svěřili své životy a dobrovolně se mu podřizujeme, ale je pánem celého světa, všech národů, včetně těch, které v Krista nevěří, anebo předstírají, že věří, ale ve skutečnosti se mu zcela vzdálili. Rádi bychom vyznali, že Bůh moudře spravuje celý svět. Ale současně to pro nás není vůbec jednoduché. Zlo má v tomto světě až moc velký prostor, zbytečně umírají nevinní lidé. S tím se neumíme vyrovnat.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본문과 같은 예언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체 역사를 어떻게 이끌고 계시는 것일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민족들과 국가들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시는 것일까요? 걱정과 희망 속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곳에서도 다스리고 계심을 믿고 싶고 옆나라 강대국의 손에 고통을 겪고 있는 나라를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음을 믿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독재자들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치시고 변화시키실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기꺼이 복종코자 하는 우리 크리스천들의 주인이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지 않거나 또는 믿는 척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든 민족, 온 세상의 주인이시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지혜롭게 다스리신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 믿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믿기에는 악이 이 세상에 가득 차 있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Bibličtí proroci zvěstovali Boží vládu nad světem. Ale musíme si uvědomit, že i tehdy to bylo vyznání navzdory, naděje navzdory bezútěšné situaci. Nic nenasvědčovalo tomu, že vše má v rukou dobrý a mocný Bůh. Dějiny se nejevily jako místo Boží vlády, ale vypadaly spíš jako aréna, v níž se spory řeší násilím a nakonec vítězí ti silnější a bezohlednější. Řada proroků působila v době babylonského zajetí, kdy se mnohým Izraelcům zdálo, že nad nimi nevládne Hospodin, ale cizí bohové. Vítězství cizích národů a vyplenění Jeruzaléma vnímali věřící nejen jako konečnou porážku Božího lidu, ale jako znamení, že spolu s izraelským lidem byl poražen i sám Hospodin. A realita, v níž žili, jim dávala za pravdu. Prorocká slova o Boží vládě jim proto musela znít jako bláznivá zvěst.
성경 속의 선지자들은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포는 그 때에도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고백이요 희망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통치의 장이었음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분쟁들이 폭력으로 해결되고 심지어 더 강함이 또는 더 무자비함이 승리하는 것을 보여주는 장이었습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바벨로 포로 시기에 활동했는데 그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이방 신들이 그들을 다스리는 것처럼 보일 때였습니다. 믿는 자들은 이방 나라들의 승리와 예루살렘의 함락을 하나님 백성의 최후의 패배로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패배하신 것으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현실은 그들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선지자들의 선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신없는 미친 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Dnešní prorocké slovo ukazuje až na samotný konec dějin. Stane se v posledních dnech, slyšeli jsme. Zde nejde jen o vysvobození z aktuální tísně. Prorok líčí dobu, kdy se Hospodin ujme své vlády definitivně. To je důležité rozlišení. Plyne z toho, že v době, ve kterém žijeme teď, Bůh ještě nevládne plně, ještě se jeho moc zcela neprosadila. Ještě vedle sebe nechává působit jiné mocnosti, včetně těch destruktivních, protibožských. A tak se stává, že po dílčím vítězství pravdy a lásky nad lží a nenávistí za nějaký čas přijde zase zvrat, zase se dostane ke slovu to démonické v nás.
오늘 본문의 예언의 말씀은 역사의 끝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일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들은 것입니다. 이는 단지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통치를 결정적으로 장악할 때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때와 관련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때는 하나님께서 아직 온전히 다스리는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아직 온전히 관철되는 때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곁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 또는 다른 힘들이 활동하도록 허용하고 계시는 때인 것입니다. 그 결과, 얼마간 거짓과 증오에 대한 진리와 사랑의 부분적인 승리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만 다시 반전이 일어날 것이고 우리 마음 속에는 다시 악마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Mnozí lidé si například mysleli, že strašlivé zkušenosti s vyhlazováním Židů za druhé světové války se natolik propálí do vědomí evropských národů, že se nic podobného už nebude opakovat. Přitom vidíme, že nenávist k lidem kvůli nějaké jejich odlišnosti z evropských dějin zdaleka nezmizela. Stejně tak se mnozí lidé, mezi nimi i významní myslitelé, domnívali, že po pádu komunistické totality si všechny národy budou nezadržitelně osvojovat hodnoty demokracie a svobody. Dokonce se mluvilo o konci dějin. Dějiny ale neskončily, pokračují dál a v některých zemích zdaleka ne směrem k demokracii, ale k novým podobám autoritářství a nesvobody. A mezitím přicházejí nové hrozby, o kterých naši předkové ani netušili.
예를들어, 많은 사람들이 유럽 국가들이 2차 세계 대전 중에 있었던 끔찍한 유대인 학살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유럽 역사로부터 약간 다른 점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봅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 그 중의 저명한 사상가들도 공산주의적 전체주의가 붕괴되면 모든 나라들이 지체없이 민주주의의 가치들과 자유를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역사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끝나지 않고 계속 되었으며 어떤 나라들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권위주의와 자유가 결여된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위협들에 직면해 있습니다.
Zdaleka tedy ještě nejsme u konce. Micheášova vize se ale týká dnů posledních. Co si z ní máme vzít pro ty dny dnešní? Jen útěchu, že jednou bude líp, ale my se toho nejspíš nedožijeme? Události posledního času považovali bibličtí proroci za dílo Boží. Nemůžeme je jednoduše vzít a udělat z nich program pro naše jednání. Nedokážeme nastolit Boží království vlastníma rukama a ani bychom se o to neměli pokoušet, v dějinách to vždy dopadlo špatně. Přesto jsou pro nás ale důležitou inspirací. Ukazují nám, co má u Boha budoucnost a co nemá. Tím nám udávají směr a orientaci, prověřují naše hodnoty.
이런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말일 즉, 끝날로부터 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미가의 환상은 끝날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가 미가의 환상으로부터 무엇을 취해야 합니까?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고 그 때까지 아마 우리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위로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까? 성경의 선지자들은 말세의 사건들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우리는 말세의 사건들을 쉽게 우리의 것들로 취하거나 그 말세의 사건들로부터 우리 행동을 위한 지침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없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시도해야 되는 것도 아니며 역사를 통해 볼 때 그러한 시도들은 항상 잘못된 시도들로 끝이 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감을 줍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다가 실패한 시도들은 장차 무엇이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할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이러한 시도들은 우리에게 방향과 목표를 부여해 주고 우리의 능력들이 어디까지인지를 점검해 줍니다.
Na první poslech zní Micheášova slova trochu sebestředně. Hora Sion má být pozvednuta nade všechny pahorky a všechny národy k ní budou putovat a naslouchat Hospodinovu slovu. Nepůjde ale o pouhou změnu vlády, tedy že poražený a zotročený národ se stane národem vládnoucím a všichni ostatní se mu podrobí. Už žádná nadvláda jedněch nad druhými, žádné otročení! Vždyť vlády se ujímá sám Hospodin, nikoli jeho vyvolený národ. Naopak je možné říci, že privilegium, kdysi náležející Izraeli, se nyní rozšíří na ostatní národy: i ty mají poznat Hospodina a jsou povolány do společenství s ním. Tato vize se zčásti naplnila v Ježíši Kristu: v něm jsou přece všichni pozváni k tomu, aby Hospodina poznali a uctívali, aby byl i jejich Bohem. Církev ovšem nemá čekat na to, až se tyto národy samy vydají na cestu na Sion. Naopak musí jít za nimi a zvěstovat jim evangelium.
얼핏 들으면 미가 선지자의 말은 자기중심적으로 들립니다. 시온 산이 모든 작은 산들 위로 들리고 모든 민족이 시온 산으로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정권교체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 패배하고 노예가 된 국가가 다스리는 국가가 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 국가에 복종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배 권력이 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노예가 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권력을 장악하시고 그의 선택된 백성이 권력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한 때 이스라엘에게 속해 있던 특권이 이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확대될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 다른 민족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부름을 받아야 합니다. 이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를 경배하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시도록 모든 사람들이 초대되었습니다. 교회는 물론 모든 민족들이 시온산을 향해 여행을 떠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 반대로 모든 민족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Zde zároveň slyšíme odpověď na otázku, jak Bůh vládne tomuto světu. Bůh jistě má také způsoby vlády, které jsou nám skryté. Neměli bychom ale zapomínat na ten zjevný způsob vlády. Bude nás učit svým cestám a my budeme chodit po jeho stezkách, říkají pronárody putující na Sion. To znamená, že tam, kde se lidé sami před Bohem dobrovolně sklánějí, kde se jím nechají vést a poučit, kde usilují chodit po Božích cestách – tam Bůh zjevně a jasně uplatňuje svou moc. Už teď a tady a ne až v posledních dnech.
여기에서 우리는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변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은닉되어 있는 여러 통치 방법들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드러난 하나님의 통치 방법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요 우리는 그의 길로 행할 것이라 시온으로 향하는 모든 민족들이 말합니다. 분명히 드러난 하나님의 통치 방법이란, 사람들 스스로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가르치시도록,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 걷고자 힘쓰는 그 곳, 바로 그 곳에서, 말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능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행사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Další Micheášovo proroctví pak ukazuje, jak se tato Boží moc konkrétně projeví. I překují své meče na radlice, svá kopí na vinařské nože. Pronárod nepozdvihne meč proti pronárodu, nebudou se již cvičit v boji. To je velkolepý obraz pokoje, nejen toho vnitřního, duchovního, ale skutečného, pronikajícího do celé země. Takový pokoj si sami obstarat neumíme, je to Boží dílo, pro nás vlastně těžko představitelné. A přece také tato vize má pohnout i naše přítomné myšlení a jednání. Blahoslavení, kdo působí pokoj, vyzývá nás přece Ježíš.
미가의 다음의 예언은 이 하나님의 능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보여줍니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로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이는 내적이고 영적일 뿐만 아니라 온 땅에 스며드는 실제적이고 장엄한 그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이런 평화를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이러한 평화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전이 우리의 현재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러한 길로 주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셨기 때문입니다.
Právě biblické chápání pokoje nám pomáhá rozlišovat, co pokoj je a co není. Všichni toužíme po tom, aby na Ukrajině zavládl mír. Ale při bližším pohledu zjistíme, že někteří lidé tím mírem vlastně myslí kapitulaci před okupanty a uznání jejich územních nároků. To ale není biblický pokoj. Nespravedlnost je s pravým pokojem neslučitelná. Tvořit pokoj neznamená sklonit hlavu před silnějším. V posledních dnech Bůh naopak všechny nepravosti odstraní a ztrestá mocné pronárody, jak jsme slyšeli. K pokoji konečně také patří konec strachu. Každý bude bydlet pod svou vinnou révou, pod svým fíkovníkem, a nikdo ho nevyděsí, říká Micheáš. I v tomto směru můžeme té Boží budoucnosti kráčet vstříc, vždyť Bůh nás vždy znovu ujišťuje: nebojte se. Už teď se nebojte, i když ten pravý pokoj přijde až na konci.
평화에 대한 성경적 이해는 우리에게 무엇이 평화이고 무엇이 평화가 아닌지 구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 모두는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염원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 중에 몇 몇 사람들은 평화를 침략자들에게 굴복하고 그들의 영토주장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인 평화가 아닙니다. 불의는 진정한 평화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것이 더 힘 센 누군가에게 굴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와 반대로 말일에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신다는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강대국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평화는 또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말합니다. 이렇게 두려움이 없는 하나님의 미래를 향해 우리도 또한 걸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두려워 말라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늘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여러분, 비록 참된 평화가 세상 끝날 있게 되겠지만 그러나 이제 두려워 마세요. 아멘!
(번역: 김영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