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1년 8월 8일)
- 예레미야 17장 5-11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 렘17,5-11.docx
<예레미야 17: 5-11>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본문에 두 종류의 사람이 대조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 좋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주 받을 사람과 축복 받을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 상반된 결과를 낳는 두 사람간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누구를 믿고 의지하느냐’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믿고 의지하는 자는 그 끝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믿고 의지하는 자는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본문 5절과 7절을 비교하며 다시 봅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5절에 ‘사람을 믿으며’에서 ‘믿다’로 옮긴 히브리 동사는 7절에서 ‘의지하다’로 옮긴 히브리 동사와 같습니다.
NIV 영어성경에서도 동일하게 ‘trust i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결국 누구를 신뢰하고 의지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은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는다” 합니다.
여기 ‘육신’이란 말도 ‘사람’을 뜻합니다. 썩어질 육체를 가진 사람, 그 힘이 영원할 수 없는 사람, 그 마음이 변덕스러운 사람 말입니다.
이사야 시대 아하스 왕은 하나님보다 앗수르 군대를 더 신뢰하고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었어야 할 그 때에 눈에 보이는 인간적인 힘을 더 믿었고,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그 일을 겪고도 예레미야 시대 유다 왕과 백성들은 바벨론의 위협을 다시 이집트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냐 네가 앗수르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함 같이 또한 애굽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라”
이처럼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이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는 것을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여”(신6:5) 그분을 사랑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그 사람이 누구를 믿고 의지하느냐에 따라 서는 자리가 달라집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서서 살아가는 자리는 척박한 땅이라 합니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는 생존 환경이 아주 어려운 가운데서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가는 생명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는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리라 하는데, 이는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삶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사람이 서서 살아가는 자리는 물이 넉넉한 강변이라 합니다.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께 살아갈 힘을 언제나 공급받는 안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 사람은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더위 속에서도 늘 잎이 청청합니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늘 얻기 때문입니다.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결실이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사람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올 좋은 일들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누구를 믿고 의지하는가, 그 사람의 마음이 실제로 어디를 향해 있는가는 눈에 보이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 하지만, 실제론 사람을 더 믿고 의지할 수도 있습니다.
몸은 교회에 있고, 신앙인으로 분류되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과 마음의 실상은 숨겨질 수 있고, 가장될 수 있어도, 그 믿음과 마음이 불러일으키는 결과는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 믿음의 길, 마음의 길이 곧 축복의 길이거나 저주의 길이 될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우리는 과연 내 마음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천길 물 속과 같은 사람의 마음을 제 삼자가 알기는 어렵고, 심지어 나 자신도 내 마음의 거짓됨과 부패함을 모를 수 있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다 아시는 분이 있다 합니다. 하나님이십니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살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행했는지 정확히 파악하시고, 그에 따라 보응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며 사는 사람에게 이것은 불편하고 달갑지 않은 얘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 사람,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복음입니다. 다할 나위 없는 위로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불의로 치부하는 사람, 못되게 사는 데도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어렵습니다.
역시 세상에서는 저 사람처럼 해야 하는가, 유혹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어리석은 길입니다. 재물을 잃더라도 마음을 지키는 삶이 지혜롭습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일터에서 하나님이 되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일터는 아무 생명도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이 되고 말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자고새는 다른 새의 둥지에서 알을 빼앗아다가 품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디 자기 것이 아닌 알을 품어 새끼를 키워봤자 나중에 그 새끼가 떠날 수밖에 없듯이, 본디 자기 것이 아닌 부를 남에게서 부당하게 빼앗아 올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축적한 사람은 그 부를 계속 누릴 수 없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이토록 중요하고, 믿음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좋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우리 마음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되고 부패한 지경에 이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한 수술도처럼 우리 마음의 실상을 드러내며 또 치료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며, 어리석음 가운데로 점점 기울어져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안다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다 안다 생각하는 사람이며, 실상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런 생각 해보신 적 있습니까?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인데, ‘서로 사랑하라’ 한 마디만 하면 되지, 왜 성경엔 이렇게 많은 말씀들이 있는 걸까?
사랑의 실천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노력해본 사람은 각각의 상황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사랑도 자기식으로 합니다. 하나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마음이 끊임없이 헛된 것에로 기울어지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끝없이 사랑의 손을 내미시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나를 향한 그분의 참된 사랑과 만나고, 우리 역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로 빚어져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를 의지하고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가장 좋은 것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는 사람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어려운 시절에도 잎이 마르지 않고 결실이 그치지 않는 삶을 살리라 하십니다.
그 사람 마음의 길이 종내는 축복의 길, 혹은 저주의 길로 이어질 것입니다.
늘 하나님 말씀 앞에 서서 참 마음으로 늘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그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우리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게 하시고, 그리하여 늘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뿌리박고 사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