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공보 (www.kidokgongbo.com)
* 호. 발행일:2469. 20040703
땅끝까지이르러/ (20) 배수의 진을 치고 <체코 편(2)>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나뉘어진 1993년에 필자는 체코 프라하에 입국했다.
당시 체코는 1989년 혁명이후 10년 만에 전체인구의 절반쯤 되던 기독교 인구가 30퍼센트로 줄어들었다. 그 중에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합해서 8~10퍼센트가 실제로 종교활동을 하는 인구에 불과하다. 그리고 나머지 인구 70퍼센트 이상이 ‘나는 무신론자’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곳 무신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동기가 나 자신의 계획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확인하려는 하나님과의 배수의 진을 친 씨름을 시작했다.
우선 생계의 문제로 하나님과 대면했다. 이 문제는 선교사 파송을 나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파송을 기다리기로 한 나의 결심과 무관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파송의 때를 기도와 함께 선교현장 연구를 하면서 기다렸다. 선교를 하겠다고 하면서 총회 파송을 받지않고 더구나 프라하 개혁신학부 박사과정에서 공부를 시작하니 주위의 도움은 물론이거니와 이해를 받기도 어려웠다. 몇몇 지인들의 도움으로 경제적 불안을 해소하기는 부족했다. 생계의 위기가 지속되면 해외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씨름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인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파송에 대해 점점 확신이 생기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족들의 적응의 문제로 하나님과 대면했다. 가족이 적응하지 못하면 해외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족의 현지 적응은 선교의 중요한 요인이라 생각하여 달리 타협의 길을 스스로 두지않았다. 16년간 중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아내가 체코선교를 위해 사직을 하였고 국민학교 5학년을 마친 아들은 체코국민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현재 아들은 프라하 체코국립대학의 정치학도가 되었고, 하나님은 아내에게 프라하 체코국립대학 철학부 한국학과에서 계속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구했던 응답은 구체적으로 해야 될 나의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는 것이었다. 성급하게 나의 계획을 추진하려고 하지않았다. 아예 머리 속에서 나의 계획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는 이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체코인이든 체코에 사는 한국인이든 그리고 그 누구이든 절대로 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람을 만나거나 사귀려고 하지 않았다. 언제나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로 생각하고 사귐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선교현장을 끊임없이 공부했다.
뒤 돌아 보면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씨름은 그 순간 모두가 하나님께서 직접 나의 손을 붙잡고 체코로 인도하는 과정들이었다.
이 종 실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