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까지이르러/ (29) 내가 좋아하는 체코 이름(姓) (11)
체코의 많은 이름들 가운데 “페인(Peyn)”이란 이름을 나는 좋아한다. 이 이름은 체코에서 그리 흔한 이름은 아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희귀성(稀貴姓)이다. 요즈음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 매니아를 아마 “폐인”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그 비슷한 발음의 이름이다. “페인”은 원래 18세기 무렵 영국에서 온 선교사의 이름을 체코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그는 귀국하지 않고 자신의 선교지에 묻혀, 그의 이름이 이제는 체코의 많은 이름(姓)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우리 꼬빌리시 교회가 보흐니쩨 정신병원 호스피체에서 상담자 한 사람을 파송 하였다. 남편은 의사이고 두 아기의 어머니이다. 그들은 프라하 2구역에 있는 비노흐라드 교회 신실한 교인이다. 그녀의 이름이 “렌까 페이노바” 이다. “렌까”는 이름이고 “페이노바”는 성(姓)이다. 다른 서구의 나라들 처럼 체코에서도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자의 성(姓)을 따른다. 그러나 체코에서는 남자의 성(姓)에 여성을 표시하는 “~오바”를 붙인다. 그녀가 결혼하여 따른 남편의 이름이 바로 영국 선교사의 후예들의 이름인 “페인”이다.
한 선교사가 선교지에 묻혀 자신의 이름의 가계(家系)를 이룬 것이 이 땅에 선교사로 살아가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나의 이름도 그처럼 체코 교회역사에 올라 갈 수 있을까?” “나도 그처럼 나의 후손들이 대대로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이 땅에 뿌리 내릴 수 있을까?” “아시아의 유색인종으로서 유럽의 백인사회에서, 이제 기독교의 역사가 갓 200년이 넘는 한국의 기독교인으로서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기독교 문명의 사회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는 것이 체코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추어질까?” “영국인 선교사를 바라보는 체코인들의 시각이 한국인 선교사에게도 같을까?”
주후 80년대부터 체코에 정착한 유대인 디아스포라, 800년대에 그리스 정교회 선교사들의 선교, 중세시대에 로마 카톨릭의 국교, 로마 카톨릭의 십자군과 후스 개혁파들의 전쟁, 후스 개혁파들의 강온파 노선들의 전쟁, 기독교를 전면적으로 부인한 공산정권의 통치, 양차 세계전쟁을 통해 자본주의의 기독교 문명에 대해 절망하는 체코교회, 사회주의체제 아래서 기독교 문명 재건을 시도한 체코교회, 지금도 재정적으로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체코교회 – 기독교에 대해 온갖 풍상을 겪고 반기독교의 무신론적인 사회로 뒤돌아 앉은 체코사회이다. 이처럼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는 사회이니 아시아 출신의 기독교 선교사는 이 사회에 가장 싫어하는 요소들만 갖춘 셈이다.
그러나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천신만고 끝에 이제 간신히 반기독교의 무신론 사회의 껍질을 뚫을 수 있는 방도를 찾고 준비자세를 갖추게 되었다. 이제 함께 그 두꺼운 껍질을 뚫고 복음을 심어야 할 일꾼이 필요하다. 체코한국기독협회에서 계획하는 신학연구소(선교센터)에서 그리고 한국문화 소개를 매개로 지역교회들에게 “오픈 하우스” 프로그램을 정착시켜 나갈 수 있는 일꾼이 필요하다. 이 지면을 빌어 공개적으로 구애(求愛)를 하고싶다. 체코선교를 위한 한국의 “페인”을 간절히 찾고 있다.
해외생활의 긴장이 장기화될 때 알게 모르게 변화해 가는 나 자신의 모습을 문득 문득 발견할 때 마다 나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전 9:27) 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뒤따르려고 노력한다. 선교사가 대과 없이 선교사의 인생을 마치려면 모름지기 사도 바울의 이 가르침을 뼈에 새기고 핏 속에 흐르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하게 된다.
그동안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으로 흐르지 않으면서 객관적으로 선교일반과 체코선교를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 건조하고 지루한 글이 되었다. 귀한 지면에 동참하여 부족하지만 체코선교의 삶을 한국교회와 나눌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한 기독공보와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 준 독자들에게 감사 드리며 아울러 체코교회와 선교를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