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성장

  • 한인 예배 (2003년 02월 23일)
  • 눅 8:4-15
  • 설교자: 다빗 유레흐

030223
다빗 유레흐(통역: 남유정)
본문: 누가복음 8:4-15
제목: 좌절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성장

<본문>
제 8 장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9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10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설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기 위해 밭으로 나갔습니다.
밭은 씨 뿌리기 위해 특별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수확 후에  그냥  놀려두거나  아니면 그저 갈아 놓기만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11월이나 12월에 씨 뿌리기가 행해졌는데, 씨를 뿌리고 난 다음에도 계속 밭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또,  씨 뿌리는 사람 바로 뒤로 밭을 가는 사람이 따라가 뿌린 씨를 새들이 쪼아먹지 못하도록 곧바로 덮어주었습니다.
떨어진 씨는 어떤 밭으로 떨어지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운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매번 씨 뿌릴 때마다 여러 가지 운명으로 씨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는 4가지 종류의 밭으로 떨어지는 씨앗의 비유가 나오는데, 뿌려진 씨가 또한 4종류의 밭으로 1/4씩 똑같이 떨어진다고 말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씨를 뿌리고 나서  우리는 그 결과를 금방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씨가 다 뿌리를 내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밭에 뿌려진 씨는 이미 보이지않게 자라나고 있으며, 다 자란 후에는 풍성한 열매를 기다립니다.
 
첫번째 씨들은 길가 또는 길 위로 떨어졌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밭에 그 밭을 가로지르는 작은 길들이 나 있었는데, 씨를 뿌릴 때 씨들이 쉽게 그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씨 뿌리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밭들이 바로 옆에 서로 붙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피할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밭 옆에 길이 있는 한  이러한 상황은 항상 반복될 것입니다.
길 위에 떨어진 씨는  발에 밟히거나 새에게 쪼아 먹히는 운명이었습니다.
길 위에 떨어진 씨들은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죽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씨들도 더 나은 운명은 아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 있는 밭에는 바위가 매우 많고, 그 위로 곳곳에 얇은 흙이 덮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얇고, 또 낮 동안 뜨겁게 가열된 흙 속에서 씨앗은 밤이슬과 함께 빨리 자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씨는 땅속으로 깊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그 얇은 땅에  겨우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없었지만  씨는 높게 위로라도 자라났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빠른 성장은 강렬한 태양 빛에 금방 멈춰 버리고 말았습니다.
강렬한 팔레스타인의 태양 빛이 그 싹을 태워버렸습니다. 얇은 흙 속에는 싹에게 필요한 충분한 수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씨가 시든 원인은 싹이 강렬한 태양빛에 견딜 만한 충분한 수분을 빨아들일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한 밭에 있었습니다.

세 번째  씨들은 가시덤불이 있는 밭으로 떨어졌습니다.
가시덤불은 떨어진 밀의 씨와 함께 크게 자라났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밭에는 그야말로 어디에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었고, 그것을 없앤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가시덤불의 기운은 밀보다 더 강했기 때문에 밀이 자라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세 번째 씨들은 가시덤불 보다 더 느리게 자라났고, 결국엔 가시덤불에 의해 죽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 씨들은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아마 이러한 씨는 분명 길 가나, 바위 , 또는 가시덤불 밭에 떨어진 씨보다 더 많았을 것입니다.
더 많지않았다 할지라도, 결과는 아주 좋았습니다.
좋은 땅에서 씨는 풍성한 결실을 맺습니다. 

좋은 밭에서의 백배의 결실은 불모의 땅에 떨어졌던 처음 세가지 씨들의 손실을 다 보상해줍니다.
그것은 나쁜 땅의 메마름에 대한 좋은 땅의 풍성함의 승리입니다.
씨가 자라나 열매를 맺은 그 곳에 또한 씨와 땅의 사명도 충만케 이루어졌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백배의 결실도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성공에 대해서는 짧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실패에 대한 긴 묘사에 비해 성공에 대한  것은 눈에 띌 정도로 짧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은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실패가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어떠한 포기도 느낄 수 없습니다.
성공의 결실은 모든 손실을 극복해 줍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영접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뿌리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람들 편에서 보면 예수님에 대한 배척과 이해의 부족은 첫 눈에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에 대한 소식이 널리 전파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 속에 나타난 씨 뿌리는 사람과 같은 비슷한 실패를 직접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셨고, 그로부터 예수님은 현실에 대한 분명한 감각을 갖게 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많은 일시적인 실패는 최종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비유말씀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비유에 대한 의미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며 그의 말씀을 영접하는 자들은 비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깨달은 자는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열쇠를 얻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든 것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말씀에 대한 이해는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비유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비유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의미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옳지않게 받아들여진 말씀은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신실한 사람들 안에서 옳게 받아들여진 말씀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인한 손실까지도 보상해주는 풍성한 열매가 있게 합니다.
4종류의 밭이 있다는 것은, 마땅한 결실을 맺지 못하는 밭 옆에 그 손실까지 넘치게 보상해주는 좋은 밭이 늘 함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이 비유는 씨 뿌리는 사람의 일의 방식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유의 제목을 `네 가지 밭에 관한 비유`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씨의 성장은 무엇보다 밭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말씀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을 올바른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우리의 마음 문을 열어야 하며 그 말씀 위에 우리의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직접 말씀을 전파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자신의 의지에 반대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말씀 성장을 막는 다양한 장애물들을 둘 때, 말씀이 역사하는 것을 막는 것은 언제나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첫 번째 씨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으나,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중에 사탄이 와서  그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거나, 혹은 말씀을 깨달을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곧바로 이해하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룰 시간이 없습니다.

두 번째 씨들은 하나님 말씀을 기쁘게 , 또 기꺼이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자세는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시련과 시험이 닥쳐올  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충분한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고난과 아픔은 유혹으로 변하고, 그들은 그 유혹에 종속되게 됩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 그러한가 하는 충분한 근거와 깊은 묵상 없이 겉으로만  받아들였습니다.
빠르게 말씀을 받아들인 것처럼 빠르게 말씀을 또한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인내함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씨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로서, 그들의 믿음은 시련의 때에도 매우 강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러나 자신들이 하나님 말씀 외에 다른 것들에 대해, 또는 말씀을 거스르는 것들에 대해 큰 열정을 쏟고 있다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 걱정과 재물, 인생의 향락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걱정, 재물, 인생의 향락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주의와 관심을 빼앗아 가며,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가로막히게 합니다.
이렇게, 성공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사람은 그렇게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파괴됩니다.
사람  속에 있는 내면의 갈등은 하나님의 말씀을 잃게 합니다. 

네 번째 씨들은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받아들여지고 올바른 결실을 맺게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의 인내가 아름다운 결실로 인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사렛 예수를 통해 이 세상에 실현됩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요, 그의 씨는 예수님께서 전파하시는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의 씨,  은혜의 말씀의 씨를 뿌리십니다.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를 통해서 직접 말씀하시고 행하십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 선포는 씨 뿌리는 자의 일, 즉 그리스도의 일이 계속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뿌려진 씨 중에 많은 것들이 쓸모 없이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희망이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씨들이 몇 갑절의 결실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결실은 바로 우리를 하나님 말씀의 선교 사명으로 부르고 있으며, 또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복음은 이 세상에서 100%의 성공을 거두고 있지 못합니다.
항상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좋은 결실을 맺을 사람들 또한 항상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지속은 결실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전파의 사명으로부터 물러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또한 말씀의 전파를 올바르게 영접하는 몇 명의 사람들에게도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4부류의 사람들 중에 어떤 부류에 속해 있습니까?
우리는 믿는 사람들 입니까?
말씀이 우리 안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좋은 결실을 맺고 있습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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