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나눔터 발간 세 돌의 만감

나눔터 발간 세 돌의 만감(萬感)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봉사 3년” 이렇게 석삼년을 참는 것이 옛날 우리네 며느리들의 미덕이었다. 옛 며느리들의 미덕은 요즈음엔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이며 비인간적이고 남성우위의 유산이라고 비난을 받는다. 이제는 누구도 이것을 미덕(美德)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요즈음 며느리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다. 아니, 이런 말을 꺼내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핀잔을 받을 것이다. 당장 “안 살고 말지!” 라는 대답이 불을 보듯 뻔하게 나올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옛날 우리네 며느리들의 미덕을 예찬하며 그 덕을 계승 발전시켜 우리들의 전통으로 이어가자고 주장하고 싶다. 물론 요즈음 며느리들도 석 삼년 죽어 지내며 시집살이 해야 된다는 뜻이 아니다. 석 삼년 속에 담겨있는 인내의 의미와 그 지혜를 오늘에 되살려내자는 뜻이다. 출가하면 외인이 되는 시대에 연약하고 어린 여인이 전혀 다른 문화권의 집안에서 그 식구로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성이 아닌 필자는 타 문화의 해외생활의 경험을 반추하면 그 어려움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여린 고사리 같은 우리들의 옛 며느리들이 자신의 새로운 사회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했던 피 말리는 노력과 그 지혜가 언어도 문화도 토양도 전혀 다른 이 외국에서 뿌리 내리려는 우리들의 삶에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억지일까?

돈을 버는 일과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일은 다른 것이다. 필자는 어려서 광부인 아버지를 따라 광산촌의 광부 사택에서 자랐다. 하늘도, 땅도, 물도 검은 색깔의 세상에 정을 갖고 삶의 뿌리를 내리려는 이웃을 보지 못했다. 막장의 검은 흙 때문에 검은 대륙의 판자촌 사택에서 살아갈 뿐이다. 그들의 꿈은 한밑천 잡아 검은 대륙을 탈출하는 것이다. 검은 대륙은 이미 그들에게 사회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들이 버린 그 땅으로부터 결국 사람들은 버림을 받게 된다.

돈 버는 일이 모두가 아니다. 사회에서 뿌리 없는 삶은 공허하고 갈수록 갈증이 난다. 이리 저리 밀려다니는 부평초 인생이 되고 만다.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힘겨운 일들에 대해 주관과 가치관이 아니라 임기응변으로 대처한다. 그리고 그것을 앞 다투어 무 무용담처럼 허장성세 자랑으로 늘어놓는다. 돈과 권력과 이익의 냄새에 따라 이리 저리 몰려다니는 새 떼처럼 살아간다. 혼자 있으면 불안하다. 다투면서도 함께 있어야 한다. 불안은 불신의 근원이 된다. 불안한 미래가 갑자기 어느날 현실로 닥쳐오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 뿌리 없는 삶에게 이미 예정된 불안이다. 불안의 그림자가 결국 모든 것을 뒤 덮는다.

나눔터는 체코의 한인사회가 체코사회에 뿌리내리기를 소망하는 조그마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형편없이 미약하다. 이제 만 세 돌이다. 말없이 봉사하는 이들과 독자의 관심이 없었다면 벌써 포기했을 일이다. 감사를 드리며 석 삼년의 옛 며느리들의 미덕의 의미와 지혜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노력할 것을 나눔터 발간 만 세 돌을 맞아 다시 다짐해 본다.

목사 이 종 실(나눔터 발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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