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라

  • 연합 예배 (2002년 03월 31일)
  • 눅 24:1-12
  • 설교자: 이종실

2002년 3월 31일 부활절
누가복음  24:1-12

우리는 기억의 피조물입니다.
현재에 우리는 과거의 일로 기억을 만듭니다.
이삭 디네슨이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에서의 그녀의 삶에 대해 썻습니??그녀는 농장이 불타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자 덴마크로 돌아와 아프리카의 삶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회고록을 썻습니??
그녀의 회고록 <아웃 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에서 그녀는 과거에 대해 쓴 것만이 아니라 미래를 숙고하였습니다.
그녀의 회고록에서 인용한 말입니다:
“내가 아프리카의 노래를 안다면 아프리카는 나의 노래를 알게될까?”

우리는 기억의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이삭 디네슨은 기억은 미래와 함께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묻습니다. 아프리카가 나의 노래를 알까?
기억은 단지 과거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래입니다.
오늘은 기억하는 날입니다. 현재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은 오랜 옛날 내용의 기억의 날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온전한 구조는 기억 위에 세워집니다.
모든 경우에 기억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미래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한 우리 주의 어머니 마리아의 예언을 들어보십시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눅1:54-55)
예수의 삼촌 사가랴의 예언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눅 1:72)

우리가 기억하는 그것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열쇠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기억의 내용이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끄러움만을 기억하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단지 실패만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이 우리가 저질른 헛된것들 뿐이라면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기억할 만한 중요한 것이 있지않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기억들도 우리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 선언에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우리가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중요하게 기억할 수 있는 선물을 주신것임을 배웠습니다.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현존과 하나님의 약속의 계시 안에서 다가옵니다.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가난한자와 연대 안에 있는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약속의 메시지입니다.
예수는 사람들과 세상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이 누구인지 기억하도록 초청하기 위해 왔습니다.


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어떤사람들은 그의 메시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어떤사람들은 그것을 잊어버렸고 어떤사람들은 불쾌하였고 심지어 어떤사람은 그의 설교에 위협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긴장 안에 오래 전에 선과 악 평화와 혼돈 거룩함과 죄 사이의 투쟁은 명백하였습니다.
복음에 대한 예수의 말씀은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에게 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성공의 길이 아님을 추종자들에게 경고하였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훈련의 용기와 충성의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은 정의를 요구하시고 사랑을 명령하십니다.
네 차례에 걸쳐 그는 권력자의 손에 넘겨질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가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체포되었고 재판을 받아 잘못되게 비난받고 판결을 받고 고문을 당하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슬프고 비참한 최후 뒤에 제자들은 심지어 세상이 알고있던 가장 큰 의문에 직면한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빈무덤이었습니다.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5절)  찬란한 옷을 입은 사람이 물었습니다.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6절)
그리고 명령을 합니다. 기억하라(6절)
갈릴리에 계실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6-7절)
예수의 추종자들은 기억을 떠올립니다.
다시 한번 미래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그들 앞에 열렸습니다.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갑자기 완전한 상실로서 제자들에게 나타난덨 것이 위대한 반전으로 바뀐 것이다.
예수의 설교와 가르침 그의 사랑의 사역은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예수의 설교와 가르침과 사역은 일관되었습니다.
부활은 예수의 삶이 하나님에게 충성하였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충성은 인간들의 비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러한 기억 안에서 우리는 구원에 초대받았습니다.

존경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기억 안에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떻게 해야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의 날에 우리들은 예수의 고난에 우리가 동참하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요한 계시록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14:13)
우리는 인간일 뿐입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들에 관해서 가장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우리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정당화 하려는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노력을 버리고 서로가 돌보도록 변화되기를 요청하십니다.
죽은 자에게서 예수를 일으키신 하나님이 우리들 역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에 대한 노래를 안다면
그의 생명의 희생에 대한 노래를 안다면
소외된자 죄인들과 먹으신 것을 안다면
죽음을 받아들인 것을 안다면
죽음으로부터 그의 부활을 안다면
예수는 우리들에 대한 노래를 아실까?
하나님이 창조한 우리의 연약한 육신이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을 위해 갖고 계신 끝없는 사랑의 그 무엇을 알까?
상실과 부정의와 질병에 고통받은 자들을 기억하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고통의 눈물을 평화의 웃음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위로를 우리는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기억해야하고 미래를 기억해야하고 우리들의 미래를 기억해야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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