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04)

2013년 1월 4일 오늘의 말씀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이사야 6장 5절 표준새번역)

여러분은 언제나 친절하게 유익한 말을 하고
묻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적절한 대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4장 6절, 공동번역)
묵상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은 <말 – 언어>라는 구조를 통해 전달되는 것입니다.
다시말씀드려 말(언어)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언어) 속에 계시고 그 <말>로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외모가 닮았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말(언어)>입니다.
짐승과 달리 인간의 말은 소통의 수단뿐 아니라
인간의 말은 하나님의 말 처럼 
인간의 마음과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통로가 되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말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날때부터 앉은뱅이를 치유할때
말로써 하였습니다.
인간은 말로써 심지어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함을 얻지 못한다.>
이토록 인간의 말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은 인간의 말은 권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는 말은 마치 작은 것으로 모든 것을 태우는 불처럼 능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와같은 인간의 말은 마음 창고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6장에서
선한 사람은 선한 마음의 창고에서 선한 것을 내어놓고
악한 사람은 악한 창고에서 악한것을 내어놓는다고 하였습니다.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구강을 통해 나오는 것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보면 내 마음이 보이고 자신의 미래가 보입니다.
오늘 이사야는 자신의 말을 통해서 자신에게 닥쳐올 재앙을 느꼈습니다.
인간사회의 언어습관을 보면서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고있습니다.
해외 체류자 생활은 언어와 타문화를 극복하지 않는 한 
더 넓은 세계로 나온것이 아니라 
한국보다 더 좁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무조건적인 Understanding 이해하기 입니다.
내 마음의 부정적인 요소 
즉 열등의식, 자기학대, 교만, 자랑 과 같은 마음 보다
먼저 이해하려는 입장에 서보는 것입니다.
먼저 Under 타인의 아래에 Standing 서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합니다.
이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지 야고보서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다시한번 우리 꼬빌리시 교회가 
첫예배때부터 실천하고 있는 세가지 실천사항을 기억하시면
그 중의 하나가 <덕스러운 언어생활>인것을 아실것입니다.
덕스러운 언어생활은 나 자신을 비롯해서 우리 모두를 복되게 하는 
축복의 길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미 우리의 말은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 있습니다. 
언제나 친절하고 유익한 말로 모든 삶에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복된 우리 꼬빌리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거룩하신 주님,
우리의 마음을 기경시켜주셔서    
우리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고
입술이 깨끗하지 않는 불신자들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송구영신예배때 교우들이 봉헌한 감사로 인해 큰 은혜 받게하시니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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