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16)

2013년 10월 16일 오늘의 말씀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이사야 38장 17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도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8장 10-11절)
묵상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성경은 우리 인간을 “죄인”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인간타락이야기는
인간이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원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죄인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한걸음 더 나아가 말씀하십니다.
“나는 죄인을 부르러왔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심판하시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부터 해방과 자유함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신다는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으로
비유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미가 7장)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구원에 관한 종교이지 선행을 요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용서의 은혜의 상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입니다.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을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일곱번이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 질문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일곱번을 일흔번까지 할지니라.”
우리 인간은 죄를 용서하는 일에 인내할 수 없어도 
우리 주님은 끝까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 죄의 정도도 구별하지 않으십니다.
그 어떤 죄인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용납하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 매달린 “행악자(강도)”도 용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용서의 은혜는
스스로 죄인임을 알지 못하는 의인들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히스기야 처럼 질병에 걸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리고 간음한 여인처럼 은밀한 죄가 발각되어 만천하에 드러나
수치를 당할때, 우리 인간은 스스로 죄인임을 알게됩니다.
스스로 죄인임을 아는 것은 구원의 문을 여는 참된 평안이며 축복입니다.
그러나 건강하고 성경 지식이 가득하고 그 지식대로 지켜 사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을 향하여 죄인이라고 
말하는 스스로 경건한 의인들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진노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자비의 용서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실된 그 깨달음과 고백이 축복의 하늘 문을 엽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주님, 회개의 영을 부어주셔서 내가 죄인됨을 알게하옵소서.
2. 성도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세상에 드러내는 교회의 모습으로 복음을 증언을 노력하는 우리 꼬빌리시 교회의 선교를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생각과 사상이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에 관심을 잃지 않게 하시니 감사
악인들의 형통함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에 더욱 갈망하게 하시니 감사   
Subscribe
Notify of
guest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