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말씀에 의지해서

  • 연합 예배 (2004년 02월 01일)
  • 눅 5:1-11
  • 설교자: 이종실

<본문>

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본문>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계셨습니다.

그가 무엇을 보고 있었습니까?

언뜻보기에 예수님은 무리를 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존경하는 많은 무리들을 위해 거기서 서계신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무리를 바로 앞에 두고 예수님이 열심히 바라본 사람들은 후에 제자로 사명을 받은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군중들을 무시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배에 타고 해변에서 조금 떨어져 거리를 두고 무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베드로와 그의 사람들을 위한 예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무리들은 이 목적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베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그의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시기 위해 게네사렛 해변에서 계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바라보던 게네사렛 해변의 광경을 오늘 본문은 소상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그물을 씻고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에 따르면 “그들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5:5)여기서 우리는 무익한 노동의 시간을 보낸 그들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어부로서 지식과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고기잡는 일에 관한한 전문가들이 온 밤을 함께 일했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는 비었고  얻은 것은 없었습니다.

실패후의 느껴지는 그들의 세상은 공허하였고 그들의 육신과 마음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습니다.

지치고 피곤한 육신을 끌고 그들은 내일 출항을 위해 그물을 씻고 준비해야 했습니다.

해변가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은 베드로와 그 동료들의 광경을 어촌의 한 풍경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모여든 군중들 사이에서 일어날 이적과 기적들 그리고 다른 한편 모여드는 군중들에게 어떤 호기심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일들에 열중하는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인 이들 어부들의 관심이 그렇게 관련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예수님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의 활동에 동참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목하기 이전에 예수님은 두 배와 그들 일행을 보았고 그리고 그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빈 배의 의미와 죽도록 고생했지만 결과 없는 일로 낙담한 모습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과 지금 그가 처한 현실 모두를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현실을 무시한 채 그를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5:3)

이렇게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에 올라탔습니다.

해변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질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에게 그들의 일을 잠시 멈추어야함을 의미합니다.

정말 운수 나쁜 날 때문에 그는 다음날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어 일할 준비를해야 했습니다.

그는 빨리 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들도 예수님의 요청에 응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고기잡이에 성공을 하였더라면 아마도 예수님의 요청에 더 쉽게 응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베드로가 그 청을 들어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할 수 있도록 그는 베드로의 협조를 부탁하였고 베드로는 승락하였습니다.

그 순간 이미 베드로는 예수님을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베드로는 아마도 사람들의 루머를 들었을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베드로의 장모가 고열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그의 집에 들어갔고 그리고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었다”라고 말합니다. (4:39)

베드로는 이미 열병을 꾸짖고 치료한 이 사람을 만났습니다.

베드로가 개인적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예언자, 권위있는 선생,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의 능력을 알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장모의 경우로 분명히 감사해 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모여든 군중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그를 움직이게한 이유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이유는 언급되어 있지않지만 베드로는 준비하는 일을 바로 멈추고 예수님의 청에 응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요청하는 대로 베드로는 해변에서 약간 배를 띄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군중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군중들과 함께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흐르는 물에 배가 떠내려가거나 움직이지 않고 예수님이 군중들을 향해 잘 말씀하시도록 배의 위치를 유지하는데 온 신경을 써야 했을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능력의 말씀을 듣는 중에 그는 동의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우연히 예수님 매우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씀이 끝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때 베드로의 역할도 끝났습니다.

베드로는 해변으로 돌아가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내일 일을 준비해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바다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혀 뜻밖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베드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한마디는 그가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일들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몸과 마음이 심하게 지쳐있었을 것입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다음날 고기잡이를 위해 그는 그물을 청소하고 아직 수리할 일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무리들을 위해 배를 띄울 것을 요청하며 베드로의 일을 방해하였던 예수님이 “깊은 바다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대답하였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습니다.”(5:5a)

한국속담으로 비유하자면 “선생이여 공자 앞에서 문자 쓰지 마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다시말씀드려 그 일은 내가 전문가니 그 일을 당신이 어떻게 잘 알겠습니까?

그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처지라도 예수님이 잘 설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 역시 만족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베드로는 매우 유순하게 예수님이 그에게 하신 그 말씀에 복종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소용없다고 느끼는 것을 따라 할 수 없고 특별히 완전히 소용없다고 판명된 그런 확신아래에서는 더욱 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어부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경험과 지식과 믿음과 자긍심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그의 내면에 강하면 강할수록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감정은 더욱 더 끓어 올랐습니다.

이들 요소들은 그것은 헛된 노력임을 확신시킵니다.

다시 더 우리가 더 고통스럽기 위해 아무 결과 없는 일이 기다리는 깊은 바다로 우리가 나아가야만 합니까? 베드로의 불평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 베드로는 그에게 중요한 것, 그가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옆으로 미루어둡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여! 내가 믿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선생이여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5)

한국어 성경의 번역에 “당신이 그렇게 이야기 하기 때문에, 당신의 말씀을 따라 내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라는 베드로의 말속에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 믿져 보아야 본전이라는 아주 불성실한 믿음의 형태를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고집, 확신, 경험과 전통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방해가 될 때가 있음을 경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과 경험이 서로 다른 민족이 함께 드리는 이 예배는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우리 각자의 모습을 서로 깨닫게 하는 유익이 있습니다.

아주 불성실하고 소극적인 복종이었지만 그 복종의 결과는 베드로에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혀 동료의 도움이 필요하였습니다.

두 배에 물고기를 끌어올리니 배에 가득차서 배가 물에 잠길 정도였습니다.

베드로가 가장 자신하는 일, 거기에서 예수님은 그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함으로서 이세상의 현실을 초월하는 자신의 세상을 베드로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베드로에게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이기 때문에 지금 그의 눈앞에 일어난 이 광경에 대해 정확히 그 의미를 이해하였습니다.

그것이 아주 드물게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것 이었더라면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할렐루야” 인사로 예수님과 헤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부여서 그가 그 사건을 그렇게 쉽게 상상할 수 없었기에 그는 지금 놀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베드로의 삶에 강력하게 개입하셨습니다.

처음으로 베드로는 이제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선생님이여가 아니라 주여라고 부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두려워했습니다.

군중들에게 설교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설교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베드로의 삶 안에 개입하셨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베드로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죄 용서의 선포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후로 너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것이라 합니다.

주님에 의해 용서받은 사람, 그의 생명 안에 참여한 사람은 주님의 생명으로 다른 사람을 낚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진정한 복음을 발견합니다.

용서받은 사람, 예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의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그들을 예수님의 생명에 인도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여러분,

신자란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당신의 말씀에 의지해서”라는 고백으로 그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하도록 그리고 결국 예수님의 초청을 따르도록 그리고 제자가 되도록 하는 첫 단계가 됩니다.

중요한것은 우리가 우리자신의 일상의 세상의 삶, 이기적인 우리의 마음을 따라 사는 삶, 우리의 경험과 지식에 의지하는 삶의 길을 잠시 포기하고 예수님의 음성을 따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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