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신 하나님

  • 연합 예배 (2004년 01월 04일)
  • 요 1:10-18
  • 설교자: 드로빅

<본문>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개역한글판 요 1장)

<설교>

여러분들에게 역시 하나님은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까?

우리의 기쁨이나 염려에도 두려움에도 희망과 어떤 계획에도 전혀 말씀을 하고 있지 않는 것 처럼 보입니까?

새해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누구를 신뢰해야 하며 무엇과 싸워야 할 것 인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의 권면처럼 들리도록 하나님은 말씀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까?

말의 홍수 사이에서 그리고 많은 말들과 생각들 사이에서 맑은 종소리처럼 요한복음은 울려 퍼집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우리들 곁에 두지 않았고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우리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이 상상하고 실제로 느끼고 있는 하나님의 침묵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을 통치하고 어필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주위의 모든 감추어진 말들을 극복합니다.

그러나 우월감이나 도덕적인 것으로 극복을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만한 말이 아닙니다.

다른 말들과 우위를 다투는 그런 경쟁을 하지도 않고 어느 누구도 압도하기를 원치않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이 되었고 우리들 가운데 거주하셨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그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오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날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성탄절의 증언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축하를 하는 비밀입니다.

우리들이 기뻐하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그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로 오셨습니다.

겸손하게 가난하게 오셨습니다.

평범하게 겸손하게 오셔서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였고 환영받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은 오늘 이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누구 그리고 그 무엇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되셨고 겸손하게 가난한 아기가 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불분명한 것이 보입니다.

첫번째로 아기가 태어난것입니다.

마치 아기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무기력함이 숨겨져있습니다.

무기력한 아기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무기력한 아기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한 단어 „아니오“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하늘이 침묵한다고 불평합니다.

오래전에 하나님은 모든 백성들에게 많은 말씀을 하셨다고 우리는 느낍니다.

아브람, 이삭, 야곱과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말씀하셨고 약속하셨고 명령하셨고 드러내셨습니다.

이런 저런 모양으로 많은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전혀 그렇게 하지않으십니다.

지금 육신이 되신 말씀만이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과 연결되고 완전히 새롭게 준비되어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을 준비하였습니다.

주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으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우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우리의 모든 기쁨과 염려와 문제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인생의 문제들에 코멘트도 지시도 명령도 하지않지만 그 모든 상황에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약한자들과 함께 하시기에 오직 인간의 한 단어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종이 아니라 나의 자녀입니다. 아들과 딸이 되었습니다.

내가 여러분의 부모입니다. 나의 말에 응답을 한다면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 자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족장들과 예언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때가되어.

모든 것이 그로부터 나오고 그를 향하며 우리들에게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보내셨고 스스로 모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연설이 되지 않도록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밝견하도록

우리들이 자신의 문제에 응답하도록

삶의 이유를 갖도록

깨달음과 은혜의 샘에 도달하도록

인간의 말과 약속으로 자신의 삶의 의미와 보장을 하지않도록 하기위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곁에 왔습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평범해서 우리가 들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너무나 힘이 없어 우리들의 삶에 그의 가까이 오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와 함께 무언가 시작할 흥미를 갖지않고있으며

다른 인간의 말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계속해서 우리들은 우리들을 삶의 문제로부터 끌어내어 다른 삶의 길을 보여주고 그것을 막아주겠다는 약속을 해줄 강한 능력자를 희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존중합니다.

인간의 말이 많음을 압니다.

인간의 말로 우리들은 기쁨과 구원을 찾으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자신을 우리들이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향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된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그들은 야곱과 구약의 시대처럼 인종적으로 청결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육신이 되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를 형제 자매되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생각과 모든 마음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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