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로 부터 자유하는 삶

  • 한인 예배 (2003년 10월 19일)
  • 막10:17-27
  • 설교자: 다빗 유레흐

031019 (삼위일체 18번째 주일)
본문: 막 10:17-27
제목: 물질로부터 자유 하는 삶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25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6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설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 처음에 어떤 남자가 영생을 얻으려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가 입은 옷을 보면 부유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가난해 보이는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있습니다.
영생을 원하는데 어떻게 얻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가 갈망하는 것은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어떤 것입니다.
그가 지속적으로 갈망하는 것은 이 땅의 생명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완전히 만족하지 않는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분이 예수님임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 이여“ 부릅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특별한 율법선생님으로 생각한 예수님께 한 번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고 했기 때문입니까?
지체없이 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지 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웃과의 관계와 관련 있는 십계명을 거론하며  그것을 지킬 것을 조언하였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부터 이웃을 향하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을 진지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거절하면서 계명을 단지 알고 있을 뿐아니라 어려서부터 지키며 모범적인 삶을 살고있다고 하였습니다.

수님은 그 사람이 정말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것과, 그리고 자기를 뒤따르겠다는 것을 보았을 때 정말 그가 자신의
길을 찾고 있기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하기를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줌으로서 자신의 가진 것을 포기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늘 보화를 받고 그리고 예수를 따를 수 있게됩니다.
예수님은 재물이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붙잡고있어 재물에 의지하는 그의 마음과 생각이 자유롭게 되는 것이 어려운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는 것을 거부한다면 이웃에 대한 사랑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은 이 땅의 보화를 가졌고 예수님은 그에게 하늘 보화를 보여줄 것을 원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그에게 자신을 좇아오는 새로운 길을 요청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하지 못하였고 그는 슬픈 기색을 띄었습니다. 머리를 떨구고 체념하여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은 그가 재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 이땅에서 그는 재물을 모아놓은 것으로 살고 죽어서는 염려 없는 삶을 영원히 계속할 것이라고 그는 어쩌면 생각했습니다.
그는 영원한 삶을 원하였고 예수님은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물질적으로 보장을 받았고 예수님께 와서 그는 죽음 후에 구원을 약속 받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교활한 수법은 그러나 예수님을 속이지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곧 바로 태도를 바꾸기를 그리고 자기 중심을 벗어나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생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입니다.
부유한 사람은 그러나 자신의 소유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슬퍼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역시 슬퍼하십니다.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그 사람의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잘 이해를 못해서 강조해서 말씀하시길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낙타와 바늘 귀 비유는 불가능한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타가 바늘 귀로 들어 갈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제자들은 놀라서: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고 질문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너무 높은 수준의 것을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까?
사람들이 재물을 가졌을 때 재물에 무엇이 나쁜 것입니까?
그러나 재물이 많지 않은 사람도 뿌리 내린 무엇 그리고 결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지지 못한 것 그리고 희망하는 것을 갖기를 원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비유가 내가 아니라 부자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모든 신자들에게 해당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재물의 양과 그 높이가 아니라 재물과의 질적인 관계 즉 인간이 갖고있거나 아니면 원하는 재물에 대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재물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것은 재물을 가졌거나 매우 갈망하는 사람이 그 재물로 인해서 자주 하나님과 자신의 이웃을 잊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며 재물의 증식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매우 물질에 매여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삶을 위해 중요한 것을 생애 가운데 결정해야만 합니다.
재물의 노예로 사는 것 또는 다른 우선순위를 갖는 자유하는 삶을 사는 것  둘 중의 하나입니다.
부자나 재물을 축적하는 것이 생의 목표인 사람에게 이러한 결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재물과 예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는 쉽지않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과 재물 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슬픈 기색을 띄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무엇인가를 가진 사람 또는 갖기를 원한 사람이 하나를 선택을 하는 경우 재물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낙타는 바늘 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제가 언젠가 읽었던 이야기 입니다. 아시아에도 비슷한 비유가 있습니다. 모기는 철로 만든 황소 동상을 물을 수 없다,
그럼 오늘 본문 즉 예수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인가요?
예수님은 재물과의 옳치못한 관계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절대적인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켜주십니다.
재물에 생의 목표를 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재물은 유혹을 의미하며 허황된 가능성을 추구하는 삶으로 이끕니다.
재물은 장애물입니다.
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재물에 대한 자세가 결정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 우리를 옭아매는 재물로부터 자유로운 가난한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이 미덕이라고 하지않았고 가난을 생의 목표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난함으로 복이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하는 부유함으로 자유함때문입니다.
여기서 부자가 만약 맘몬을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에 사람이 물질을 다스린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질의 종이 되어서는 안되며 물질이 우상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이것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쉽지않습니다.
재물에 굴복하는 것과 하나님에 굴복하는 것 사이의 갈등은 원칙적으로 신에게 굴복하듯 물질에 굴복하는 것으로 끝이납니다.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근심스럽게 질문합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으로써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써는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감화 감동하실 때 그 사람은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변화하셔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 거부하게 하십니다.
사람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재물에 대한 욕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자세를 바꾸는 하나님의 은혜의 개입 없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순복할 때 그 부자는 재물을 바르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물질이 아닌 하나님을 섬겼을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하게 하는 메시지인 오늘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물질을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진 것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만찬을 받들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인지 자유하는 인간으로서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 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직 재물로 자신의 삶을 지향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근본적인 요청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 사는 삶을 지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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