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광우병, 구제역 그리고 가축 학살

나눔터 제 13 호 (2001/04/08 발간), 여전도 회보에 기고

요즈음 유럽신문과 방송의 머릿기사는 도축 되고 불태워지는 가축들의 처참한 사진들을 곁들인 광우병, 구제역 이야기이다.
재산을 잃은 축산 농부들의 안타까운 이야기, 먹이 사슬로 인한 질병의 감염경로를 막기위해 식탁에서 사라져가는 쇠고기 이야기,
육식에서 채식으로 바뀌어가는 유럽인들의 식생활 이야기, 쇠고기 대신 닭고기 소비가 증대하자 성장 촉진 호르몬과 유전공학으로 재배된
곡식을 사료로 키운 닭고기의 안정성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인간을 위하는 이야기뿐 이다.

가축의 전염병을 막는 오직 유일한 방법은 가축 학살 밖에 없는 듯 전염된 가축들을 도살하고 불태우고 있다. 전염병이 더
번지지 않도록 가축을 대량, 집단으로 도축하는 것이 어쩌면 옳다. 그러나 가축을 집단으로 학살함으로 이런 유사한 재앙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1차 2차 세계대전으로 인간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대량학살을 자행했고, 이어지는 냉전시대에 인간은 공기와 물을 심각하게
오염시켰고 많은 숲들을 파괴하였으며 야생동물의 수백 종을 멸종 시켰다. 오늘날 인간은 자신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병든 먹거리를 대량 학살하여 폐기처분하고 있다.그래도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다음은 어떤 재앙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방자한 인간, 애굽 왕 바로를
설득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길은 재앙밖에 없었던 것처럼 인간의 먹거리에 질병을 보내 인간을 설득하여 오늘날
깨어진 창조질서를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뜻은 아닐까?

가축의 전염병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 성찰 없이 가축부터 죽이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영원에 대한 가치관을 잃어버리고 단지
순간을 사는 인간풍조가 느껴진다. 내일과 10년 20년 그리고 죽음까지를 바라보는 인내심이 상실되었음을 느낀다. 오늘날 인간은
먹기를 탐하고 쾌락을 원한다. 수많은 디지털 위성 방송들, 언론 매체들, 인터넷 방송들 그리고 정보들이 인간이 먹고 즐기는 쾌락을
자극하고 그것을 가십으로 다루고 있다. 수치심을 상실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존경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자신의 삶에 대해
존경을 잃어버린 오늘날 우리들이다. 우리가 이것을 죄라고 하지 않는다면 달리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우리들의 선한 목자이듯이 우리들은 피조물의 목자이다. 이것이 성서가 이해하고 있는 인간 이해이다. 우리 피조물의
목자는 피조물을 다스리고 지키도록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명을 받았다.(창세기 2장 15절) 선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안다.(요한복음10장 14절) 축산농부는 가축들을 어떻게 기를지 안다. 농부는 곡식을 심을 때와 거둘 때를 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의 재능과 능력을 안다. 그러나 우리 피조물의 목자들은 더 이상 목자가 아니라 피조물의 소비자가 되었다. 왜 우리 인간은
피조물을 다스리고 지켜야 되는지 소비자는 질문 할 필요가 없다.

소비자는 삶을 사상과 실천에 대한 씨름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웃보다 더 좋은 지위, 더 좋은 자동차, 더 넓은 집, 더
멋진 여행을 차지하기 위한 경주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 인간의 이기심이 가축을 원인 모를 질병과 고통과 학살로 내몰고 있음을
소비자는 인식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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