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베네쇼브

베네쇼브(Benešov)

얼마 전에 베네쇼브(Benešov)를 다녀왔다. 오전 9시 30분에 약속이 있어 자동차로 1시간 남짓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아침 출근시간을 감안하여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8시경 프라하 4, 콩그레스(Kongres)를 지나 1번 고속도로로 진입할 무렵 마주 오는 차선에 시내로 향하는 승용차들이 거의 움직이지 못한 채 줄지어 서있었다. 한참을 달려도 마주 오는 차선에 서있는 차량들의 꼬리가 끝나지 않았다. 프라하 경계를 알리는 큰 아치 조형물을 2-3 키로미터 정도 지나서야 차량 행렬이 끝났다.
도로 보수공사나 교통 사고 없이 이렇게 길게 줄을 지어 서있는 차량 행렬을 10년을 살면서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프라하를 40 키로미터 정도 벗어나 베네쇼브, 린쯔(Linz오스트리아 도시) 표시가 있는 출구를 타고 국도로 들어섰다. 자세히 보지 못하면 지나칠 듯 서있는 국도변의 베네쇼브 지경을 알리는 흰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원을 그리듯 급커브에 좁고 웅덩이가 패인 아스팔트 길을 따라 비스듬하게 하늘을 가르키는듯 땅을 가르키는듯 애매하게 매달려있는 시내 방향 표시 판을 암호 해독하듯 하며 길을 찾았다. 꼬노삐슈떼 (Konopiště) 성과 호수를 몇 차례 찾았을 때 그냥 지나치면서 한번도 들러 보지 않은 도시였다.
베네쇼브는 사자바(Sazava) 강과 신화의 블라닉(Blánik) 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13세기 중반에 처음 수도원이 생기면서 차츰 도시로 발전하였다. 후스 전쟁 시대에 얀 쥐쉬까(Jan Žiška)가 이 도시를 정복하였다. 1415년 개혁파의 왕 이지 뽀제브라디(Jiří z Pořebrady)와 황제 실비오 피오코로미니 (Silvio Pioccolomini)와 교황 피우스 2세(Pius II )가 만나 협상을 했던 도시가 바로 이 베네쇼브였다. 이와 같이 체코 보헤미아 역사에서 보듯 베네쇼브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9시 30분 예정된 만남이 교회당에서 시작 되었다. 서로 간단한 인사와 소개를 나누고 시내로 향하던 출근길의 길고 긴 차량 행렬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였다. 그 교회 목회자가 „30분 마다 있는 열차로 프라하 중앙역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는데 승용차로 출근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수업이 끝난 학생들 그리고 업무 시간이 끝난 젊은 직장인들은 저녁 시간을 대부분 프라하에서 보내고 있어 일과 시간이 끝나면 오히려 베네쇼브 거리는 한가해 진다.“고 그 목회자는 덧붙여 말했다.
역사와 전통이 서려있는 인구 약 10만 명의 작지 않는 도시가 급격하게 가까운 대도시 프라하로 그 생활권이 편입이 되고있다. 그 목회자의 말을 빌리면 비단 베네쇼브뿐만 아니라 대도시에 인근한 중소도시들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경제가 급속하게 붕괴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현상의 주된 원인으로 „소비 지향적인 사회 풍조“를 지적하였다.
1989년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면서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거칠고 거무틱틱한 화장실 휴지가 부드럽고 하얗게, 이곳 저곳을 드나들며 구입하던 일상용품과 식품을 거대한 창고형 슈퍼마켓에서  ‚한 방에 날리고‘, 주말 오두막집에 흩어진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텃밭을 일구던 사람들이 주말 심야 극장가로 모여들고, 늦은 시간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던 선술집은 새벽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화려한 까페와 디스코장에 밀려나고, 대중교통이 뜸한 주말에나 움직이던 낡은 승용차들은 업그레이드 되어 아무 때나 시내를 질주하고있다. 그토록 한국 매스컴에서 자주 들어 익숙했던  „향락 산업“  „소비 문화“ 라는 말들을 이 땅 체코에서 다시 듣게 될 그날이 가까이 있음이 느껴진다.

목사 이 종 실 (나눔터 발간인)
2003년 11월호 32호나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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