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2000년 체코 성탄절기의 소고

나눔터 제 11 호 (2001년 01월 07일 발간)

    체코 성탄절기 풍경에 관해 글을 쓰면서 앞에 2000년을 의도적으로 붙여본다. 필자가 체코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
93년도 11월 24일 부터이지만 그보다 한해 전인 1992년 겨울 성탄절인 12월 25일 직전에 프라하를 일시 방문한적이
있었다. 냉전시대에 직접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저 “철의 장막” 뒷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새벽에 도착한 프라하 중앙역은 중심지인 바츨라프 광장과 멀리 떨어져 있지않아 쉰 새벽 푸른 빛을 띈 잿빛 겨울 속의
중세도시를 만끽하였다. 바츨라프 광장, 무스텍(Mustek) 지하철 역 입구쪽에 간이 무대와 함께 하늘을 찌를듯한 키 큰 소나무
한그루를 세워놓고 거기에 커다란 종이 상자들을 별로 화려하지 않는 포장지로 싸서 군데군데 매달아 놓은 것이 프라하의 얼굴
바츨라프 광장의 성탄절 장식 모두였다.

    저 멀리 마주 보이게 서있는 바츨라프 말 동상과 균형을 잡고 서있는 성탄절 나무와 장식 그리고 주위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잔뜩 찌프린 안개 낀 잿빛 겨울날씨, 별로 춥게 느껴지지 않다가 갈수록 스믈스믈 뼈속이 시려오는 추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담요로 둘둘 말 듯 추위를 막기위해 투박스럽게 옷을 입고 거리를 한적하게 걸어 다니는 무표정한 사람들 그리고 듣는 사람이 없어도
간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들… 이처럼 꾸밈이 없는 거리의 풍경들로 자연스럽게 성탄절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에
그때 그 광경들은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 아직 나의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체코 성탄절을 일곱 번 경험하면서 하나 특징적인 것은 점점 빨라지는 성탄절 분위기이다. 체코 성탄절 분위기는 주로
12월 25일 4주전부터 시작된다. 그러던 것이 작년에 두세 주 앞당겨 상점에서 성탄절 장식을 하더니 금년에는 한 주가 빨라진 한
달 전인 11월 초부터 백화점들이 앞다투며 성탄절 장식을 하였다. 성탄절 대목을 노리는 상술을 체코라고 피해갈 수 없다. 어쩌면
체코인들에겐 상술(商術)의 성탄절은 이전에 맛보지 못하던 새로운 성탄절 분위기일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변화의 성탄절
속에서 체코인들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 그 득실을 따져보게 된다.

    금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체코인들의 생활의 새로운 경향하나가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다. 일년간 꼬기꼬기
모은 돈을 가족들을 위해 성탄 선물을 사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성탄절 이브때 몇번 체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가족간의 사랑과 인간미가 넘치는 분위기였다.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성탄절 절기내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선물을 개별적으로 준비하여 집안에 놓여있는 성탄절 장식나무 밑에 갖다 놓는다. 그리고 성탄절 전날밤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수북이 쌓인 선물을 하나하나 풀어간다. 성탄 선물은 주로 선물을 받는 대상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구입한다. 노트 몇 권, 책 몇
권, 장난감, 찻잔, 양초와 같은 값비싼 물건들이 아닐지라도 모든 가족들 개별 선물을 사려고 하면 한 사람에게 적은 부담은
아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최소한 휴가를 다녀온 여름이후부터는 성탄절 선물을 사기위해 각자 조금씩 조금씩 저축을 한다. 그런데
이제는 전체인구의 약 삼분의 일이 신용카드를 이용해서 성탄선물을 산다는 통계가 나왔다.

    의미와 상징으로 마음을 담았던 성탄절 선물도 이제는 퇴색되었다. 아이들이 제일 선호하는 성탄절 선물은 모바일
전화기라는 통계가 나왔다. 이동통신 전화상들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모양도 기능도 구형이된 전화기들을 이용한 값싼 상품들을 성탄절기를
앞두고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이처럼 성탄선물도 그 가격이나 종류가 예전같이 않다. 성탄절 선물은 신화와 꿈을 대신해서 인간의
욕구와 소비로 그 내용을 채워가고 있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 계절이 인간의 욕망과 욕구를 가감없이 드러나게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의식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욕구를 부추기는 상술의 성탄절을 거부해 보자. 그리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내야
할 주위의 정겨운 성탄절 행사들을 찾아보자.

목사 이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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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 형제개혁교단 총회목사

● 체코 형제개혁교단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 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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