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세우는 교회

  • 한인 예배 (2004년 07월 25일)
  • 행19:8-34
  • 설교자: 이종실

040725

본문: 사도행전 19:8-34 

제목: 성령이 세우는 교회

<본문>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3)시험적으로 2)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 뿐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이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발명하려 하나

34 저희는 그가 유대인인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시 동안이나 하더니

<설교>

체코를 포함하고 있는 슬라브 문화권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주후 800년대 부터 그리스 정교회의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고 그들에 의해 문자가 만들어 지면서 같은 계통의 언어와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슬라브 문화권은 현재 정교회, 로마 카톨릭, 이슬람이 각각 특정한 나라에서 매우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체코는 무신론적인 분위기가 강한 사회로 남아있습니다.

지금 슬라브 문화권에 통계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외국 선교사님들과 한국선교사님들이 많이 들어가 활동을 하고 있고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좋은 교회들도 생겨나지만 그렇지 못한 부정적인 모습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님들이 비자문제로 가끔 프라하를 찾습니다.

그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러시아와 다른 나라의 선교상황을 접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러시아와 구 소련 연방 국가들의 선교의 당면과제는 교회 지도자를 길러내는 일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체코는 슬라브 문화권 선교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1994년에 쭈리히의 국제침례신학부가 프라하로 이전한 것이 바로 새롭게 생겨난 동유럽 교회들의 지도자 양성을 위해서 였습니다.

체코가 로마 카톨릭이나 동방정교회나 이슬람의 나라가 아니라 무신론적인 사회분위기이면서 매우 강한 개신교 전통이 뿌리깊게
남아있어 슬라브 문화권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교회들의 지도자를 교육하고 지원하는 일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오순절 운동으로 생겨난 교회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이 만들어낸 전통도 생겨나고 심지어 잘못된 길로 갈 때 그
교회를 다시 성경말씀으로 돌아가 새롭게 개혁하는 개신교회로 만들어 가는 움직임이 체코 개신교 전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체코 프라하 개혁교회 신학부는 구약과 신약을 연구하는 분야가 발전이 되어 있습니다.

라틴어 히브리어 헬라어 공부를 학생들이 흥미 있어합니다.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에 오셔서 설교한 적이 있는 뻬뜨르 뽀꼬르니 교수님은 신약신학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석학입니다.

로마 카톨릭 바티칸 교황청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개신교 신학자들 가운데 한 분입니다.

그 분의 책은 신약신학을 연구하는 학생들이 반듯이 읽어야 하는 교과서입니다.

체코에서 성서신학이 발달된 것은 자신들의 말씀으로 돌아가려는 개신교 전통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체코의 상황은 앞으로 슬라브 문화권에서 새롭게 생겨난 교회들을 건강하게 돕는 좋은 역할을 가능하게 합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체코교회는 슬라브 문화권을 향해 자신들이 나누어야 할 신앙의 경험과 유산이 있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체코교회는 이것을 자신들의 선교 비전으로 바라 보고 있지 못합니다.

재정은 스웨덴 교회에서 감당하고 인적자원은 체코교회에서 발굴하여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한국선교사들이 세운 신학교에 교수로 파송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작업을 하였지만 결국 비전을 나눌 사람을 체코교회는 찾지 못하였습니다.

이 일을 추진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이 많았습니다.

그 일을 추진하면서 체코교회로 불러 함께 모이게 한 우리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꿈과 기대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의 관점에서 그리고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체코교회가 바뀌면 슬라브 문화권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체코교회 안에서 체코교회에 영향을 주며 체코교회를 바꾸어가려는 우리들의 존재의미가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존재의미(사명)를 우리들 스스로 만들어간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이었음을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 여정을 통해 분명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지고 없애겠다고 없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세워지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교회로 모이는 사람의 뜻과 경험대로 움직이려고 할 때 성령이 일하실 자리가 없어지고 그래서 교회는 인간의 모임으로 타락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만들어놓은 청사진을 따라 세워져 갑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세우려고 하면 그 계획을 성령께서 가로 막습니다.

처음에 사도 바울이 선교를 계획했을 때 그의 아시아 선교계획은 막히고 그는 성령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이차선교여행때는 에베소에 들리지만 하나님의 허락이 없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체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3차선교여행에서 처음부터 에베소를 목적으로 갔습니다.

이차선교여행때처럼 지나가는 길에 잠시 경유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8, 9절까지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겠습니다. 나에게 큰 문이 활짝 열려서,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대적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고전 16:7-9)

바울이 에베소에 어느정도 머물 계획을 이미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에서 2년이 넘게 복음을 전합니다.

이와 같이 사도의 여행 길은 나그네 김삿갓처럼 자기 마음대로 다닌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쫓으라”(눅9:59)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가는 길을 제자들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길은 제자들 뜻대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대로 정해집니다.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도”로 표현합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보시면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도는 道, the way 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여행의 길, 성도들이 모인 모임인 이 교회의 길 역시 사도의 여행길 처럼 임의대로 자의대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식을 하던지 하지 못하던지 우리는 성령의 가르침대로 따라가는 생애입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한 일들이 19장 전체에 나옵니다.

성경에 기록된 순서대로 보면, 신앙이 부족한 신자들을 다시 가르쳐 주의 일꾼으로 양육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희들은 지난 주일에 함께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회당과 두란노에서 하나님 나라를 강론하였습니다.

이 강론을 통해 믿는 이들이 교회로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교회가 지역사회에 영향을 줍니다.

마술사들과 신상을 만들던 사람들이 많았던 에베소 사회가 그들로 인하여 술렁거립니다.

마술사들과 심지어 제사장들이 바울의 흉내를 내어 귀신을 쫒아내려고 하는 일도 생겨납니다.

마술사들이 자신의 마술 책을 불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게 됩니다.

신상을 만들던 사람들은 바울과 그 추종자들로 인해 그만 경제적인 타격을 받게됩니다.

이것을 뭉뚱그려 우리들은 바울의 선교라고 이야기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 성령을 따라 가는 교회는 남을 먼저 가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먼저 부족한 교회의 모습부터 고쳐갑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배웁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성령을 따라 가려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이 가르친 것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보이지 않는 나라입니다.

교회로 모이는 저와 여러분들이 가르치고 배워야할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느니라” 예수님의 부활하신 후 가르치신것도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경의 대 주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문제만 가지고 회당에서 3개월 그리고 두란노에서 다시 2년을 강론하였습니다.

성경을 테마로 가르칠 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강론했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강론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이야기 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설명할 수 없기때문입니다.

성령을 따라 가는 교회가 함께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왜 오느냐?

교회로 모이는 우리들 가슴속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리움과 알고자하는 욕망이 가득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주님앞에 개인의 문제들을 내어놓고 해결받는 문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해결이 목적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나 자신의 평안과 축복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평안과 축복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큰 꿈에 나의 삶이 집중되어 있을 때 나의 문제가 중요한것이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면서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 신앙인은 하나님께서 더 큰 비전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이 없는 청지기에는 더 많은 것을 맡겨주시지 않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아마 경험하실 것입니다.

회사의 미래에 대해 비전을 가지고 일하는 직원과 맡은 자기 일은 충실하지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직원을 대하는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결혼도 명예도 생명도 포기하고 다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보이면서 바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여겼습니다.

지금 아시아의 중심도시, 무역이 발달되어 온갖 진귀한 명물들이 쏟아지는 도시, 큰 도서관이 있을 만큼 학문이 발전되어 있는
도시, 경제적 부를 누릴 일할 기회가 많은 도시, 이곳을 찾아온 유대인들, 헬라인들, 아시아인들은 이민자들로 저마다 무엇이든지
최고가 되어보겠다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 믿으니 그들의 마음의 눈이 열려 하나님 나라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썩어빠진 이 세상, 잠깐 있다가 없어질 이 세상, 아무리 수고하고 땀흘려도 대가도 돌아오지 않는 이세상, 대단한 꿈을 주는 것같이 처음에는 요란하고 찬란하게 보이지만 나중에는 모든 것이 다 헛된 것 같이 보이는 이세상,

이것을 위해 사는 것 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자는 뜨거운 꿈이 생겨났습니다.

에베소 신자들 처럼 오늘 우리 교회가 살아 움직이려면 교회로 모이는 저와 여러분들 가슴속에 그들 처럼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가지면 내 직업에 대한 권태증이 생기지 않습니다.

왜? 내 직업은 영원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가정의 조그마한 문제가 그리 크게 대두되지 않습니다.

극복 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더 큰 것을 소유한 사람이기에 작은 것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믿음과 욕심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욕심이 아니라 믿음이면 그리고 믿음의 열정이면 희한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바울의 손수건을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엊자 그 병이 떠나가고 악귀가나갑니다.

서양 사람들 손수건은 코를 풀어서 제 생각에 땀만 딱는 우리들 것 보다 더 불결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그 불결한 손수건이 무슨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땀을 흘린 사람의 손에서 능력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20절 말씀을 보시면 “이적과 기적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 하지 않고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적과 기사가 드러나지 않고 주의 말씀이 드러납니다.

이적과 기사가 드러났다면 그것은 성령을 따르는 길에서 이탈했다는 뜻입니다.

이적과 기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에베소 도시에 소동이 일어납니다.

타락한 제사장의 거짓이 드러나고, 우상 만드는 사람이 사업이 안될 정도로 에베소 사회에 에베소 교회는 영향을 줍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교회의 여정은 우리들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청사진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음을 고백하십시다.

우리를 체코로 보내주시고 순교자들의 피가 흐르는 체코교회 곁에 우리를 두신 하나님의 뜻을 날마다 하나님 앞에 질문하십시다.

그리고 우리의 가슴에 하나님 나라의 꿈과 그 나라를 이루려는 열정으로 가득 채웁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열정을 가진 믿음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개인이 변화하고 가정이 변화하고 일터가 변하고 학업이 달라지고 사회가 변합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며, 문제의식을 던져주며, 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얻어 더욱 흥왕해지는 선교의 결실이 나타납니다.

21절 말씀입니다.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에베소에서 당시 세계관으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 선교를 결심한 바울처럼 체코 프라하에서 슬라브 문화권 전체에 대한 세계 선교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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