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위임

  • 한인 예배 (2002년 04월 28일)
  • 마28:16-20
  • 설교자: 이종실

2002년 4월  28일 주일예배
본문: 마태복음 28:16~20
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위임

<공동기도>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기억합니다.
먼저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저희들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6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설교>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기 전까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그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르치셨습니다.

이 가르침을 주기위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갈릴리에 있는 산으로 불렀습니다.
열한 제자들은 갈릴리 – 예수가 지시한 산으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이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 28:16-20)

이 성경말씀을 우리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위임”이라고 별명을 붙여 부릅니다.
왜냐하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 분명하게 하신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서 기독교회들은 이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을 따라 성령의 임재와 능력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고 고치시고 세우시는 하나님을 섬겨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은 이 말씀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위임 –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들의 생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우선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러분 앞에 서있는 부족한 저도 나이 서른 아홉에 단 한명의 아는 사람도 없고 한마디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곳에 내일 모래 중학교
들어갈 아이의 손을 잡고, 내일 모래면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는 연금혜택자가 되는 아내에게 직장을 포기하게 하고 성경책과 몇
권의 신학서적이 들어있는 배낭과 입을 옷가지 챙겨 넣은 여행용 가방하나 들고 십년 전 이 체코를 찾은 것은 바로 이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비단 저뿐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해서 확신을 갖고 이 체코로 찾아오신 분은 이 자리에 아마 거의 계시지 않을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셨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계기들을 여러분 모두가 경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산 넘고 물 건너 이 땅을 찾아 오실 때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머리 속에 들려온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위임의 오늘 본문말씀인줄 압니다.
이러한 사명을 자각한 우리 성도들의 모습의 한 예가 민주혁명 직후 아직도 공산주의의 잔재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그 때 그 시절 체코에 역사적인 첫 한인교회가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도의 한 가정에서 시작된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위임의 토대 위에 세워진 교회로 모이는 우리가 그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함으로 우리들은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고통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교회로 모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위대한 위임을 수행하지 못하는 결과였습니다.
불행하게도 교회로 모이는 우리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는 바로 이 반성과 회개 위에서 출발했습니다.
지난 날의 우리들의 잘못을 회개하였습니다.
교회를 분열시킨 자들이 라는 조롱과 오해와 손가락질을 받아도 묵묵히 지냈습니다.
해명도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신다는 시편의 시인의 신앙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죄인들인지 발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나의 죄 우리 모두의 죄를 회개하고 죄 용서를 받은 자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지난 2년간 이 강단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자기 자신을 알자, 은혜스러운 말을 사용하자, 숨은 봉사생활을 하자

이 세가지 교회생활 모토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위임을 수행하기 위한 우리들의 철저한 자기 반성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난날의 경험을 잊어서는 안될 것 입니다.
불과 이 년 전의 교회의 고통의 원인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부활하신 후 우리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 명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위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 교회로 모이는 저와 여러분들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모여서 나누어야 될 이야기들이 무엇입니까?

우리들에게 많은 관심들이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 파는 일들, 사회 속에서 자신의 지위, 자녀들의 진로…
교회로 모이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하고 우선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신 선교입니다.

이 선교의 수행은 우리들 감정에 호소와 선동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고하게 믿는 믿음이 이 선교를 수행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선교의 지상명령은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에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이후에 예수님에게서 나온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그들이 그를 뵙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갈릴리의 산으로 찾아가서 뵈었을 때 그 때 주신 명령이 선교였습니다.

우리의 선교는 예수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교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표준새번역 고전 15:14)

부활하신 주님의 토대 위에 있기 때문에 선교는 오늘날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 복음서를 펴서 읽을 때 복음서 저자들이 다같이 말하고 있는 공통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는 증언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약 성서 전체를 꿰뚫고 있는 신앙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안에서 생겨난 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그 자체를 형성시키고 자라게 한 신앙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은 분명히 실제적으로 일어난 초자연적인 사건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우리의 부활신앙을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은 산으로 갔고 거기서 예수를 뵙자 절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절을 하였다는 영어성경에 예배 드렸다 라고 번역되어있습니다.)
부활신앙이 예배로 이어집니다.
부활하신 예수께 예배드릴 때 그 예배에서 위대한 명령 – 교회의 선교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선교는 예배에서 주어졌으며 오늘날 예배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히브리 기자는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과 같이, 모이는 일을 그만두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그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 (표준새번역 히 10:24)
왜 그래야 합니까?
우리 존재, 우리 교회는 예배 안에서 태어났고 예배 안에서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배로 성장 발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지않는 자들을 그리스도에게 이끌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예배- 의 가슴으로 돌아오게 해야만 합니다.
“세계선교의 연료는 예배다.” 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예배에 회개와 죄 용서와 천국기쁨의 복음이 재현되어야만 합니다.

리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고 고난을 받으시고 죄없는 분이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아직도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우리들과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배는 본질적으로 복음적이며 선교적입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 서로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분냄이 있을지라도 부활하신 그리스도 때문에 함께 모여 거기서 주를 찬양하고 기도하고 우리의 오늘의 삶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그 사실이 우리의 믿음의 표징입니다.
여기서, 이 교회에서 드려지는 우리들의 예배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올려지기를 기원합니다.
이 예배를 통해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선한 길로, 복된 길로 이끌어주시길 원합니다.

불행하게도 예배 공동체는 언제나 확신과 열정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17절)

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고 예배 드리면서도 의심하였습니다.
어떻게 더 이상 주님을 의심할 수 있습니까?
예배 공동체 가운데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예배 공동체에 일체감이 없는 형제와 자매들로 인한 분쟁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언제나 있었고 마지막 심판 때 까지 있을 것입니다.
알곡과 가라지를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한분 심판자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신자들에게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쳐 말씀에 끊임없이 복종시켰습니다.
고린도 전서 9장 27절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했습니다.

판단과 심판은 하나님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각자는 자기 자신이 의심하는 자가 되지않도록 자신을 쳐 말씀에 복종시키는 노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의 신앙인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20절)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은 시작과 마지막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선언으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이 임마누엘 하나님과의 친교가 바로 예배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성만찬과 섬김이 있는 예배를 통해 우리들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더욱더 확신해 가게 됩니다.

예배는 부활 이전의 시간에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가 아닙니다.
예배는 부활하신 예수의 부름을 받은 무리들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예배는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 임마누엘 하나님과의 친교의 시간입니다.
이 예배의 친교 가운데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젼이 있습니다.
그 나라 백성으로 이 세상을 섬기고자 하는 헌신과 결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새로운 친교의 삶의 자리에 이 세상 사람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19절) 명령 하십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삶에서 위대한 위임의 성취를 위탁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집에서, 여러분의 직장에서 여러분들이 만나는 모임들에서 그리고 다른 믿는 사람들과 함께 다른 나라에서 아직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의 삶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 친교의 삶의 자리로 초대하라는 뜻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성도여러분,
임마누엘 하나님과의 친교를 우리 자신들만 즐겨서는 안됩니다.
그 영생의 기쁨의 미래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우리 곁에 초대해야 합니다.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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